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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12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20 조회수587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사순 제3주간 금요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니,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28ㄱㄷ-34

그때에 28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34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율법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첫째가는 계명 하나만 알려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계명을 알려주셨으므로 그 이유를 묵상해야 될 것 같습니다.
 
첫째 계명은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느님을 사랑할 방법을 몰라서 사랑하지 못 하겠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지금 제 곁에 계시면 성심성의껏 모시고 싶지만 두 분 모두 하늘나라로 가셨으니 사랑할 방법이 없습니다.
 
하늘에 계신 제 부모님을 어떻게 사랑하는 것이 부모님을 사랑하는 방법인지를 저는 알지 못합니다. 이처럼 저희들도 하느님을 사랑할 방법도 모르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섬긴다고 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하느님을 올바르게 섬기는 방법을 알려주시고 계십니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이보다’는 첫 계명과 둘째 계명입니다. 그러나 가장 큰 것은 하나이므로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이라 하였으므로 가장 큰 것이 두개가 존재하므로 이는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으나 바로 이 점에서 예수님의 위대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이 말씀은 첫 계명과 둘째 계명은 하나의 계명이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가장 큰 계명은 둘이 아니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계명을 물었는데 두 계명을 말씀하신 것은 두 계명이 하나라는 뜻입니다. 두 계명이 하나의 계명이 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이 바로 네 이웃이라는 뜻이므로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말씀입니다. 이렇게 첫째와 둘째를 구분한 것은 율법학자의 음흉한 올가미 수법에 결코 말려들지 않는 예수님의 치밀한 방어논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첫째 계명, 둘째 계명, 이런 언어의 함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첫째가 어디 있고 둘째가 어디 있습니까? 모두가 첫째인 것입니다.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모두는 天職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신분의 차이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습니까?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아래에 사람 없는 것입니다.
 
이런 첫째, 둘째라는 구분만 사라저도 우리 아이들이 푸른 들판에서 순한 양들처럼 마음껏 뛰놀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경쟁의식은 사라질 것입니다. 모든 성인들의 가르침은 첫째, 둘째라는 이런 분별심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에게는 이런 차별이 있을 수 없음으로 모든 이에게 똑같이 해를 비추시고 비를 내려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산해진미 진수성찬으로 제사상을 차렸다고 하여 제사를 잘 모시는 것도 아니며 호화주택에서 제사를 모셔야만 돌아가신 부모님을 잘 모시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형제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돌아가신 부모님을 잘 모시는 것이며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이웃들과도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부모님을 잘 섬기는 것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이치도 이와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은 한 분이라 하였습니다. ‘한 분’에서 ‘한’은 하나이며 ‘분’은 인격으로 의인화하여 표현한 것이므로 이를 다시 표현하면 일자(一者)입니다. 여기서 부득이 논리의 비약을 해보려고 합니다. 하나(一者)인 것은 모두 하느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몸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므로 우리 몸도 하느님이라는 뜻입니다. 또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도 모두 하느님입니다.
 
우리 사회도 하나이므로 우리 사회가 바로 하느님이며, 온 우주가 하나이므로 온 우주가 바로 하느님입니다. 또 하나는 전체를 의미하며(一卽多), 전체는 각 원소들의 집합(多卽一)이므로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와 관계되는 모든 것이 하느님이므로  내 이웃이 아프면 하느님이 아픈 것이며, 내 이웃이 굶주리면 하느님이 굶주리는 것이며, 이 땅이 파괴되면 하느님의 몸이 파괴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하나(一者)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므로 네가 아프니 내가 아파야 진정으로 한 분이신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라 할 것입니다.
 
이는 결국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로 귀결 될 수밖에 없으므로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율법학자의 입을 빌려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다." 이 말씀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우회적으로 다시 알려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요즘 의미로 해석하면 하느님께 받치는 재물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께 바치는 그런 재물이 아니라 우리 이웃을 사랑하는 길임을 새롭게 하며 오늘 묵상을 마무리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사람이 곧 하느님’이라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저희가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내 이웃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는 그런 마음임을 알았습니다.
언제나 이런 마음을 가지며 살아 갈 수 있도록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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