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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자렛에서 무시를 당하다(마르코6,1-56)/박민화님의 성경묵상
작성자장기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20 조회수533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9년 2월 20일 금요일 마르코복음 6장
 
마르코복음 4장에서
하느님의 말씀인 씨를 뿌리는 비유로 천국을 설명하시고,
 
마르코복음 5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미친 사람을 낫게 하시고,
하혈병 환자와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예화를 통하여
 
생명의 말씀이 죽어 있는 사람들 심령 안에 뿌려졌을 때
불치의 병이 치유 되는 것처럼,
사람들도 마음에 생명의 말씀이 들어가서 다시 살아나는 것을 설명하시고,
 
마르코복음 6장에서는
생명의 말씀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배척하는
나사렛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며,
 
생명의 말씀을 받아 들인 열두 사도를 파견하시는 예화가 나오는데,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거부한 사람의 대표로 헤로데왕이 나오며,
이 헤로데왕이 율법에서
마지막 예언자인 세례자 요한을 죽이는 예화가 나오는데,
 
우리들도 우리 안에 
생명의 말씀이 이루어져서 부활의 삶인 사랑으로 살아갈 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생명을 주지만,
우리가 부활의 삶을 살아가지 못할 때는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로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는 내 안에 있는 어둠의 세력이 나를 통해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씀 붙잡고 기도하고 읽고 묵상하면서
사랑의 사람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주님께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들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는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것을 계시해 주시며, 
 
오늘날에는 빵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고
물고기도 예수님을 상징하기 때문에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모세 오경과 예언서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고,
 
빵 다섯 개는 구약이고 물고기 두 마리는 신약이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으며,
또한 빵 다섯 개는
마태복음 마르코복음 루카복음 요한복음 요한목시록을 말하며,
물고기 두 마리는
사도행전 편지서(로마서에서 히브리서까지)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는데,
 
결과적으로 구약과 신약성경 27권을 다 읽을 때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먹는 것이기 때문에
말씀의 살과 말씀의 피를 먹어서
그리스도와 한 양식을 먹어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며,
그리스도와 한 영이 되어 하느님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 구원 완성이고
천국 완성이며 부활 승천하는 것입니다.
 
빵도 예수님 몸을 상징하고 물고기도 예수님을 상징하기 때문에
육안으로 볼 때는 빵과 물고기를 먹고 배가 부른 것이지만
요한복음 차원에서는 예수님이 말씀이시기 때문에
말씀의 살과 말씀의 피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씀으로 충만된 사람이 물위를 걸어 가는 것은
홍해를 상징하며(세례상징),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기 12장에 
과월절을 지내면서 어린양을 구워 먹고
누룩이 없는 빵과 쓴(고통 상징)나물과 불에 구운 양을 먹은 후에
홍해를 건넜던 것처럼, 빵과 물고기를 먹고
즉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물 위을 건너는 것이 세례를 상징하며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과월절을 지내고 홍해를 건너
가나안 땅에 가서 육신의 해방이 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말씀의 씨를 뿌리는 말씀을 먹고 말씀화가 되어
바다 위를 건너 겐넷사렛 땅(기름진 땅)인
즉 예수님이 계시는 땅으로 건너가는 예화를 통하여
씨 뿌리는 비유에서 말씀화가 되지 않아
구원에서 제외된 헤로데왕과 같은 사람들을 다시 구원시켜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계시해 주시는 것이며,
 
이 성경 말씀을 통하여 계속 구원의 길과 사망의 길을 보여 주시면서
우리들 보고 구원의 길을 택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나자렛에서 무시를 당하다(마태13,54-58;루카4,16-30)
 
 
마르코복음 4장에서
씨 뿌리는 비유를 설명하여 천국을 여시는데
씨인 하느님 말씀이 사람들 마음 안에 뿌려져
길밭 돌밭 가시밭에 있는 사람들은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시기 때문에
영안이 열리지 않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고향땅인 나자렛에서 배척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랑의 열매가 없기 때문에 사랑으로 보지 못하고,
육안으로 보기 때문에
결점만 보고 상대방을 심판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가페 사랑의 눈으로 볼 때 상대방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고,
상대방의 결점을 보면서
내 안에 있는 결점을 보고 회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의 결점도 처음에는 남들이 보고 지적하지만
나중에는 나의 자녀들 그리고 나의 배우자가
나의 육적인결점을 잘보기 때문에 결점을 말하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가 됐을 때
제일 먼저 자녀들이 우리 아빠 엄마가 변했다고 말하고,
맨 나중에는 부부간에 당신 많이 변했다고 말이 나왔을 때
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고향에서 배척 받는 것은
예수님을 육체적으로는 잘 봤지만
예수님 안에 계신 하느님과 예수님이 하신 생명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알아 보지 못하고,
하느님의 아들이신 메시아를 못 보고 배척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성경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나자렛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배척하게 되는데
성경말씀을 거부하는 것이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이며 성령을 거부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모든 것을 육안으로 외모를 보기 때문에
외모를 보고 판단을 하는데,
외모를 판단하지 말고 마음을 보고 판단하도록
특히 사랑의 눈으로 판단했을 때
사랑만이 심령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소경이 "나는 육의 눈은 볼 수 없지만 심령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죄를 적게 짓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을 봤습니다.
가능하면 형제를 판단하고 심판하지 말고
형제들의 어둠이나 잘못이 나의 어둠이고
나의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고 수용합시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메시아)로 보지 못하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의 열매이며 말씀의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등이며
하느님의 속성인 사랑으로 우리 안에 계시는데
 
내 안에 계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보고 만나고 깨닫고 체험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사랑의 하느님을 볼 수가 있는 것인데,
우리 안에 있는 사랑의 하느님을 못 보는 이유는
우리 안에 육의 열매인
분노, 시기, 질투(갈라디아서5,19)등의 어둠이 있기 때문에
이 어둠을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 둘 버리면
내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사랑으로 보게 될 때 보는 사람이 되고,
시기 질투의 눈인 어둠의 눈으로 볼 때는 영적 소경들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나 오늘 우리들도
사랑으로 볼 때는 하느님을 보는 사람이고,
어둠으로 볼 때는 하느님을 못 보는 영적인 소경들인 것입니다.
 
말씀을 읽어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구하고 청하고 두드립시다.
 
1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 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설명:
히브리사람들은 사촌이나 육촌이라는 말이 없기 때문에
모두 형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형제가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이 나오데
요셉의 친형인 알페오의 아들들인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성전에는 요셉의 친형의 이름이 아랍어로는 알페오이고
헬라말로는 '구로오파스'라고 하는데
예수님의 형제들은 한국식 표현으로 말하면 사촌 형제들인 것입니다.
 
이 구절을 가지고 성모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고도
다른 형제들을 더 많이 낳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촌 형제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열 두 제자를 파견하시다(마태 10,1-1; 마태 10,5-15; 루카 9,1-6).
 
마르코 복음 4장에서 하늘나라를 여시면서
씨 뿌리는 비유로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고말씀을 하셨는데
말씀이 좋은 땅인
옥토에 떨어져 열매를 맺는 예화가 사도들인 것입니다.
말씀이 사도들 심령 안에 떨어져 열매를 맺어
100배 60배 30배의 열매를 맺은
사도들을 세상에 파견시키는 예화인 것입니다.
 
우리들도 성경 말씀 읽고 열매를 맺어 사랑의 열매가 충만할 때
복음 선포하며 성경 말씀을 증거하는 제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7
그리고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8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말씀 상징) 외에는 아무것도,
빵(예수님 몸 상징)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9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설명:
문자적으로 보면 두 벌 옷이지만
영의 옷으로 볼 때는 육의 옷과 영의 옷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저도 30 년 전에 이 성경을 읽고
내 옷장에 있는 옷을 세어 보았더니 양복이 42벌이어서
예수님께서 두 벌만 가지라고 했는데 너무 많아서
자녀들의 결혼식 때에도 양복을 못하게 하고
내가 공부시켰던 조카들 중에는 의사들도 있는데
내 양복을 맞추겠다고 해서
맞추지 말고 와이셔츠 한 벌만 사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 양복을 세어 보니 아직도 27벌이나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을 마칠 때까지 입어도 남겠구나.' 하고 묵상을 했을 때
세상의 물질도 절제해야 되겠지만,더 중요한 것은
'내 육신의 옷과 내 영혼의 옷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창세기로부터 묵시록까지의 성경 말씀으로 짜진 말씀의 옷,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하겠구나.' 하는 것을 묵상하면서
자나 깨나
창세기부터 묵시록까지 말씀을 되새기면서 살아 갈 수 있도록
하느님께 은총과 자비의 기도를 드립니다. 아멘.
 
10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11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
(육을 상징)를 털어 버려라.”
 
설명:
바리사이들이 이방인들이 마을이나 집에 들렸다 나오면서
발이나 옷에 묻어 있는 먼지를 털어 버리는 습관이 있었는데
사도들도 복음 말씀을 전할 때
받아 들이지 않으면 절교의 뜻으로 발에 먼지를 털어 버리는 것은
영적으로 육적으로 관계가 없다는 것을 말하며
예수님은 요한복음 13장에서 세족례를 통하여
발을 씻겨 주심으로써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말씀과 관계를 맺을 때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을수 있으나
예수님을 믿지 않고
관계가 끊어지면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12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13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헤로데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다 (마태 14,1-2 ; 루카 9,7-9)
 
마르코복음 4장에서 하느님 말씀이 선포 됐을 때
마음의 상태가 길밭 돌밭 가시밭에 있을 때는
세상에 있으며 육체의 소유욕인 나의 욕망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하느님 말씀을 받아 들일 수가 없는 것이며,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들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헤로데왕이며,
예수님께서는 헤로데왕을 교활한 짐승인 여우라고
의인화해서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루에 몇 번씩
길밭 돌밭 가시밭 좋은 땅으로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말씀 붙잡고 성경 말씀을 읽고 성경 말씀으로 살아 갈 때,
말씀의 능력으로 우리 심령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내가 사도들의 역할을 할 수도 있고
화가 날 때는
사탄의 앞잡이인 헤로데왕의 하수인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느님이 내 안에 아니 계시면
울리는 꽹과리와 같습니다(코린토전서 13,1).
 
 14
예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마침내 헤로데 임금도 소문을 듣게 되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15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는 엘리야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들과 같은 예언자다.” 하였다.
16
헤로데는 이러한 소문을 듣고,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하고 말하였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 (마태 14,3-12)
 
마태복음에서는
구약성경인 율법을 아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쓰여 놓은 복음서이기 때문에
메시아를 보내 주시겠다는 언약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창세기 3,15에
여인의 후손을 통하여 구원자를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창세기 48,9에
구체적으로 유다지파에서 메시아인 왕을 보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고,
마태복음 1,1에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사악과 야곱과 유다지파인 다윗왕을 통하여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보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인데,
 
마르코복음에서는
로마 이방인들을 위하여 쓰여진 복음이기 때문에
세례자 요한이 메사아인 예수님의 뒤를 예비하는 과정이 나오는데,
세례자 요한은 죄의 회개의 뜻으로 물로 세례를 받으라고 하고
예수님께서는 성령세례를 주시는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말씀하시고,
회개하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맞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세례는 물세례인데
죄를 회개하라는 뜻으로 주는 것이고
예수님의 세례는
원죄를 사해주는 성령의 세례를 말하는 것인데,
 
 
세례자 요한은
이스라엘 민족들의 육적인 죄를 지적했기 때문에 헤로데왕이 죽였으며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들의 영적인 죄를 지적했기 때문에
종교의 지도자들인 제사장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형제자매들을 통하여
나의 어둠이나 잘못을 지적했을 때 미워하고 싸우지 말고
'하느님께서 저 형제들을 통하여 나의 잘못을 지적하는구나.' 하고
내 잘못을 하나 둘 고치게 되면
즉 나의 어둠을 다 버리게 되면 내 안에 진리로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즉 성령의 열매인 사랑으로 계신
하느님을 체험하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17
이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18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19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0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22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23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24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25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26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27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28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29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오천 명을 먹이시다(마태 14,13-21 ; 루카 9,10-17 ; 요한 6,1-14).
 
하느님께서는 초자연적인  기적은사를 통하여 모세를 불렀고,
베드로사도에게도 깊은 곳에 나가 그물을 치게 하시고
많은 고기를 잡는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믿게 하시며,
오천 명을 먹일 수 있는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를 통하여 
많은 육적인 양식을 마련해 주셔서
오천 명이라는 군중들이 배불리 먹게 하는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이 창조주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
양식에 대해서 풀어주시는데
요한복음 6,1~26까지는 썩어 없어질 육의 양식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고
6,27부터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양식을 풀어 주시는데,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 하시고
내 살과 피를 먹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요한복음 차원에서는
예수님이, 예수님의 말씀이시기 때문에
살은 말씀의 살이고 예수님의 피는 말씀의 피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빵과 물고기 기적을 통하여
많은 사람에게 양식을 주어 먹여 살리는 것처럼
예수님 입에서 나온 생명의 말씀을 통하여
잠들거나 죽어 있는 영혼들을 살리시는 주님이시라는 것을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54에
예수님께서는 내 살과 피를 먹어야 영원한 생명이 온다고 하셨으나,
바오로사도는 코린토 전서 15,50에
살과 피는 하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다고 하셨는데,
문자적으로 보면 불일치가 되지만
영적으로 보면
육신의 살과 피가 하늘 나라 상속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살과 피는 말씀의 살과 말씀의 피이기 때문에
하늘 나라 상속은 성경 말씀을 통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영적으로는
같은 내용입니다.
 
성경 말씀을 영으로 풀어서 깨달아 먹을 때 예수님과 한 몸이 되며
이런 사람이 예수님과 한 영이 되는데,
예수님과 한 영이 되는 사람은 예수님을 닮은 부활의 삶을 살아가며
성령의 열매이며 하느님의 속성인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30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3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32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33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3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35 어느덧 늦은 시간이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36
그러니 저들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촌락이나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
37 예수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제자들은 “그러면 저희가 가서 빵을 이백 데나리온어치나 사다가 그들을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알아보고서, “빵 다섯 개,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설명:
하느님께서는 없는 가운데에서도 창조하실수 있는 분이지만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봉헌했을
흘러 넘치도록 많이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어린아이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라고 했지만
마르코 복음에서는 어린아이라는 말은 없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내놓았을 때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이나 많은 숫자를 먹을수 있는 많은 양을
하느님의 기적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내가 가지고 있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봉헌했을 때 하느님께서는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 먹일수 있는 기적을
베풀어 주실수 있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적은 양의 양식을
나눔으로써 넘치는 사랑의 나눔이 될수 있는 것입니다.
 
39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령하시어, 모두 푸른 풀밭에 한 무리씩 어울려 자리 잡게 하셨다.
40 그래서 사람들은 백 명씩 또는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를 잡았다.
41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다.
42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43 그리고 남은 빵 조각과 물고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44 빵을 먹은 사람은 장정만도 오천 명이었다.

물 위를 걸으시다 (마태 14,22-33 ; 요한 6,16-21)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가시는 것은 기적이지만
이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구원의 계시를 해주시는 것입니다.
물 위를 걸어 가는 것은
마치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양을 불에 구워 먹고 홍해를 건너
광야를 통하여 요르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
노예생활에서 자유인이 되는 육신의 해방을 맞이하여 구원 받는 과정을
예수님께서는 다시 예화를 들어 풀어주시는 것입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나 많은 군중들을 배불리 먹인 후에
물 위를 걸어 가서 겐네사렛 땅인
즉 새로운 가나안 땅이며 예수님께서 계시는 기름진 땅으로
이끄시는 과정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 뿐만 아니라
오늘 성경을 읽은 모든 백성들을 구원시키는 과정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홍해를 건너는 것과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건너는 것은
세례를 상징하는데,
이 세례는 죄로부터 죽고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으로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며
세례는 원죄와 본죄를 사함받는 세례성사입니다.
 
예수님과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으면 구원받는 것입니다.
(마르코복음 16,16).
 
45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 벳사이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46 그들과 작별하신 뒤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셨다.
47 저녁이 되었을 때, 배는 호수 한가운데에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혼자 뭍에 계셨다.
48 마침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젓느라고 애를 쓰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새벽녘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그분께서는 그들 곁을 지나가려고 하셨다.
4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로 생각하여 비명을 질렀다.
50 모두 그분을 보고 겁에 질렸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51
그러고 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
그들은 너무 놀라 넋을 잃었다.
52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

겐네사렛에서 병자들을 고치시다 (마태 14,34-36)
 
겐네사렛이라는 땅은 기름진 땅이라는 뜻이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홍해를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 가는 것처럼
 
신약에서 빵을 먹고 물 위를 걸어 겐네사렛 땅에 들어 가는 것은
구약의 가나안 땅의 예표이고
겐네사렛이 예수님이 계시는 구원받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징하며
오늘날에는 교회를 상징하는데 눈에 보이는 하늘나라는 교회이며
예수님께 가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53 그들은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
54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55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56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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