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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추기경님을 떠나 보내며...]빨간모자 추기경 할아버지의 매력 - 이호자 수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20 조회수735 추천수7 반대(0) 신고

빨간 모자 추기경 할아버지의 매력


   언젠가  <가톨릭신문>에 실린  김수환 추기경님의 얼굴을 한참동안 들여다 본 적이 있었다. 양미간에 패인 두 줄의 깊은 골이 그동안 추기경님의  고뇌를  말해주는 듯, 나로  하여금  어렴풋한 추억 속에  잠기게 했다.


   오래전 열렸던 '남북 장애인 복지대회'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행사 중에는 휠체어 전달식도 있었고 추기경님의 축사도  있었다. 행사가 끝난  후 추기경님의 얼굴을 가까이서 뵈니 눈과 코 근처에 상처 같은 게 보였다.  나는 얼른 생각하기를 '요전에 괴한이 추기경님께 덤벼들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그때  다친 상처들 인가보다' 하며 조심스레 여쭈어보았다.


   추기경님은 웃으시며 몹시 고단하면 저절로 생기는 것들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피곤하면 입술이 부르트는데 추기경님은 별다르시네. 과로의   열매도 이렇게 유별나시니 ….'  나는 하느님이 주신 훈장이라는 생각에  부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이처럼 바쁘신 중에도 추기경님은 우리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애화학교  졸업식에는 거의  빠짐없이 오셔서 미사를 집전해주시곤 했다.  " 다른 데는 못 가도 애화학교는 거절하지 못 하겠다" 는 게 그분의 철칙인 듯했다.


  그해 졸업식에도 오셨는데, 매년 모범 졸업생 한 명에게 수여되던 '천주교 서울 대교구장상'을 교구에서 그 해부터는 주지 않기로 했다기에 아쉽지만 없애기로 하고 그런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 누가 그러더냐? 당장 써오라" 고 하시고는 바로 그 자리에서 사인을 해주셔서 상을 준 적이 있었다.


   졸업식이 가까워지면 모든 학생들과 교직원들은 으레 빨간 모자, 빨간  원피스의 할아버지를 산타클로스처럼 기다리곤 했다. 식이 끝나면 수녀원에  오셔서 점심을 드셨는데, 그때마다 세상사는 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일어나실 줄을 모르셨다. 


   바쁜 일정 때문에 초조해진 비서신부님의 모습은 아랑곳하지 않으신  채. 그때 해주셨던 우스개 중에 한 가지, 기억에 생생한 것은 '안나 시리즈' 다. 


   어떤 신자부부가 딸을 낳고는 이제 더 안 낳는다고  '안나' 라고 세례명을 지었다. 그런데 또 딸을 낳자 '다시 안나' 라고 했으나, 또 딸을 낳자마자 인큐베이터인 유리관에 넣어야 했으므로 '유리 안나' 라고 지었고, 또  딸을 낳아보니 비비 말라 있어서 '비비 안나' 라고 지었고, 또 딸을 낳으니  더 이상 말이 안 나와서 '마리 안나' 라고 지었다는 얘기다.


    <소년한국일보>에 연재되었던 김 추기경님의 전기를 한 때 애독한 일이  있었다. 내용 중 기억나는 것은 소신학교 시절에 신학교에서 나오고 싶어  죽겠는데, 병이 나면 집에 보내는 걸 보고, 한 번은 꾀병을 부렸단다. 그랬더니 학장님은 가고 싶었던 집으로는 보내지 않고 병원으로 보냈는데, 알고  보니 진짜 병이 들어 있었다는 얘기다.


   그때도 추기경님에게 그 글을 잘 읽고 있다는 얘길 드렸더니  " 아, 그거?  평범한 어떤 소년의 이야기지 뭐"하셨다. 바로 이 점이 추기경님을  온 국민의 존경받는 인물로 만드는 매력이 아닐까. " 추기경님, 은퇴하신  후에도 당신의 얼굴을 자주 뵐 수 있도록 오래오래 사시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 괴짜수녀 일기 중에서


▣ 이호자 마지아 수녀(서울 포교 성 베네딕토 수녀회)

♬ 아버지 당신 손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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