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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풍요와 안락' 이 빚는 오류
작성자김열우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12 조회수479 추천수2 반대(0) 신고

사람의 속성에는,

누구의 도움이나 간섭없이, 독자적으로- 라는 불멸의 염원이 있습니다.

걸음마를 터득한 아이들은 자신을 잡아주는 부모님의 손이 못내 못마땅하여, 부단히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씁니다.

끈임없이 자립 을 모색하는 인간의 단면입니다.

그런가 하면, 풍요와 안락 이라는 지상최대의 염원 또한 간과할 수 없습니다.

 

, 하느님의 보호나 다스림 받지 않는 영역, 자신만의 세계의 구축 과,

영원 무궁토록 누릴 풍요와 안락 을 확보해 두겠다. 는 꿈인 것입니다.

불식시킬 수 없는 온 인류의 이 소망 때문에 빚어진 것이 바로 선악과 사건 과, 바벨탑 사건 입니다.

이 야무진 소망이 곧, 하느님께 대한 모반과 반역이며, 이로 인해 인류의 재앙은 비롯되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인 인간이, 그가 지으신 세상의 온갖 은총을 누리면서, 그 주인 되신 하느님을 왕따시키고, 심지어는 가로채어 주인 노릇을 하겠다는 발상이 어찌 반역이 아니겠습니까?

인류와 하느님과의 전쟁(?)의 이유입니다.

 

빈곤과 고난의 시절에는 하느님을 전심으로 구하다가도, 풍요와 안락의 때, 더 이상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 싶을 때, 인간의 마음은 급속히 부패하여져, 급기야는 하느님을 대적하게 됩니다.

 

과연 인간은 풍요와 안락의 낙원을 누릴 능력이 있는 것일까요?

말 타면 종 부리고 싶은 또 하나의 타성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그 노예가 되기 때문입니다.

과거, 어려웠던 시절을 속히 잊고, 좀 나아지면 나아질수록 욕심은 더하여져, 안하무인, 하느님도 몰라보는 교만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풍요와 안락 은 그토록 많은 함정이나 덫을 숨겨놓고, 그 사냥감을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에서 벗어나 완전히 자유를 선포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인생이 그토록 열망하여, 인생의 목표와 소망목록 제1호로 지정할 정도의 풍요와 안락 이 숨겨놓은 복병입니다.

교만은 풍요와 안락 이 보너스로 떠 안겨준 부산물 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주인이 되어, 하느님을 배척, 반역하게 하는, 스스로 파놓은 함정입니다.

 

애초, 하느님은 사람을 사랑하시어 풍요와 안락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누리며,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 영광을 돌리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것들을 누리면서도, 다른 꿈을 꾸며 반역을 끈임없이 시도하였습니다.

 

포도원의 소작인은 포도수확의 일부를 세로 바치기를 거부하고, 세를 받으러 온 종들과 그 포도원의 상속자인, 주인의 아들을 죽여 버렸습니다.

어이없고, 기가 막힐 배은 망덕의 소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계산없이 끝없이 거저 주신 것들에 대한 감사를 잊고, 오히려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는 인간들이기도 합니다.

받은 것이 적은 가난한 이들은 지극히 작은 것 하나에도 감격합니다.

그래서 하늘 나라는 그들의 것이 됩니다.

그래서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풍요와 안락은 인간이 염원하는 최선의 소망이나, 인간은 그 주인이 될 능력이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복을 재앙으로 바꾸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반면,

스스로를 다스려, 경건의 사슬에 묶어, 화를 복으로 바꿀 능력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가시덤불 속에서는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을지라도, 들릴라와 같은 달콤한 환경에서는 자신을 지켜낼 수 없었던 삼손과 같은 속성이 내재되어 있는 탓일 것입니다.

 

인생의 쓴맛을 감수하며, 남보다 먼저 자신을 채찍질하며, 춥고 어려운 환경을 경멸하지 않으며,

깨어 자신을 지켜낼 능력을 지녀, 풍요와 안락이 끝없이 이어져도, 피조물된 자신의 자리를 바로 알아 창조주 하느님 경외하기를 잊지 않을 수 있다면,

진정 풍요와 안락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풍요와 안락이 몰락의 원인이 된다면, 반길 수 만은 없을 것입니다.

적어도 인간이 그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될 수 있을 때까지는 말입니다.

 

보름달은 기울기 위하여 만월로 채워집니다.

차라리 채워지기를 거부한다면, 언제까지나 기우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겸비와 경건으로 자신을 비우기를 힘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절대적 최강은 나약하여 보일 정도의 겸손과 경건일 것입니다.

 

누가, 낮추어 섬기지 않는데, 도움을 주며 더 이상 은총을 베풀겠습니까?

누가, 자신이 베푼 것들을 누리면서, 스스로 높아져 방종과 만용을 일삼으며, 불신과, 배척, 반역하는데 손을 뻗어 구원을 베풀겠습니까?

누가, 자신을 향하여 열망하지 않는 자에 감동하며, 오만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비위를 거스리는데, 마냥 따듯이 선대하겠습니까?

주인으로 모시지도 않는데, 왜 돌보겠습니까?

 

파멸과 재앙은 하느님의 부재 때문입니다.

죄악중의 죄악은,

주인 되신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자신과 재물, 세상을 주인으로 삼는 것입니다.

파멸과 재앙을 선고 받았던, 노아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 니느웨는 풍요와 안락의 시대였고, 더불어 불법과 불의, 방종과 만용이 범람하던 지역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제사나 희생제물을 원하시지 않으시고, 인애와 하느님을 알기를 바라십니다.

저희가 먹이운 대로 배부르며 배부름으로 마음이 교만하며 이로 인하여 나를 잊었느니라.(호13,6)

 

배부름으로 죄악에 빠지게 하는, 그래서 재앙으로 이어지게 하는 풍요와 안락 을 경계하여야 하는 이유를,

은총을 감사가 아닌, 교만으로 보답한 배은 망덕으로 인하여 인류의 재앙이 초래됨을,

하느님의 은총을, 더 크고 영원한 복이 아닌, 재앙으로 바꾸는 특별한 재주를 가진  인생임을,

호세아서를 읽으며 묵상합니다.

2009년 3월 12일 오전 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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