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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월 10일 야곱의 우물- 요한 15,1-8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5-10 조회수437 추천수4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버린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요한 15,1-­8)
 
 
 
 
포도나무는 다른 나무들보다 재질이나 형태가 짧고 굽었으며 나뭇가지는 가늘고 뒤틀렸습니다. 숲 속의 백향목이나 상수리나무, 잣나무에 비해 목재로는 가치가 없기에 어떠한 물건도 만들 수 없지만 포도나무의 진가는 열매에 있습니다. 열매 소출에 관한 한 포도나무는 다른 모든 나무를 압도할 만합니다. 이처럼 포도나무가 알찬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게다가 목재용으로도 가치가 없기 때문에 차라리 나무를 잘라 땔감으로 사용하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포도나무 비유에서 예수님과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고”(요한 15,1), “너희는 가지”(15,5)라고 표현하십니다. 나무와 가지의 관계는 유기적인 생명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가지는 나무에서 떨어지면 말라 죽게 됩니다. 농부이신 하느님은 우리에게 포도나무의 땔감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요구하시기에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15,2) 하십니다. 농부이신 하느님께서 가지인 우리를 향해 기대하시는 열매는 내가 원하는 내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내가 되길 바라시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이신 주님은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15,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가지가 살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 안에 머물러야 살 수 있습니다(15,4 참조).

가지는 나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을 때 생명이 있고 삶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가지는 절대로 스스로 자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본질은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입니다. 가지인 우리는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모든 능력과 양분과 생명을 공급받는 존재입니다. 사도 요한은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1요한 5,12) 하며 ‘생명의 관계’로 연결시킵니다.
 
예수님을 떠난 것은 생명을 떠난 것이고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은 생명 안에 사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점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한테서 멀어집니다. 좀 더 출세하고 좀 더 부자가 되고, 너무도 젊은 날에 예수님께 매이는 것이 억울하며, 예수님만 믿고 살기에는 아쉬움이 많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또 하나의 생명을 가슴에 안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 생명의 가치를 아는 것이고 세상의 어떤 유혹에도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농부는 나무와 가지를 위해 많은 것을 공급합니다. 때에 따라 물도 주고 역겨운 퇴비를 주고 병충해를 막기 위해 약을 뿌리기도 합니다. 볕이 들지 않으면 아예 삶의 자리를 옮겨 심기도 합니다. 사실 이런 것들이 가지에는 견디기 어렵고 숨 막히는 고통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농부가 주는 것은 어느 것 하나 가지에게 해로운 것이 없습니다. 열이면 열 다 유익한 것입니다. 농부의 기대는 오늘이 아니라 내일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가지의 처지에서도 오늘이 고통스럽지만 믿는 마음으로 인생의 농부이신 하느님 앞에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농부이신 하느님께 절대 신뢰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이 어떠하든지 농부이신 하느님께 맡겨야 합니다. 가지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께 묶인 사람들입니다. 나뭇가지를 유심히 살펴보면 연한 순이 땅속에서 솟아오를 때 줄기가 커지면서 첫 번째 가지가 돋아납니다. 그리고 연이어 가지가 돋아납니다. 그런데 가지의 위치를 보면 첫 번째 가지가 제일 먼저 나왔으면 당연히 제일 윗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마땅한데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첫 번째 가지가 맨 밑자리에 있습니다. 두 번째 가지가 그 위에 세 번째 가지는 두 번째 가지 위에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언제나 가장 위쪽에 돋보이는 자리는 가장 약한 가지가 차지합니다. 만일 첫 번째 가지가 자신이 오래되고 굵으니 윗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주장한다면 그 나무는 거목이 될 수 없습니다.
나무가 세월이 흐를수록 강풍에 견디는 거목이 되는 것은 크고 강한 가지들이 밑자리에서 버텨주기 때문입니다. 진정 살아 있고 생명이 있는 나무라면 지난해 맨 윗자리에 있던 가지는 어느덧 새로 솟아난 가지 밑에서 그 가지를 버텨주는 밑가지가 되어 있습니다. 나무의 모든 가지는 예외 없이 다른 가지의 밑가지가 되어줍니다.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은 결코 인간 세상의 윗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위한 구원의 밑가지가 되기 위해 오셨습니다. 또한 나자렛에서 목수 일을 하면서 밑가지의 삶을 사셨고 결국 오셨던 목적 그대로 십자가 위에서 희생의 밑가지가 되셨습니다. 우리의 밑가지가 되셨던 예수님께서는 가지인 우리에게 밑가지가 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아마 우리가 맺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열매일 것입니다.
우리가 그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런 종류의 ‘열매’를 맺는 나무에 붙어서 같은 열매를 맺기 싫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가지인 우리는 포도나무이신 예수님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되어야 합니다. 작은 예수가 되는 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기대일 것입니다. 겨울의 포도나무는 죽은 나무 같고 가지도 그러합니다. 다른 나무와 달리 푸른 입사귀 하나 없이 각질이 많아 생명이 없는 나무 같습니다. 농부도 손을 놓아버린 듯한 나무요 볼품없는 가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희망도 기대도 없는 나무처럼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 포도나무에게 언제까지나 겨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 같은 가지에도 새싹이 돋아날 새봄이 올 것입니다. 한여름의 포도를 기약하면서 약한 가지들은 길게 뻗어나갈 것입니다. 때가 되면 여전히 농부이신 하느님의 움직임이 시작될 것이고 이것이 농부의 기쁨일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매달려 떨어지지 않는 가지가 되도록 농부이신 하느님께 온전히 맡겨드리는 삶을 살아갑시다.
정애경 수녀(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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