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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 생각대로?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12 조회수545 추천수8 반대(0) 신고

 

생각대로?
   키프로스 섬에 도착한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수도 살라미스의 유다인 회당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그러나 별다른 호응이 없자 그들은 섬을 가로질러 파포스에 가서 선교의 첫 결실을 거둔다. 바오로 사도가 거짓 예언자를 물리치는 모습을 보고 말씀의 위력에 감동을 받은 로마 총독이 믿게 된 것이다(사도 13, 4-12).

 

     이때부터 바오로 사도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바르나바와 바오로의 이름도 순서가 뒤바뀐다. 훗날 두 사도를 헤어지게 한 숨은 갈등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지만, 바오로의 역할을 크게 부각시키려는 루카의 의도적인 설정으로 볼 수도 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오직 이 부분에만(사도 13,9) ‘바오로’와 ‘사울’이라는 이름이 동시에 나온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외국에 자주 나가는 사람들에겐 있는 일이지만, 사도의 이름이 유다인에게는 사울, 이방인에게는 바오로로 통용되었던 것이다.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사도 12, 25; 15,37)도 마찬가지 경우다. 그러니까 소명 직후 사울에서 바오로로 개명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오로 일행은 소아시아의 페르게로 갔다. 그런데 여기서 요한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두 사람만 타우루스 산맥을 넘어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로 간다. 바르나바의 사촌이었던 요한이 도중하차한 이유는 사실 알 수가 없다. 해발 3000m의 높은 산봉우리를 보고 의지를 접었다고도 하고, 산을 넘기 힘들만큼 뚱뚱했다는 말도 있다. 심지어 삼촌 바르나바가 바오로에 밀리게 되자 불만이 생겨 돌아갔다는 억측까지 나돌지만 어쨌든 이 일 때문에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나중에 갈라서게 된다(사도 15,37-40).

 

     아무튼 험준한 산맥을 넘어온 보람이 있어,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는 많은 결실을 거둔다. 또 이코니온, 리스트라, 데르베에서도 믿는 이들이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반대하고 죽이려는 유다인들이 끊임없이 따라다녔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오면서 자신들이 세운 공동체에 힘을 북돋아주며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로 돌아왔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하느님께서 하신 일들’을 보고하였다.

 

     살펴보았듯이 첫 선교여행부터 난관이 많았다. ‘하느님의 일’이라 해서 순탄한 것은 아니다. 그토록 많은 시간 기도를 하고 준비를 했어도 생각지도 않은 복병이 나타나는 것이다. 복병은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도 있었다. 사람이 아니면 자연 환경이 앞길을 가로막았다. 그래도 바오로 사도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사명을 완수했다.

 

    그렇다. 우리의 생각대로 척척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도처에 복병이 숨어있다.  생각지도 않은 장벽이 나타나고, 주저앉고 싶은 유혹이 불쑥불쑥 싹트고, 부정적인 마음만 가득 찰 때,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하느님을 굳게 신뢰하는 마음, 바로 ‘믿음’이다. 모든 것이 우리의 생각대로,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대로’ 된다는 것을 바오로 사도에게서 본다.

 

이인옥(세실리아) / 성경봉사자

 - 수원교구 주보 3면에 기획연재하고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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