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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자가의 영성-껍데기와 알맹이" - 4.10,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4-11 조회수594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4.10 주님 수난 성금요일 
                                                              
이사52,13-53,12 히브4,14-16;5,7-9 요한18,1-19,42

     
                                        
 
 
 
 "십자가의 영성-껍데기와 알맹이"
 


십자가의 영성은
껍데기 영성이자 동시에 알맹이의 영성입니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껍데기가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노인들을 대할 때,
또 산전수전 다 겪으며
서서히 중년 넘어 서는 형제자매들의 모습을 대할 때
‘아, 이제 서서히 껍데기가 되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 40대 초반의 빛나는 모습의 사진을 보다
요즘 사진을 보면서도 실감하는 사실입니다.
 
영원한 알맹이는 없어,
알맹이에서 서서히 껍데기로 변모되어 가다
마침내 버려지는 게 삶의 순리 같습니다.
 
껍데기가 되어가는 것을 인정 않고
알맹이로 머물고자 안달하는 것은 참 보기가 민망합니다.
 
그러나 깊이 보면
껍데기와 알맹이는 하나임을 깨닫게 됩니다.
 
겉 사람은 날로 쇄락해 가도
속사람의 알갱이는 날로 새로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도 이런 진리를 설파하고 있습니다.

“새 것은 옛 것에 감추어져 있고,
  옛것은 새 것 속에 있다.”

바꿔 말해
‘알맹이는 껍데기 안에 감추어져 있고,
껍데기는 알맹이 속에 감추어져 있다.’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껍데기와 알맹이는 결코 분리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껍데기의 부모 없이
어찌 알맹이의 자식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이 이렇게 유지될 수 있는 것도
껍데기들이 알맹이들을 감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세월과 함께 거룩하고 아름다운 껍데기의 삶으로,
알맹이의 삶으로 변모되어 갈 수 있을까요?
 

바로 초지일관 거룩하고 아름다운 껍데기,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1독서의 주님의 종을 통해 거룩한 껍데기,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정체가 환히 드러납니다.
 
‘그에게는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만한 모습도 없었다.’
보잘 것 없는 껍데기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입니다.
 
아닙니다.
이어 거룩한 껍데기의 정체가 감동 깊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는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그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나의 종은 많은 이들을 의롭게 하고,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리라.’

1독서 이사야의 주님의 종에 대한 말씀,
그대로 거룩한 껍데기
십자가의 그리스도께 대한 찬가입니다.
 
어찌 십자가의 그리스도뿐이겠습니까?
 
알맹이 자녀들을 위해 헌신하는 무수한 껍데기 부모들,
세상 죄악의 짐을 짊어지고 감옥에서,
또 소외되어 가난하게 사는 세상의 껍데기 사람들
얼마나 많은지요?


이 껍데기 인생들에게 평생 사랑을 쏟은 예수님께서
마침내 십자가에서 거룩한 껍데기로 삶을 마감하셨습니다.
 
자신을 낮추시고 비우시어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느님의 껍데기의 삶에 충실하셨던 주님이셨습니다.
 
감사해야 됩니다.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껍데기 있어
알맹이 인류로 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알맹이들을 싸고 있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라는
거룩한 껍데기입니다.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껍데기 없이는
세상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여 우리는 십자가 경배 시
‘보라, 십자나무 여기에 세상 구원이 달렸네.
  모두 와서 경배하세.’ 세 번 노래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수난 당하시는 모습은
그대로 세상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자,
역설적으로 세상의 참 알맹이 이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런 예수님이 계시지 않다면 세상은 얼마나 공허할까요.
깜깜한 허무의 어둠일 것입니다.
 

저는 수난 복음 중
우리 모두를 향한 물음 셋에 주목합니다.
 
이 세 물음에 옳게 대답해야
거룩하고 아름다운 껍데기이자 알맹이로 살 수 있습니다.

“누구를 찾느냐?”

경비병들에 대한 예수님의 물음이지만,
우리 모두를 향한 물음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누구를 찾습니까?
 
“나자렛 사람 예수요.” 경비병들처럼
우리가 평생 끊임없이 찾아야 할 분은
오직 한 분 거룩한 껍데기,
십자가의 그리스도 예수님뿐입니다.

“진리가 무엇이오?”

빌라도의 예수님께 대한 물음,
바로 우리에 대한 물음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무엇이라 대답하겠습니까?
 
“진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이요.” 대답이 정답입니다.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님 자체가 진리입니다.

“당신은 어디서 왔소?”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임을 깨달은
빌라도의 예수님을 향한 물음입니다.
 
또한 우리를 향한 물음이기도 합니다.
 
직답을 피한 예수님입니다만
우리는 어제 복음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하느님께로 왔다.” 이게 정답입니다.
 
예수님처럼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가는 우리들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영원한 본향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 물음에 이런 확신을 지니고 대답할 수 있을 때
거룩하고 의연하고 아름다운 껍데기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확신으로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하셨기에
주님은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주님의 마지막 두 말씀이 결론입니다.
 
“목마르다.”
예수님처럼, 낮추고 비워 거룩한 껍데기의 삶을 원하는 자들, 끊임없이 하느님을 목말라 하기 마련입니다.
 
“다 이루어졌다.”
예수님의 마지막 임종어(臨終語)입니다.  
 
완전히 비워 하느님의 뜻이 다 이루어지게 했다는,
하여 텅 빈 충만의 거룩한 껍데기가 되었다는
예수님의 선언입니다.
 
진정 하느님을 목말라하여 거룩한 껍데기가 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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