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막았던 돌이 치워졌다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4-12 조회수617 추천수6 반대(0) 신고
 
 

막았던 돌이 치워졌다 - 윤경재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으로 한걸음에 달려간 한 여인에게 펼쳐진 것은 무덤을 가로막았던 무거운 돌이 치워진 놀라운 광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빈 무덤의 정확한 의미를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달려갔습니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성경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는 믿음의 눈이 필요했습니다. 모든 상황은 사랑의 눈으로 보아야 오해 없이 제대로 통찰하게 되고 믿음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 간절함과 베드로의 충실함에 요한의 사랑이 덧붙여져야 믿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무덤은 인간의 한계를 상징합니다. 더는 진행되지 않는 영원한 닫힘, 그것은 단절이며 이별이며 소외입니다. 무덤의 문을 가로막았던 돌은 남아있는 자들이 갖다놓은 것입니다. 죽음의 세력이 우리를 침범하지 못하게 제한해 놓은 것입니다. 죽음을 알려하지 않고 부정한 것으로 삼아 격리시켜 놓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스스로 가로막았던 돌을 치워버리셨습니다. 죽음이 무엇인지 정면으로 바라보라고 초대하셨습니다.

  죽음이 삶과 단절된 그 무엇이 아니라 서로 소통할 여지가 있다고 보여주셨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여 감히 접근조차 하지 못했던 우리에게 죽음도 하나의 길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주간 첫날은 사흘 째 되는 날입니다. 사흘째 되는 날에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습니다. 그날은 때가 되지 않았지만, 성모님의 요청으로 지상의 잔치가 천상의 잔치로 바뀌는 날이었습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은 성전을 허물고 다시 세우는 기간이었습니다. 두 번째 표징인 왕실 관리 아들이 살아난 날도 이틀 뒤, 사흘 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일곱 번째 표징인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 라자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온 표징도 이틀을 더 머무르시고 사흘 째 날에 비로소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그 사흘 째 되는 날은 단절이 아닙니다. ‘영원’이란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는 초월로 인식하는 우리에게 현재라는 시간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눈이 열려 진리를 듣고 보는 자에게 ‘영원’은 현재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요한 5,25)

  예수님께서는 ‘여기 부활이 있다.’ ‘내가 너희에게 부활을 설명하겠다.’라고 하지 않으시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라고 직접 선언하셨습니다. 언제나 지금 이곳에 와 계시는 분께서 “나는 부활이다.”라고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전 존재가 사랑으로 변하는 자는 언제나 부활을 살 수 있습니다. 그는 더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죽음에 이끌려가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구약에서 말하는 죽음을 이기는 의인들이 겪는 ‘혁명적 사건’에서 인간의 삶을 재탄생시키는 ‘보편적 사건’으로 변화하였습니다. 이제 인간의 삶은 어떤 방면으로 살펴보아도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부활 이전에는 무엇이든 가진 자, 여유 있는 자, 힘 있는 자가 삶의 의미를 독점하였다면, 이제는 인간이 겪는 슬픔, 고통, 질병, 고독, 소외, 불행, 불안, 가난, 배고픔이 모두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죽고 사랑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은 열린 무덤처럼 죽음을 하나의 과정으로 또 열린 문으로 인식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나온 피와 물의 힘, 성령의 숨은 인간이 스스로 일어나고 다른 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 힘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깨달음으로 불러 줍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이라고 믿고 고백하게 합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