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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매정한 종이 걸린 덫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17 조회수517 추천수10 반대(0) 신고
 
 

매정한 종이 걸린 덫 - 윤경재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마태 18,21-35)

 

 유대인들에게 용서의 회수에 관하여 랍비들 간에 설왕설래가 있었습니다. 랍비들은 대체로 세 번 내지 네 번을 용서하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근거는 아모스서 1장 - 2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세 가지 죄 때문에, 네 가지 죄 때문에 나는 철회하지 않으리라.”라는 구절이 반복됩니다. 또 탈출기 34,7에서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며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풀고 죄악과 악행과 잘못을 용서한다. 그러나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고 조상들의 죄악을 아들 손자들을 거쳐 삼 대 사 대까지 벌한다.”라고 세 네 번의 숫자를 언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대목을 근거로 세네 번을 용서하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점을 잘 알았던 베드로는 선심 쓰듯 일곱 번이나 큰 관용을 베풀면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자신의 배포를 자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한술 더 떠서 무제한의 용서를 말씀하십니다. 그것도 창세기 4,24절 ‘복수의 숫자’를 인용하여 ‘용서의 회수’로 바꾸시는 유머를 구사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카인을 해친 자가 일곱 갑절로 앙갚음을 받는다면 라멕을 해친 자는 일흔일곱 갑절로 앙갚음을 받는다.”원수를 사랑으로 바꾸셨습니다. 

 ‘매정한 종의 비유’는 용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먼저 만 탈렌트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하는 양입니다. 유대 지방을 다스리고 새로 성전을 지었던 헤로데 대왕의 일 년 수입이 구백 탈렌트였으니 엄청난 크기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하루치 품삯이었습니다. 그러니 백 데나리온과 만 탈렌트를 단순 비교해도 일 대 육십만 배의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왕은 백성과 신하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사소한 잘못에도 처형을 당하면 그만인 세상이었습니다.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라는 말뜻은 생명도 살리고 그 큰 빚을 탕감해 주었다는 뜻입니다. 사실 돈보다 더 귀한 것이 사람 목숨이었습니다. 자유였습니다. 그런데 그 종은 고작 백 데나리온을 받기 위해서 친구의 자유를 박탈하였습니다.

  여기서 종의 심리를 살펴보면 우리의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실상 그 종은 만 탈렌트나 되는 돈을 갚을 능력도 없으면서 갚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라고 시간을 벌려고 하였습니다. 그 순간만 모면하려는 뻔뻔함이 배어나옵니다. 마치 사기꾼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말만 번지르르한 태도로서 무책임의 극치입니다. 생명을 선물로 받았으면서도 당연한 듯이 여기고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또 그 종은 만 탈렌트나 되는 빚을 갚겠다는 과대망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어떻게 되겠지 하고 제 능력을 과신한 것입니다. 무상으로 탕감 받았다는 것에 전혀 기뻐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얼마라도 되갚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밖에 나오자마자 돈을 구하려고 인색하게 굴었습니다. 생명을 공짜 선물로 받은 것을 즐길 줄 모른 것입니다. 주인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아마 인간은 이 두 가지 덫에 걸려 평생을 허덕이며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뜻은 아빠 하느님께 받은 자비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 기쁨을 누리되 아빠 하느님께 그 은총을 되갚는 길은 형제애를 발휘하는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당신께서 그 대가를 돌려받을 생각이 전혀 없으시다는 표현이었습니다. 무상으로 받은 그 큰 영생의 기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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