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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도를 아십니까?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5-09 조회수487 추천수8 반대(0) 신고
 
 

도를 아십니까? - 윤경재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요한14,7-14)

 

 한동안 길거리에서, 대학교 앞에서, 전철역 앞에서, 버스정류장에서 ‘도를 아십니까?’라는 피켓을 들고 선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조금 어수룩해 보이는 신입생이나 여자들에게 접근해서 그럴듯한 말로 결국 무슨 테이프나 팔고 단전호흡 등을 배우라고 꼬드겼습니다. 도를 무슨 장삿속으로 이용한 것입니다. 심지어는 신흥종교에 빠지게 하고 다단계 판매에 뛰어들게까지 하는 둥 피해가 컸습니다.

‘도(道)’를 한낱 ‘길, 방법, 수단’으로 격하시킨 것입니다. 물론 그런 뜻이 들어 있지만, 본래의 뜻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다양한 의미로 변화하여 사용되었습니다. ‘길, 도리, 이치, 방법, 주의, 사상, 제도, 도교, 도사’ 등의 명사와 ‘가르치다, 말하다, 깨닫다, 인도하다, 다스리다’ 등의 동사가 되었으며 행정단위를 뜻하게 되었습니다.

  道라는 한자를 破字해보면 ‘머리 首’와 ‘달릴 走’가 합해서 이루어진 글자입니다. 머리는 인체에서 가장 위에 달렸으니 으뜸, 높은 경지, 가장 고귀한 것, 본래적인 것, 정신, 하늘 등의 의미가 담겼습니다. 결국 道에는 ‘하늘의 뜻을 향해 달린다.’라는 의미가 담긴 것입니다. 그런 뜻도 모르고 사이비 술수에 전락하여 남용한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본디 하늘을 향한 마음과 강한 호기심이 있습니다. 그런 심중에는 올바르게 살아야한다는 양심의 소리도 담겼지만, 남보다 강한 지혜와 힘을 얻어 뛰어난 사람이 되려는 야망이 숨어 있습니다. 道를 알려는 마음에는 굉장한 지혜와 깨달음으로 인생의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을 붙잡으려는 순수한 면과 남들 위에 서서 다스리고 가르쳐보려는 권력 지향도 있습니다.

  필립보도 무엇인가 특별한 체험을 원하는 심정을 고백한 것입니다. 먼 길을 떠나시려는 주님의 의지를 읽고서 마지막으로 확실한 보증을 받아두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을 뵌다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아버지를 알았고 이미 뵈었다는 예수님 말씀에 그만 자기의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특별한 자가 되고 싶다는 본심을 드러내었습니다. 하느님을 뵙고도 죽지 않은 모세와 같은 사람이 되고픈 것이었습니다.

 이를 꿰뚫어보신 예수께서는 너희와 함께 지냈으며 생활한 나를 보았으면 아버지를 뵌 것이라고 재삼 밝히셨습니다. 평범한 삶속에서도 하느님의 모습과 뜻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道라는 어떤 특별한 수단으로 이 세상에서 벗어나 고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과 착각 속에서 살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차안에서 벗어나 피안으로 건너가려는 열망 그 자체는 참으로 진실하게 간직해야할 덕목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단절을 통해서만 세속적 실존에서 천상적 실존, 차안에서 피안으로 건너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네 삶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건너감의 연속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런 떠남의 삶을 늘 사셨고 제자들에게 확실히 보여 주셨습니다.

  지금 예수께서는 우리가 매 순간 다른 곳으로 떠나가려 결심할 때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선선히 버리고 떠나는 길이 어렵다는 것을 익히 아시고 계시기에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라고 위로와 격려를 주시고 계십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그 길을 밟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평범한 삶의 진리를 사신 한 분을 보았습니다. 바로 선종하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이십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인과 사람들은 그분을 지극히 평범한 속에서 진리를 이룩한 분으로 평가하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일상적인 삶 속에 주어지는 평범한 일과 기회를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지극한 사랑과 정성으로 대함으로써 성인(聖人)이 된 분이다.’라고 모두가 추억합니다. 그분이 남기신“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은 종교적 삶이란 게 무슨 대단하고 특별한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을 사랑스럽고 거룩하게 빛나는 삶이 되게 하는 것이라는 평범한 복음입니다. 누구라도 할 수 있을 이 말씀을 김 스테파노 추기경님께서는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의 말보다 힘이 있습니다.“나는 바보입니다.”라는 말 속에서 우리는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읽습니다. 평생 특별한 체험을 못해 보았다는 김 추기경님의 고백에서 우리는 오늘 복음의 진수를 깨닫게 됩니다.

  참으로 道를 알고 싶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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