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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벙어리치유 (마태9,32-38)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7-06 조회수9,290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7월 6일 화요일

[연중 제14주간 화요일벙어리치유 (마태9,32-38)

   

 

1독서<너의 이름은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창세32,23-33)

23 야곱은 밤에일어나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데리고 야뽁 건널목을 건넜다.

24 야곱은 이렇게 그들을 이끌어 내를 건네 보낸 다음자기에게 딸린 모든 것도 건네 보냈다.

25 그러나 야곱은 혼자 남아 있었다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동이 틀 때까지 야곱과 씨름을 하였다.

26 그는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그래서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 엉덩이뼈를 다치게 되었다.

27 그가 동이 트려고 하니 나를 놓아 다오.” 하고 말하였지만야곱은 저에게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8 그가야곱에게 네 이름이무엇이냐?” 하고 묻자, “야곱입니다.” 하고대답하였다.

29 그러자 그가 말하였다.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

30 야곱이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십시오.” 하고 여쭈었지만,

그는 내 이름은 무엇 때문에 물어보느냐?” 하고는그곳에서 야곱에게 복을 내려 주었다.

31 야곱은 내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을 뵈었는데도 내 목숨을 건졌구나.” 하면서그곳의 이름을 프니엘이라 하였다.

32 야곱이 프니엘을 지날 때 해가 그의 위로 떠올랐다그는 엉덩이뼈 때문에 절뚝거렸다.

33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오늘날까지도 짐승의 엉덩이뼈에 있는 허벅지 힘줄을 먹지 않는다그분께서 야곱의 허벅지 힘줄이 있는 엉덩이뼈를 치셨기 때문이다.

 

화답송

시편 17(16),1.2-3.6-7.8과 15(◎ 15ㄱ 참조)

◎ 주님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 뵈오리이다.

○ 주님의로운 사연을 들어 주소서제 부르짖음을 귀여겨들으소서거짓 없는 입술로 드리는제 기도에 귀 기울이소서

○ 당신 앞에서 저에게 승소 판결 내리소서당신 눈으로 올바름을 보아 주소서제 마음 떠보시고 밤중에도 캐 보시며저를 달구셔도 부정을 찾지 못하시리이다

○ 하느님당신이 응답해 주시니제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귀 기울여 제 말씀 들어 주소서놀라우신 당신 자애를 베푸소서당신 오른쪽으로 피신하는 이들을적에게서 구해 주소서

○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 뵈옵고깨어날 때 당신 모습에 흡족하리이다

 

복음<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마태9,32-38)

32 사람들이 마귀 들려 말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마귀가 쫓겨나자 말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그러자 군중은 놀라워하며,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제1독서(창세32,23~33)

   

그러나 야곱은 혼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동이 틀 때까지 야곱과 씨름을 하였다. 그는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그래서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 엉덩이뼈를 다치게 되었다. 그가 "동이 트려고 하니 나를 놓아 다오." 하고 말하였지만, 야곱은 "저에게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25~27)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간의 삶을 청산하고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결심한다. 말하자면 지금은 타향 생활 20년만에 드디어 다시 고향길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야곱이 집에 돌아가는 것을 생각할 때에 제일 장애가 되는 것이 자신의 형 에사우를 만나는 두려움이다.

 

사실 지금까지의 야곱의 삶을 보면, 그가 한번 마음 먹은 것은 안되는 일이 없었다.

치사한 방법으로 기어이 장자의 권한도, 아버지 이사악의 축복도 독차지했고, 마음에 둔 여인도 끝까지 참아서 결국에는 아내로 맞이했었다.

 

야곱은 목표를 한번 정해 놓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목표를 반드시 관철시키는 불패의 삶을 살았다.

그런데 이제 귀향을 앞두고, 장애와 자기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야곱은 형 에사우가 복수의 칼을 들고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형 에사우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소위 '뇌물'을 준비하여(창세32,14~23) 미리 보낸다.

야곱은 밤에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이끌어 야뽁 강을 건네 보낸 다음, 자기에게 딸린 모든 것도 건네 보낸 뒤(창세32,24) 이제 혼자 남게 되는 것이다.

 

야곱은 제일 먼저 형 에사우에게 전령을 보내어 상황을 파악하고, 형 에사우의 마음을 떠 본다(창세32,4~6).

형 에사우가 장정 사백명을 거느리고 마중 나온다니까 야곱은 겁을 내어 살려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한 뒤, 인간적인 방법으로 형을 만날 준비를 한다(창세32,10~22).

 

형 에사우에게 바치는 뇌물의 양이 많음을 드러냄과 동시에 여차하면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여 도망갈 준비까지 갖춘다.

뇌물을 종들의 손에 한 떼씩 나누어 들게 하는데, 그것을 거리를 두어 행렬지어 가게 하고, 레아보다도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아내 라헬과 아들 요셉을 제일 뒤에, 야곱의 자신의 곁에 배치하여 가게끔 해놓는다.

 

그렇게 해놓고는, 이제 야뽁 강가에 혼자남게 되는 것이다.

야곱은 분명히 형 에사우를 만날 생각에 불안과 초조에 떨며 고민도 하고, 기도도 했을 것이다.

 

바로 이 순간, 야곱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상태에 있게 되었을 때에, 자신의 당면 문제 뿐만 아니라 자신 안의 근본적인 내면의 문제까지 정직하게 들여다 보게 되면서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이 순간을 준비하셨고 기대하셨으며,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신다.

 

'어떤 사람이'라고 번역된 '이쉬'(ish) '한 사람' 혹은 '어떤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것은 야곱이 그 사람에 대하여 어떤한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씨름을 하였다'로 번역된 '와예아베크'(wayeabeq)의 어근 '아바크'(abaq)는 본래 '먼지에 쌓이다', '붙잡다'는 뜻이다.

 

이것은 땅에서 먼지가 일어나 쌓일 정도로 서로 붙잡고 격렬하게 싸우는 모습을 묘사하는 말로써 '씨름하다', '맞붙어 싸우다'라는 뜻을 지녔다.

원문에서 이 단어가 사용된 것은 야곱과 하느님의 천사와의 씨름이 매우 격렬했음을 보여준다.

 

야곱이 엉덩이뼈(환도뼈)가 실제로 다치게 된 것과(창세32,26) 호세아 예언자의 말을 종합해 볼 때(호세12,2~4) 실제로 하느님의 사자와 야곱이 씨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씨름은 단순한 힘겨루기가 아니었고, 야곱이 하느님의 사자에게 매달려 울부짖으며 처절하게 간구하는 기도까지 포함된 씨름인 것이다. 

 

야곱은 처음에는 '어떤 사람'이 하느님의 사자인지 몰랐으나, 그가 곧 하느님의 사자임을 알게 되었고(창세32,27), 자신의 생애 최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하느님께 복을 간구했던 것이다.

 

'그는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여기서 '이길'에 해당하는 '야콜'(yakol) '승리를 얻다', '해내다'(1사무26,25) 라는 뜻 뿐만 아니라 '능력이 있다'(창세13,6), '우세하다', '성공하다'(1열왕22,22) 라는 의미도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사자가 야곱에게 패배를 당했다는 말이 아니라 야곱이 매달리는 것을 꺽을 수 없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백성이 필사적으로 매어 달리며 간구 할 때 하느님께서 외면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해 주는 말이기도 하다.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원문은 '와익가 뻬카프 예리코'(yaigga bekap yereko)로서, 직역하면 '그러자 그는 그의 넓적다리 바닥을 쳤다'이다.

 

여기서 '넓적다리' 해당하는 '야레크'(yarek) '넓적다리'(창세24,2.9: '샅'; 탈출28,42; 민수5,22: '허벅지')외에 '허리'(탈출32,27; 시편45,4)로도 번역된다.

허리나 넓적다리는 다같이 인간의 생식기관과 관련된 부분이며, 생(生)의 원천을 상징한다(히브7,5).

 

또한 손바닥으로 치는 것은 깊은 슬픔과 수치와 애절한 회개의 표시였고(예례31,19; 에제21,12), 서약을 행할 때에는 넓적 다리 아래에 손을 넣고 서약함으로써 서약에 대한 보증과 신실성을 표현했다(창세24,2; 47,29).

그리고 '바닥'에 해당하는 '카프'(kap)는 '우묵한 곳', '바닥', '구멍'을 뜻하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넓적다리의 우묵한 부분'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문의 엉덩이뼈(환도뼈)의 정확한 부위 둔부 아래쪽에 있는 좌골 (坐骨)로 엉덩이의 골반을 형성하는 좌우 한 쌍의 뼈(창세24,2)이다.

 

한편 '쳤다'에 해당하는 '나가'(naga) '닿다', '만지다'(창세3,3; 레위5,3; 다니8,5), '건드리다'(잠언6,29)라는 뜻으로서 본문에서는 하느님의 사자가 야곱을 때린 것이 아니라 단지 만지기만 하셨음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사자가 만지기만 했는데도 야곱이 무기력하게 된 것은 하느님의 능력의 위대성을 보여준 것임과 동시에 인간의 무능과 한계를 다시 한 번 보여준 것이다.

  

'다치게 되었다'

 

'다치게 되었다' 해당하는 '왓테카'(watheqa)의 어근 '야카'(yaqa)의 기본 의미는 '찢어지다', '탈골되다'라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이것은 뼈가 살을 찢고 빠져 나가 탈골된 상태나 뼈가 부러진 상태라고 볼 수도 있다.

 

하느님께서 야곱의 엉덩이뼈를 다치게 하신 이유 육신을 믿고 살아온 야곱에게 육신의 나약함을 일깨워 주기 위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야곱이 하느님을 상대로 씨름할 때 버텨진 힘의 근원을 치심으로써, 더 이상 하느님을 경쟁자로 여기지 못하게 하셨고, 꺾인 다리를 통해 그가 붙들고 의지해야 할 대상은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신 것이다.

 

또한 생식과 관련된 엉덩이뼈를 다치게 한 것 앞으로 태어날 야곱의 후손들, 즉 계약의 자손들인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하느님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동이 트려고 하니 나를 놓아 다오'

 

'나를 놓아 다오'라고 번역된 '샬레헤니'(shalleheni; let me go)는 직역하면 '너는 나를 가게 하라'는 뜻이 있는 '샬라흐'(shallah) 강조 능동 명령형이다.  

하느님의 사자가 야곱에게 자신을 보내 달라고 부탁한 것이 아니라 강력하게 명령한 것이다.

 

하느님의 사자가 얼마든지 야곱을 뿌리치고 떠나갈 수 있음에도 굳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육신이 망가진 야곱이 과연 하느님을 의지하고 있는지 시험하시고자 함이다.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로 번역된 '로 아샬레하카'(lo ashallehaka)는 '절대 당신을 보내지 않겠다' 뜻인데, 강한 금지를 나타내는 '로'(lo)와 '샬라흐'(shallah) 강조형 능동 미완료가 사용된 사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야곱은 축복하여 주지 않는 한, 결코 보낼 수 없다는 자신의 의지를 강조하여 전달한 것이다.

이러한 야곱의 억지에 가까운 요구는 자신과 씨름한 상대가 하느님의 사자이며, 하느님의 사자의 축복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7월6일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구원은 하느님의 선물 

(마태 9,32-38)

그때에 32 사람들이 마귀 들려 말 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마귀를 사탄(적대자), 더러운 영으로 혼용한다사탄은 하느님의 일()을 사람의 일뜻으로 주는 뱀이며 또 하느님의 말씀(계명)을 사람의 말(계명)로 전하는그래서 사람을 더럽게용서받지 못하게 하는 그 더러운 말을 하는 더러운 영(퓨뉴마다이몬), 그래서 하느님의 뜻계명그 하느님의 말씀을 할 줄 모르는 그 말 못하는 사람인 것입니다그런 이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반대하는 엉뚱한 곳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루가4,6-7) 6 사탄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내가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내가 받은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오. 7 당신이 내 앞에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가 될 것이오.”

예수님을 유혹한 사탄이 인간이야 얼마나 더 쉽게 넘어뜨리겠는가?

 

33 마귀가 쫓겨나자 말 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그러자 군중은 놀라워하며,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선택된 민족으로 그 자신들이 마귀를 쫓아내지 못했기에,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힘이 아닌 마귀의 힘을 빌렸다고 우기는 것예수님은 하느님의 힘말씀으로 쫓아내신 것입니다.

마귀의 말은 거짓어둠의 빛으로 하느님의 말씀참 빛 앞에 사라지는 법입니다.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하느님의 뜻그분 말씀으로 마귀를 쫓아 내셨듯 마귀의 말로 구원의 힘믿음이 허약해진 병자들을 말씀복음 선포로 고쳐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듯~

 

(루가4,13)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쫓겨난 마귀는 오늘 우리를 거짓 유혹으로 넘어뜨리려 하지요.

십자가로 얻는 하늘의 의로움을 얻지 못하도록자기 의로움을 위한, 얄팍한 신앙인으로 살게(2코린11,14) 또한 헛된 신앙으로 세상의 것을 얻도록빈말 기도를 많이 하도록 유혹 합니다그래서 정작 말씀을 묵상해야 할 시간까지 빼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세상의 노예로그리고 법의 신앙으로 용서(구원)의 힘을 잃어 기()가 꺾여있습니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일꾼은 성령이신 것하늘의 수확물은 사람의 관점이 아닌 하느님의 뜻으로 걷어야 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어떤 것이 밀()인지 가라지()인지 제자들은 분별을 할 수가 없기에 뽑지 말고 내버려 둬라’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13,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인간의 말(계명)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계명)으로 추수할 천사하느님의 영성령 이십니다그 성령께서 하느님의 계명인 나무의 대속 그 복음으로(탈출15,25) 믿는 이의 무죄를 선언하시며 단물로말로의인으로 추수해 주십니다.(로마3,32) 그러기에 반드시 그 우리의 보호자 성령을 청해야 하는 것이지요그 성령을 의지 못하는 이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로마8,9-10) 9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십자가의)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에페2,8-9)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아멘.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복음(마태9,32~38)


마귀가 쫓겨나자 말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 그러자 군중은 놀라워하며,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  (33~34)

 

'말못하는 이'에 해당하는 '코포스'(kophos; dumb) '둔한', '무딘'이라는 뜻을 지니며, '벙어리'(마르9,25; 루카11,14) 뿐 아니라 '귀머거리'(마태11,5; 루카7,22)도 가리킨다.

 

여기서도 귀먹고 말못하는 복합 장애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본 적이 없다'에서 '본'에 해당하는 '에파네'(ephane; it was seen; has been seen) '보다'라는 뜻의 '파이노'(phaino) 3인칭 단수 직설법 과거 수동형이다.

 

그래서 직역하면 '이스라엘에서 이런 일이 보여진 때가 없었다'이다.

 

희랍어 성경에서 수동형이 사용될 때, 행동의 주체가 뚜렷이 나타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행위로 볼 때가 있다.

 

여기서 '에파네'(ephane) 수동태로서, 마귀를 쫓아내고 벙어리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것과 같은 놀라운 기적은, 하느님께서 예수님 이전에는 일어나도록 하신 적이 없었다는 뜻이다.

 

이런 일은 이사야 예언자가 이사야서 35장 5절, 6절에서 오실 메시야께서 행하실 일에 대해서 예언한 내용과 같다.

 

한편, 앞절에서 '군중'에 해당하는 '호이 오클로이'(hoi ochloi; the multitudes; the crowd) 예수님의 기적에 대해 경이롭게 생각하고 놀라움을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마태오 복음 9장 34절 '바리사이들'에 해당하는 '호이 파리사이오이'(hoi pharisaioi; the Pharisees)가 오히려 예수님을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마태10,25)의 힘을 빌리기 위해 그와 접촉하는 자로 모함한 사실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자체에 대해 반박할 수 가 없게 되자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의 원천에 대해서 비방한 것이다.

 

같은 사건에 대해서 '눈먼 두 사람'( 마태9,31)이나 '군중'(마태9,33)과는  전혀 상반된 반응을 보인 이러한 사실을 제시함으로써, 마태오 복음사가는 '믿음'이란 객관적 사실에 대한 경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 자각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마태오 복음 8장 1절부터 시작되어 마태오 복음9장 34절로 마무리되는, 메시야로서의 예수님의 신적 권능을 드러낸 9가지 기사에 대한 바리사이들로 대변되는 이스라엘의 종교 기득권자들의 반응을 총체적으로 기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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