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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침묵도 말씀입니다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5-08 조회수542 추천수7 반대(0) 신고
 
 
 

침묵도 말씀입니다 - 윤경재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14,1-6)

 

 

 절대음감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얼마 전에 눈을 감고 피아노의 음정을 척척 알아맞히는 천재 소녀의 모습을 TV에서 본적이 있습니다. 절대음감은 단순히 한번 들은 피아노 음정을 알아맞히는 것을 넘어서 세상 만물에서 나는 모든 음을 들으면 피아노의 음정으로 표현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절대음감을 지닌 이들은 여러 음의 진행을 통해 느끼는 인간의 정서적 변화까지 잡아 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음악을 작곡하거나 연주하여 사람들에게 정서적 감동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능력은 전 인류의 0.01%만이 지녔다고 합니다.

  그런데 상대음감이라는 용어도 있더군요. 상대음감이란 어떤 기준 음을 가르쳐 주면 그 음을 기준으로 다른 음의 높이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즉 들은 노래를 계명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악보만 보고서도 전혀 배운 적이 없는 노래를 자유자재로 부를 수 있게 됩니다. 이 상대음감은 여러 성부의 합창을 부르거나 혼성 중창을 부를 때 필요한 능력이라고 합니다. 화음을 정확하게 넣을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상대음감은 훈련을 통해서 얼마든지 획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인간에게는 이런 절대음감이나 상대음감보다 더 중요한 능력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세상과 자연의 모습에서 울려 나오는 창조주의 목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오감을 넘어서 전해오는 울림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을 넘어섭니다.

  성경에는 이런 상태를 ‘주님의 말씀’이 내렸다라고 표현합니다. 열왕기 상 18,9-18절에 엘리야는 호렙 산에서 주님을 만납니다. 거기서 “바로 그때에 주님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할퀴고 주님 앞에 있는 바위를 부수었다. 주님께서는 바람 가운데에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뒤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진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간 뒤에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불 속에도 계시지 않았다.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라고 표현합니다. 요란한 바람과 지진과 불길 속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주님을 느꼈다는 표현을 이렇게 하였습니다. 다른 예언자들도 이런 체험을 말씀이 내렸다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도저히 언어로 나타낼 수 없기에 그냥 하나의 약속처럼, 용어처럼 ‘주님의 말씀’이 내렸다라고 사용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체험은 쌓으면 쌓을수록 점점 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느끼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자기의 체험이 완전하게는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깊어집니다. 이런 상태를 영의 가난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주님을 체험했다는 것을 말로는 나타낼 수는 없지만, 그의 생활 태도는 엄청나게 변화되어 있게 됩니다. 겸손과 청빈과 순명의 정신이 그러면서도 기쁨과 담대함이 생활 속에서 드러납니다. 자신의 변화가 곧 증거입니다.

  주님의 침묵과 부재는 참으로 형언하기 힘든 체험이라고 합니다. 가난한 이의 벗이셨던 마더 테레사는 지도 신부께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제 안에는 모든 것이 죽어버린 듯 끔찍한 어둠이 있습니다. 제가 사업을 시작한 즈음부터 계속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원하면 원할수록 예수님은 저를 덜 원하십니다. 저는 예수님이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방식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싶지만 예수님과 멀어진 느낌, 끔찍한 공허함, 하느님이 제 옆에 계시지 않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고통의 순간도 모든 이에게 거절당한 채 고통 속에 버려진 캘커타 거리의 사람들이야말로 ‘나의 영성생활을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고백함으로써 해소되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굴복’임을 깨달았습니다. 주님 사랑만이 절실하게 필요함을 고백한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외친 예수의 마지막 기도도 결국 침묵 속에 계시는 하느님 사랑만 필요함을 고백한 것입니다. 요한복음서는 12,27-32에서 침묵 속에서 응답하시는 하느님을 그렸습니다. “이제 제 마음이 산란합니다.”라는 말씀이 영적 어둔밤과 내적 외적 변모가 일어났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제자들이 겪을 영적 어둔밤을 예수님께서는 익히 아시고 미리 해결책을 가르쳐 주십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라는 말씀만이 우리가 붙잡아야 할 동아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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