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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께서 우리를 대하신 대로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07 조회수462 추천수9 반대(0) 신고
 
 

주님께서 우리를 대하신 대로 - 윤경재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 5,43-48)

 

  그리스도교 교우가 아닌 사람들에게 예수님 말씀 중에서 어떤 말씀이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을 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입니다. 이와 다르게 교우들에게는 가장 지키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말씀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라는 구절이라고 대답한답니다. 이 두 말씀이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으뜸 되는 말씀이라는 반증이죠.

  이 두 가지 말씀은 언뜻 비슷하게 들리지만, 실은 동전의 앞뒤면 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말씀입니다. 동전의 양면은 서로 등을 지고 만나야 하는 숙명이 있습니다. 하나의 동전이지만 양면이 배타적이 될 때가 있습니다.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여야 하는 때를 만나게 됩니다. 가끔 원수 사랑을 외치다가 이웃 사랑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로 통합하는 힘은 오직 주님께 나옵니다.

  만약 동전에 한 쪽만 문양이 새겨져 있다면 그것은 더는 동전으로서 가치를 지니지 못합니다. 골동품 수집에나 소용될 뿐이겠죠. 두 면에 모두 동전으로 합당한 문양이 새겨 있어야 동전의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이웃 사랑’과 ‘원수사랑’ 사이에는 단순한 인간적 논리로서 넘을 수 없는 간극이 벌어져 있습니다.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것을 잘 압니다. 이웃 사랑은 쉽게 말할 수 있겠지만, 원수사랑은 떠올리기조차 어려운 명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간격을 넘어서게 하는 다리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 뿐임을 우리는 고백하여야 합니다. 자신을 박해하고 죽이려 드는 원수를 위해서 기도하는 모습을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발견합니다. 크리스천이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원수 사랑을 실천하여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사막의 위대한 은수사 한 분이 율법을 어긴 수사를 재판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모임에 참석하였습니다. 이런저런 공방이 쏟아졌습니다. 그러자 지루해진 한 젊은 수사가 나서서 “법대로 합시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침묵하고 있던 그 은수사는 입을 떼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젊은이, 법대로 했다면 성모님께서는 돌에 맞아 돌아가셨을 거고 그러면 예수님은 탄생할 수도 없었을 것이네.” “만약 법대로 자네를 다루었다면 자네는 어떻게 될 것인가? 자네는 벌써 지옥에 가 있어야 마땅할 것일세.”

  예수님께서는 법보다 위에 서는 원리를 말씀과 몸으로 보여주시며 사셨습니다. 탄생에서부터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까지 스스로 모범이 되셨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계명이었습니다. 은총의 원리입니다. 사랑과 용서의 원리였습니다.

  크리스천은 법보다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원리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다루신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대하겠다.”라는 그것이 크리스천이 지녀야 할 원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율법의 원리를 넘어서는 은총의 원리를 따라 살라고 그렇게 어려운 십자가의 길을 몸소 걸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자라야 원수 사랑을 실천할 용기를 얻게 됩니다. 그때야 비로소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라 불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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