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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네 자신을 알라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13 조회수915 추천수11 반대(0) 신고

 

 

 

사순 2주간 금요일 - 네 자신을 알라

 

바티칸 박물관에서 제가 좋아하는 벽화 중 하나는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입니다. 여러분들도 미술책에서 한 번쯤은 보셨을 것입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인터넷에서 그림을 찾아서 같이 보시면 좋을 것입니다.

특별히 이 그림에선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그리스의 3대 철학자이고 신학과 영성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람들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중앙 약간 왼쪽의 연두색 옷을 입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통하여 상대의 무지를 알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언가를 조금 아는 것처럼 자랑하지만 그 아는 것에 대해서도 계속 질문을 하면 바닥을 드러내고 결국엔 “더 이상은 모르겠어.”하며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네 자신을 알라.”라는 말입니다. 즉, “네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라.”는 뜻입니다.

신앙이든, 신학이든, 영성이든 모든 것이 이 자신을 아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저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면 바로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시들어 말라버리지만 붙어 있으면 저절로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라는 복음을 묵상하며 “결국은 무언가를 이루어내기 위해 혼자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예수님께 붙어있기만 하면 열매는 저절로 맺게 되는구나.”하며 기도에 목숨을 걸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신기하게 기도만 하면 저절로 모든 것이 다 잘 되었습니다. 지치지도 않았고 몸도 건강했고 공부도 잘되었고 더 놀라운 것은 시간이 부족해야 하는데 더 여유로워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누구나가 이 진리를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음을 많이 느낍니다. 이는 아직도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줄 알면 그분과 통교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포도원 소작인들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이 비유는 사제들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포도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우고 그것을 소작인들에게 주고 떠납니다. 포도밭은 교회를 뜻합니다. 울타리를 친다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백성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구분한다는 뜻입니다. 포도 확은 포도를 짜는 틀입니다. 포도즙은 그리스도의 피와 물, 즉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교회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움직입니다. 탑은 제 나름대로는 모든 백성들이 멀리서도 보고 본받아야 할 성모님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고 성령님을 부어주시고 교회의 모델로 성모님의 도우심도 주시고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성직자들에게 맡기셨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사제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마치 자신의 백성인양 생각하고 그들을 자신들의 소유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내쫓고 새로운 교회와 새로운 사제들을 세웠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시는 이들을 핍박하고 급기야는 상속자인 하느님의 아들까지 죽였습니다.

자신들은 소작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누군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누군지 모르니 결국 하느님과의 통교, 즉 기도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그분께 마땅히 드려야하는 것도 거부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은 자신이 누군지 똑똑히 알아야합니다. 우리는 가지들입니다. 하느님께 붙어있지 않으면 어떤 열매도 맺지 못하고 시들어버리는 가지들입니다. 이것을 진심으로 깨닫는다면 기도를 드리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해집니다.

 

자신을 알았다면 하늘을 향하게 됩니다. 그래서 중앙 왼편에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은 손가락을 하늘로 가리키고 있습니다. 자신이 누군지 깨달았다면 이제 육체와 영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이원론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신학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라톤의 사상을 신학에 적용시킵니다. 영성에서는 바로 육체의 욕망과 싸워서 영이 육체를 지배할 수 있게 하는 단계입니다.

이것을 넘어서면 자신의 육체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따라옵니다. 그리고 이 단계가 넘어서면 다시 육신과 영이 화해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손으로 땅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진리는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내려와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부터는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 싸우지 않고 물질을 통하여 영적인 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삼위일체로 보게 되는 단계입니다. 즉 아버지와 아들이 성령 안에서 일치하시듯이 하늘과 땅도 남자와 여자도 모두 성령 안에서 일치하게 되는 단계입니다.

 

1. 예수님께서 참으로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어 하신 행위가 바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이고 이 때 비로소 아버지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들’이라 칭하십니다. 아들은 자신을 알았으니 주님의 종으로서 마지막 날에 모든 것을 아버지께 바치실 것입니다.

2. 그 다음은 광야에로 나가 기도와 단식으로 당신의 육체를 이기셨습니다.

3. 그러나 먹보요 술꾼으로 불리실 만큼 세상에 들어오시어 구체적으로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작업은 바로 우리 자신을 아는 일인데 즉, 주님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그분께 붙어있을 결심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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