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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46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5-04 조회수440 추천수4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부활 제4주간 월요일]

<나는 양들의 문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1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2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3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4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5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6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어제 같은 동네에 사는 여동생과 함께 성당을 가다가 여동생이 들려준 얘기부터 소개하려고 합니다. 여동생은 고1 여고생 딸을 데리고 토요일이면 노인요양시설에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제 토요일은 저도 그곳에서 새벽 미사에 참례하고 다른 일정으로 먼저 떠났기에 동생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곳에  계시는 아버님, 어머님들의 환자복 등 의복을 정리하는 일을 도와주고 왔다고 합니다.

요즘은 봉사점수도 내신과 대학입시에 반영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저학년 때에 미리 봉사시간을 채우면 그만큼 유리하므로 딸 아이와 함께 와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봉사를 통하여 어린 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을 보고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다면 심성도 바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아이들의 사회 봉사활동이 계기가 되어 부모들도 봉사하는 삶으로 변한다면 일거양득입니다.

그곳 직원봉사자께서 의복 등을 아주 정성껏 접고 있어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집에서 하는 것처럼 대충대충 접으면 될 것 같은데 구겨진 곳은 일일이 손으로 펴서 아주 정성스럽게 접고 있어서 그 이유를 물어봤다고 합니다. 그곳 선생님의 얘기는 "우리 예수님이 입을 옷인데 함부로 할 수 없다"며 그곳의 어르신들을 예수님으로 생각하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옷이 구겨져 있으면 그 자국 때문에 욕창이 생길 수 있다며 일일이 손으로 펴고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 예수님이 입을 옷인데 함부로 할 수 없다" 이 한 마디보다 우리 신앙을 더 잘 표현하여 감동스러운 얘기는 저는 아직껏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말씀을 아무리 묵상해도, 1년 열두 달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미사에 참석한다고 한들 이보다 더 올바른 신앙은 제게는 생겨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 직원 선생님의 말씀 한 마디를 전해 들었던 것이 그동안 수많은  묵상과 강론 말씀보다 제게는 더 큰 가르침을 주웠습니다. 용장밑에 약졸 없다는 말처럼 존경스러운 신부님의 가르침을 보고 배운 그곳 직원들의 모습임을 실감하였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외형상으로는 두 가지 사실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첫 말씀은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엉터리로 가르치는 사람은 도둑이며 강도라는 것입니다. 당시 민중을 가르치는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도둑이며 강도라고 하였겠습니까?

지금 우리 사회도 그릇된 식자들에 의해서 우리 사회가 무척 혼란스럽습니다. 못 배운 사람들 때문에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라 많이 배운 사람들 때문에 우리 사회가 혼란스럽습니다. 못 배운 정치인은 한 사람도 없으며, 못 배운 학자들도 한 사람도 없으며, 못 배운 언론인들도 한 사람도 없으며, 못 배운 종교 지도자들도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런 자들 때문에 사회가 혼란스럽기 때문에 식자우환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우환이 자신에게만 국한되면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이런 자들이 세상을 병들게 하고 있으므로 우환이 멈출 날이 없습니다. 도덕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不尙賢, 使民不爭.'이라 하여 賢을 숭상하지 않으면 백성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이는 하늘의 뜻을 깨달은 진정한 현자가 없으므로 소위 현자라고 하는 잘못된 지식인들을 경계하라는 가르침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또 이런 자를 숭상하지 마라는 뜻도 있을 것입니다.

유불도의 해박한 동양사상으로 성경을 새롭게 해석하여 교리적 성경해석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성경해석으로 뒤늦게 조명 받고 계시는, 민족의 많은 선각자를 배출한 정주 오산학교 교장이셨던 다석 유 영모선생님은 이를 몸소 실천하신 분으로 자식들에게 농사를 가르치며 정규교육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공교육도 부족하여 사교육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는 지금 어디로 향해서 가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두 번째 말씀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하시며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고 통렬한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도둑이며 강도"라는 말씀을 오늘 두 번이나 말씀하고 계시므로 민중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정의감에 더욱 고개가 숙여 집니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하신 양들의 문은 생명의 문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의 羊 門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희생 제물이 되기 위하여 양들이 들어가는 죽음의 양 문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양 문’ 곁에는 히브리 말로 벳자타라고 불리는 못이 있었다. (요한 5, 2)]를 통하여 알 수 있듯이 오늘 말씀의 '양들의 문'은 이를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루살렘의 양 문을 향해 걸어가는 양들입니다. 이런 양들의 신세인 우리에게 그 곳을 향하는 발걸음을 돌려서 생명의 문으로, 당신의 가르침으로 돌아오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성전으로 가는 발걸음을 돌려서 푸른 초원으로, 양 우리로 돌아가야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듯 우리 교회도 저희들에게 푸른 풀을 먹여주고 생명수를 공급하여야 양들의 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죽음의 양 문이 있는 또다른 형태의 유대교의 성전일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저희에게 먹여줄 푸른 풀과 생명수는 그릇됨이 없는 오직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말씀을 믿고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바로 우리 신앙입니다. 말씀을 그릇되게 알려주며 제물이나 챙기는 일부 잘못된 교회에 대하여 "도둑이며 강도"라는 우리 사회의 비판적 목소리가 바로 오늘 예수님의 음성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으로, 우리 교회는 이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소원하며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당시의 교회지도자에 대하여
도둑이며 강도라고 통렬하게 비판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의 잘못된 모든 지식인에게 해당하는 말씀임을 알았습니다.
성전으로 향하는 양 문은 죽음의 양 문이며
당신의 가르침으로 돌아오는 문은 생명의 문으로 알려주셨습니다.
부디 이 땅에 준엄하신 성령님을 보내주시어
이 땅의 모든 식자들과 교회가 당신의 가르침에 그릇됨이 없도록,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는 주님의 양 문이 되도록 바르게 잡아주시고
저희는 언제나 주님의 양 문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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