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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11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19 조회수554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한국 교회의 수호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6.18-21.24ㄱ<또는 루카 2,41-51ㄱ>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나라의 건국시조나 종교의 창시자에게 탄생신화가 없는 것은 어쩜 더 이상하다고 할 것입니다. 불교경전에는 부처님에 대한 이런 신화적 요소는 우리 복음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분량이 있으며 심지어는 전생의 행적을 기록한 본생경이라는 경전까지 있습니다.

불가에서는 이런 내용들이 경전에 기록되었다 할지라도 실제 사실로 믿는 불자는 거의 없으며 스님들도 이를 사실로 믿지 않고 있습니다. 단지 그런 복덕을 쌓아야 한다는 교화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교는 예수님에 대한 이런 기록들을 진실로 믿어야 하고 이를 의심하면 믿음을 의심받아야 하므로 난처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런 신화적 요소들이 예전에는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는데 필요하였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장애가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향후 우리 그리스도교의 최대 장애는 타 종교도, 무신론도 아닙니다. 인류의 과학문명의 발달과 합리적 사고가 우리 그리스도교의 최대 장애가 되고 있다는 현실을 우리 교회 지도자분들은 직시하였으면 합니다.

제가 반백년의 세월을 허송한 후에 우리 그리스도교에 입교한 것도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교리를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고 이를 실천하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는 신부님의 말씀이 없었더라면 저는 지금도 종교와는 담을 쌓고 있었을 것입니다. 제 신앙관은 구원의 관점보다는 어떻게 하는 것이 잠시 머물다가 떠나야 할 삶을 후회없이 마무리 할 수 있을까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며 입교 권유를 많이 받았으며, 종교와는 관계없이 성경에 대하여 까막눈이라도 면해볼 생각으로 몇 번이나 성경을 펴들었지만 천지창조의 벽을 넘지 못했고 오늘 복음인 성령잉태설의 벽을 넘지 못하여 몇 장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 덮어야 했습니다. 

입교전에 그리스도인과 논쟁을 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으며 그럴 때에는 성령잉태설이 논쟁의 단골 메뉴가 되었습니다. 당시 제 주장은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하였으면 그럼 너는 악령으로 잉태하였느냐? 그리고 이제 갓 태어난 신성한 생명에게 감히 누가 죄인이라고 할 수 있느냐? 너는 너희 아들이 태어났을 때에 죄인이 태어났다고 생각하였느냐? 저는 이런 교리는 받아 드릴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늘에 대한 경외감은 동, 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공통적인 사안입니다. 훌륭한 사람들은 하늘이 점지해 준 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와 관계없이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옛부터 최고통치자를 天子라 하였으며 왕조가 바뀔 때에는 새로운 天命으로 역성혁명을 합리화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런 천명의 근거로는 하늘로 부터 계시를 받았다며 민중들을 선동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태몽에 대하여 많은 얘기들을 듣고 있습니다. 어느 누가 성공한 사람이 되면 그 부모는 태몽을 자랑스럽게 얘기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태몽에 등장한 분을 삼신할머니나 신령님으로 생각하였고 유대 민중들은 천사로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이런 사실들을 감안하면 성령잉태설이 성경에 기록된 이유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해를 한다는 것과 이를 사실로 믿어야 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며 이를 종교라는 이름으로 강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드리고 싶은 얘기는 지금까지 친 아버지로 대접을 받지 못한 성 요셉에게 아들 예수님을 이제는 돌려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영적으로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셨지만 혈육의 아버지는 성 요셉임을 인정해야 할 시점이 된 것 같습니다. 굳이 이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적 관점에서는 예수님은 얼마든지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그렇다고 혈육의 진실마저 부인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를 부인하기 때문에 별별 억측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정상적으로 결혼하였고 예수님은 정상적인 가정에서 정상적으로 태어나신 분으로 새롭게 조명되어야 새로운 시대에 부응할 수 있고 우리 그리스도교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되리라 믿습니다.

성 요셉의 축일 맞이하여 성 요셉에 대한 저희들의 참된 공경은 성인의 칭호보다는 예수님의 친부로 인정해야 합니다. 아마 제 아들을 사람들이 제 아들로 믿지 않는다면 죽어 하늘에서도 저는 통탄할 것 같습니다. 하물며 예수님과 같은 인류의 영원한 성인으로 자식을 성장시켰음에도 친부로 인정받지 받지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원통하겠습니까? 이는 예수님도 결코 바라는 바는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혈육을 부인하려면 구태어 족보를 성경에 기록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자님의 경우에는 사마천의 사기인 '공자세가'에서 그의 아버지 숙양흘(叔梁紇)은 안씨(顔氏)와 야합(野合)하여 공자를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野合은 들판에서 합궁하였다는 뜻이므로 정상적인 혼인관계에서 태어난 분이 아니라는 뜻으로 생각됩니다. 이런 출생 때문에 우리에게 禮라는 소중한 선물을 주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러한 출생이 공자님에게 무슨 흠결이 될 수 있으며 또 공자님의 권위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글은 묵상이라기보다는 평소의 제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우리 교리와는 상반된 내용이지만 교리보다 더 우선하는 것은 제 양심임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제 양심을 속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르침인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신 말씀에 용기를 내어 평소의 생각을 정리한 글로 오늘 묵상에 대신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이 비천한 목수의 아들이라 할지라도
제 신앙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아니 저희와 똑같은 그런 부족한 인간이어야
저도 그분처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 요셉께서 영원한 성자로 예수님을 성장시켰듯이
저희에게도 그러한 지혜의 성령님을 보내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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