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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길" - 2.20,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20 조회수430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2.20 연중 제6주간 금요일
                                                        
창세11,1-9 마르8,34-9,1

                                                            
 
 
"생명의 길"
 


오늘 독서와 복음이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1독서 창세기에서 바벨탑을 쌓고 성읍을 세우는 장면은
뭔가 막혀있는 느낌의 죽음의 현장 같다면,
복음에서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장면은
역동적 생명의 현장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정주가 죽음과도 같은 안주가 되지 않도록
내적으로 끊임없이 흐르는 생명의 강이 되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흔히 믿는 이들의 삶을 여정에 견주기도 합니다.
 
하느님을 찾는 내적여정 중에 있는 우리들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 말씀도 이를 분명히 합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바로 이 말씀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이
생명의 길이자 구원의 길입니다.
 
끊임없이 주님을 따라 흐르는 생명의 강 되어 살라는 말씀입니다.

채우려고 할 것이 아니라,
생각도 마음도 욕심도 배도 소유도 부단히 비워갈 때
밝은 눈에 빛나는 영혼이요 존재의 기쁨입니다.
 
우리의 희망이자 비전인 주님을 놓쳐버릴 때 눈도 영혼도 잃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눈이요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눈 없이, 영혼 없이 사는 사람들 얼마나 많은 세상인지요.
주님을 잃어버리면 곧 길을 잃게 되고
급기야 두려움과 불안, 공허의 어둠에 그를 점령합니다.
 
이런 불안과 두려움과 공허는 밖으로 해소책을 찾기 마련입니다.
 
하여 끊임없이 만들고 짓고 쌓고 모음으로
눈에 보이는 것들로 공간을 채웁니다.

창세기의 장면 그대로 오늘의 현실 같습니다.

“자, 성읍을 세우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
  그렇게 해서 우리가 온 땅으로 흩어지지 않게 하자.”

이런 눈에 보이는 성읍과 하늘까지 닿는 탑,
모두가 내적 불안과 두려움, 공허의 표현들입니다.
 
길 잃어 안주하다 보면
내적 불안과 두려움, 공허는 이런 외적 표현들을 찾기 마련입니다.
 
하여 예나 이제나 바벨탑 쌓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요,
자연 친화적인 건물이요 도시가 아닌
점점 자연과 유리된 거대한 건물들 가득한
죽음의 도시들이 되어가는 현실입니다.
 
“보라, 저들은 한 겨레이고 모두 같은 말을 쓰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의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자.”

그대로 오늘의 현실 같습니다.
 
하고자 하는 일은 무엇이든 못할 일이 없는 기고만장한 현대인들이요,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신자본주의의 문명 같습니다.
 
마침내 주님께서 이 죽음의 바벨탑 도시의 현장에 개입하셔서
이들을 거기에서 온 땅에 흩어버리시고
성읍 세우는 일을 그만두게 하심으로 이들을 살려내셨습니다.
 
가끔 하느님은 어쩔 수없이
전쟁을 통해서 이런 일을 하시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의 영원한 비전이자 희망이신 주님을 놓쳐 버릴 때
안주의 삶이요, 불안과 두려움, 공허의 삶입니다.
 
반면 끊임없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내적여정의 삶일 때
늘 새로운 참 자유인의 삶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를 당신 생명과 사랑으로 충만케 하시어
당신을 충실히 따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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