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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무지개와 십자가" - 2.19,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20 조회수415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2.19 연중 제6주간 목요일
                                                      
창세9,1-13 마르8,27-33

                                                    
 
 
 
"무지개와 십자가"
 


아침 성무일도 시 마음에 와 닿은 시편 구절입니다.

“하느님은 나의 구원자시니,
  나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고 두려움이 없나이다.”

“하느님은 나의 힘이시오 나의 노래이시며, 나를 구원하셨나이다.”

하느님 구원의 표징이, 새 계약의 표징이 십자가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시선과 하느님의 시선이 만나는 곳,
바로 이 제대의 뒷면 높이 걸려있는 십자가의 그리스도이십니다.

눈 들어 바라 볼 대상,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모신 우리들
축복 받은 존재들입니다.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통해
부활의 그리스도를,
구원의 하느님을 바라보는 우리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놓쳐버린 그리스도가
바로 이 십자가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현세적 영화의 그리스도께만 시선이 집중됐던
베드로의 참 짧은 안목입니다.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순간
졸지에 사탄으로 전락해 버린 베드로입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주님께 호되게 질책 받는 베드로입니다.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는 누구나 사탄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게서 물러가라.’보다는
‘내 뒤로 물러가라(get behind me).'는 말씀이 더 적합합니다.
 
주님의 뒤를 따르지 않고 주님 앞에서 주님의 길을 막는 자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자는
누구나 사탄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뒤를 따를 때는 제자이지만
주님 앞에서 길을 막을 때는 사탄이니,
결국 제자와 사탄은 우리 모두의 가능성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더불어 연상된 게 오늘 창세기의 무지개입니다.
 
기후 변화와 오염으로 예전만큼 자주 볼 수 없지만
얼마나 신비감과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영롱한 하늘의 무지개인지요.
 
역시 우리의 시선과 하느님의 시선이 만나는 계약의 표징이
하늘의 무지개입니다.

“내가 미래의 모든 세대를 위하여,
  나와 너희, 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은 이것이다.
  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

계약의 표징인 무지개를 보면서
세상에 내린 축복을 기억하여
결코 땅을 파멸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인간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계약의 표징인 무지개를 보며 분노를 참으시고 끝까지 인내하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바라 볼 하느님 구원의 표징은
십자가의 그리스도뿐입니다.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마다
계약의 표징인 무지개를 묵상하고,
무지개를 볼 때 마다
하느님 구원의 표징인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묵상한다면
퍽 은혜로울 것입니다.

무지개와 십자가는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의 표현이자
하느님의 시선과 우리의 시선이 만나는 곳입니다.
 
또 하느님은 물론 우리의 변덕(?)을 막는 제동장치와도 같아
각자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하느님은 하느님답게,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게 합니다.
 
매일의 이 계약의 표징이자 하느님 구원의 표징인 거룩한 미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체를 모시고
새 날, 새 생명을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주님,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시니,
  주님 앞에서 넘치는 기쁨을 누리리이다.”(시편16,1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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