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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일어나 들것을 들고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22 조회수598 추천수9 반대(0) 신고

 

 

 

연중 제 7 주일 - 일어나 들것을 들고

 

이미 여러 번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제가 세례를 준 70대 중반의 할머니 한 분이 계십니다. 너무 늦게 세례를 받아 하느님을 어떻게 알아가야 하느냐고 저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 분은 발이 불편하여 성당에 나가시기 힘들기 때문에 방에서 시간 될 때 성경 필사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의사 출신이시라 글을 쓰면서 성경의 내용을 묵상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습니다.

다리도 아프시고 몸도 좋지 않으신 그 할머니는 신, 구약을 일 년 반 만에 완필을 하셨습니다. 지금은 당신이 공부하고 있는 것들을 모아서 책을 내시겠다고 야단입니다. 정말 늦게나마 주님의 사랑에 불이 붙은 것 같습니다.

그 분이 처음부터 그렇게 열성적인 분은 아니셨습니다. 그 분은 평생 산부인과 의사를 해오시며 수 없이 낙태를 하셨습니다. 낙태를 장려하던 시절, 하루에 60명도 해 보셨다고 합니다. 평생 얼마나 많은 수의 아기들이 그 할머니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한 채 꺼내졌겠습니까?

종교가 없었던 그분에게도 그런 삶은 큰 양심의 가책을 안겨주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점점 얼굴이 비뚤어져 집 밖에 나오지도 못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몸이 많이 안 좋아져 삼 년 동안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지내야 했습니다. 그 분은 그렇게 인생이 마감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밑에 층에 성당에 다니던 두 자매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한 분은 골수암 말기 판정을 받으신 분이었고 또 한 분은 그 분의 시누이였는데 두 분 다 열심히 다니던 신자들이었습니다. 이 두 분은 위층의 할머니의 소식을 듣고 본격적으로 공략을 시작하였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용서하지 못하시는 죄는 없다.’는 것을 확신시키고 움직이지 못하시는 할머니를 위해 그 자매님들이 교리를 해 주었습니다.

제 기억엔 교리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았는데 세례를 청하기에 주임신부님과 상의하고 그냥 세례를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상황 같았습니다.

그런데 세례 받는 날 그 할머니는 절뚝절뚝 걸으시며 성당으로 나오셨고 세례식 때에도 앞으로 걸어 나오셔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지금의 모습으로 변하신 것입니다. 지금 그분의 신앙에 대한 열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고쳐주십니다. ‘중풍병자’는 걸을 힘도 없어서 ‘다른 사람들이 움직여주지 않으면 자신의 힘으로는 예수님께 다가오지 못할 처지’를 상징합니다.

이렇게 심한 병에 걸린 경우에는 주위사람들의 믿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께 갈 힘도, 용서를 청할 용기도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중풍병자의 믿음으로 치유해주신 것이 아니라 지붕까지 뚫고 예수님 앞에 병자를 내려놓을 수 있었던 네 명의 믿음에 보답을 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물론 본인의 믿음을 가장 크게 생각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주위사람들의 믿음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기적을 행하시는 경우도 여러 번 있으셨습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누워있을 때 장모가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지만 주위사람들의 간청과 베드로가 사도라는 이유만으로 직접 손을 잡아 일으켜 주셨습니다.

백인대장의 종이 심한 병으로 누워있는데 백인대장이 “그저 한 말씀만 하십시오. 제 하인이 곧 나을 것입니다.” 하였을 때 그의 믿음이 어떤 유다인들보다 큰 것을 보시고 그의 하인을 고쳐주셨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유다인들은 기적을 행할 때에도 손을 얹어 고쳐달라고 하든지, 찾아와서 고쳐 달라고 했는데 그는 말씀만으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임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로페니키아 여인도 마귀 들린 자신의 딸을 고치기 위해서 계속 거부하시는 예수님께 포기하지 않고 쫓아와 청을 드려 딸을 고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야이로의 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죽은 아이가 무슨 믿음을 그리스도께 고백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가 살아난 것은 부모의 믿음 덕택입니다.

 

사실 구원 받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제가 아는 한 사형수도 저에게 이 진리를 확신시켜 주었습니다. 그는 청부살인으로 잡혀 사형을 언도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옥살이 하는 가운데서 교정사목을 하는 신부님을 만났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가족들도 다 세례를 받게 했습니다. 어머니 말에 의하면 개신교나 불교 신자가 된 사형수들은 죽기 싫어서 사형장 앞에서 모두 울며 저항을 했는데 천주교 신자가 된 이 사형수는 어머님께 죄송하다 말하고 신부님께 담배를 줄이고 운전 조심할 것을, 울고 있는 수녀님과 가족들에겐 좋은 데 가는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며 웃으며 사형장으로 당당히 들어갔습니다. 이 이야기를 며칠 지나서 해 주시는 어머님도 편안한 얼굴이셨습니다. 사실 사형수라면 우리가 생각하는 극악무도한 죄를 저지르고 사회에서도 이미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도 마지막까지 기회를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서도 오른 쪽에 같이 못 박혀 있던 죄인을 구원하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도 주님께서 주시는 이 마지막 기회의 중재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네 명의 사람들의 이름은 비록 성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더라도 하느님의 마음에는 영원히 기억되어 있고 합당한 상을 받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심하는 율법학자들에게 “너의 죄는 용서받았다”하는 것과 “자리를 들고 일어나 가라”하는 것과 어느 것이 쉽겠느냐고 질문하십니다. 물론 “자리를 들고 일어나 가라”하시는 것이 더 쉬울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예수님께서 죄까지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 없는지 사람들이 깨닫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처음에 ‘병을 고쳐준다’는 것을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돌려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죄의 결과가 병의 고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히려 죄도 용서받고 기적도 행할 능력이 있는 분임을 더 쉽게 보여 주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쨌든 중풍병자에게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씀하심으로써 죄도 용서하고 병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을까요?

자리’란 바로 그 사람의 ‘삶의 방식’입니다. 한 가지에 집착하다보면 그 자리에 붙어서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는 상태까지 가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제 힘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다른 말로는 ‘죄의 나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에 집착하여 온갖 거짓말과 죄를 짓고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인기에 집착하여 그것을 잃기 전에 목숨을 끊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권력에 집착하여 수많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애정에 집착하여 그것을 잃고 자살하기도 하며, 육체적 쾌락에 집착하여 결국 강간이나 살인까지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삶에 질력이 나서 벗어나려 해도 오랫동안 집착해 온 것들은 그 사람을 놓아주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삶이 허황될 뿐만 아니라 참다운 인간의 자유를 빼앗아 종으로 만들어버렸음을 깨닫고 다시 자유로워지고 싶지만 자신의 힘만으로는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신자가 있었는데 그 신자도 자신의 죄를 하느님께서 용서해주실 수 없음을 스스로 느끼며 고해보기를 꺼렸습니다. 그런데 주위 신자들이 그 분을 성당으로 데려왔고 고해를 보게 하였습니다. 두려움 속에서 고해를 보던 그 분은 신부님께 아주 적은 보속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를 그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보속을 조금 주는 이유는 자매님께서 이미 자신과의 싸움을 하면서 충분히 보속을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은 것 같아도, 교회를 완전히 떠난 것 같아도, 그 자신 안에서는 이런 이길 수 없는 투쟁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예수님 앞에까지 데려다놔야 하는 것은 건강히 걸어 다닐 수 있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로마에 유학 중이신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복음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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