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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월 21일 야곱의 우물- 마르 9, 2-13 묵상/ 영원히 머물고 싶은 곳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21 조회수471 추천수6 반대(0) 신고
영원히 머물고 싶은 곳

그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제자들이 모두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 그들이 둘러보자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지켰다. 그러나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저희끼리 서로 물어보았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학자들은 어째서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는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많은 고난과 멸시를 받으리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느냐?
 
사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엘리야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제멋대로 다루었다.”
(마르 9,2­-13)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Lord of the Flies)>은 사관학교 소년생도들을 태운 비행기가 바다에 추락, 무인도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소년들은 처음에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질서를 유지하며 살아가다가 구출될 희망이 사라지자 무질서해지고 폭력과 잔인성을 드러낸다.

우리에게 내세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어떨까? 현세는 구출될 희망이 없는 무인도처럼 약육강식의 논리만 남는 살벌한 곳이 되지 않을까? 오직 한 번뿐인 현세에서 남보다 더 잘 살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와 도둑질, 살인이 판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사람들이 이나마 질서를 세우고 본능적인 이기심을 다스리며 약한 이들을 배려하는 밑바탕에는 영원한 세계에 대한 희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내세에 대한 희망 때문에 현세도 희망이 있는 것이다. 설혹 무신론자들이 말하듯 내세란 인간이 만들어 낸 허구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희망이 거짓이 아님을 보여주신다. 마침내 우리가 돌아갈 곳이 어떤 곳인지 미리 맛보여 주신다. 베드로는 그곳에 초막을 짓고 영원히 살고 싶어했으니 얼마나 아름답고 충족된 상태면 그러하겠는가?

예수님께서 부활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것은 현세의 삶에 좀 더 가치를 부여하고, 세상을 그처럼 변모시키라는 말씀이다. 스승이 먼저 세상을 아름답게 변모시키는 일에 목숨을 바치셨으니 제자인 우리가 어찌 아니 따를 수 있겠는가? 먼저 내 주변 세계인 가정을, 단체를, 사회를 영원히 머물고 싶은 곳(상태)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인옥(수원교구 기산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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