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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질투와 주님의 깊은 뜻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17 조회수894 추천수3 반대(0) 신고
북 아일랜드의 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로버트 무어(Robert Moore, 1886–1960)가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 빼 놓고 서로 사랑하고 있지 않나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는데,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이런 심사가 바로 질투의 뿌리이다.”  
 
우리들이 자주 인용하는 성서 속에 나오는 카인의 두려움이 그러했다. 그는 질투 때문에 그의 동생을 죽인 첫 번째 인간이다. 그는 무엇 때문에 질투를 느꼈을까? 하느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자손을 어여쁘게 보셨지만 카인과 그의 자손은 그렇게 바라보지 않으셨기 때문일까? 카인은 자기만 빼놓고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것 같이 느꼈다.
 
성경에서는 카인이 질투심 때문에 살인자가 되었다고 말하지만 나는 버지니아 공대, 콜럼바인, 독일과 앨라바마에서 일어난 총기난사사건과 같은 대량학살 사건을 볼 때마다 범인들은 카인과 같은 심사를 갖고 있지 않았나 하고 생각한다. 모든 살인자들은 항상 외로워하며 카인과 같이 다른 사람들이 자신만 빼놓고 모두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면서 지독한 외로움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끔찍한 대량학살 극을 볼 때마다 누구나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카인과 같은 외로움 때문에 실제로는 총을 갖고 난사하는 범행을 저지르지는 않지만 질투로 인하여 많은 사람을 마음 속으로 죽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보곤 한다.
 
 한 때 헨리 뉴웬(Henri Nouwen)이 이에 관하여 말하였다. 총에 맞아 죽는 사람은 누구나 처음엔 말에 맞아 죽는데 말에 맞아 죽는 사람은 이보다 먼저 생각에 맞아 죽는다.” 지당한 말씀이다. 우리 모두 우리 내면에서 시도 때도 없이 생각으로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누가 그런 끔찍한 생각을 하느냐고 잡아 뗄지 모른다. 누구나 자신이 이성적이고 총명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자신이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컬럼바인이나 버지니아 공대에서 질투에 의한 분노로 총기 난사를 한 것 같이 회의에 가면서 이사회에 참석하러 가면서 교회에 가면서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러 가면서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는가? 자신이 카인과 같은 외로움을 느낄 때, 자식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는데 나만 외톨이가 된 것처럼 느끼고 충동적으로 말과 생각과 태도로 사람을 죽이는 수가 많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질투를 느끼지 않고 외톨이라고 느끼지 않고는 살 수 없을까?
먼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질투를 인정해야 한다. 질투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느냐 아니냐는 의문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질투가 있다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누구든 질투로 괴로워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끔찍한 생각이나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질투를 인정하고 나면 질투가 우리들의 삶에 도덕성을 일깨워주고 영적으로 새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결코 과장하여 하는 말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당신의 죽음이 다가 왔을 때 괴로워하시는 모습을 보면, 이는 사랑을 표현하신 것이지 당신의 몸이 끝장나는 것을 애석해 하시는 것이 아니었다. 멜 깁슨(Mel Gibson)의 영화 <패션의 크리이스트(The Passion of Christ)>와는 달리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당신의 육체적인 고통을 강조하고 있지는 않으며 오히려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복음에서 강조한 것은 인간의 비 도덕성과 타락한 모습에 실망하여 느끼신 외톨이 같은 심정이었다.복음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돌팔매를 맞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는데 가톨릭 평신도로 『Violence Unveiled: Humanity at the Crossroads』의 저자이며 강론가인 질 베일리(Gil Bailie)는 이를 “unanimity-minus-one”으로 표현했다. 다른 사람은 같은 생각을 갖고 똘똘 뭉쳐 있는데 혼자만 외톨이가 된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이나 단체를 희생양으로 삼아 가상의 목표물을 파괴함으로써 만족하는 심리를 말한다.예수님께서 죽음에 임하실 때 땅에서 카인과 같은 심정을 느끼신 것이다. 당신의 말씀을 당신의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심지어는 하느님까지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느끼신 것이다. 당신이 따돌림을 받으시고 이해되지 않고 증오의 대상이 된 것을 느끼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쉽게 슬퍼하고 화를 내고 자기 연민에 빠지고 미워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괴로우실 때 카인과는 정반대로 모든 인간을 위하여 희생양이 되어 인간이 다시 도덕심을 되찾도록 행동하셨다.비록 질투하고 증오하고 오해하는 사람들로 싸여 있었지만 진리를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내어 놓으셨다. 모든 상황이 슬퍼하도록 유혹했지만 당신께서는 오히려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셨다. 모든 상황이 증오하도록 만들었지만 당신께서는 오히려 사랑을 생각하셨다. 모든 상황이 정떨어지게 만들었지만 당신 스스로 약한 모습을 보이심으로써 사람들이 다시 당신을 찾게 만드셨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냉정하고 신경질적이고 저주할 때 당신은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축복을 주시며 따뜻하게 맞아 주셨다. 다른 사람의 사랑이 식었을 때 그 사람을 더욱더 사랑해주어야 한다. 카인이 우리에게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깨달음을 주었듯이 예수님께서는 카인 같이 하면 안 된다는 진리를 주셨다.
 
이제는 자신이 외톨이로 버려졌음을 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할까를 잘 알았을 것이다.
(롤하이저 신부님의 컬럼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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