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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언어의 오류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27 조회수1,270 추천수1 반대(0) 신고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여 의사소통을 합니다. 언어는 소리를 통한 언어도 있을 것이고 문자를 통한 언어도 있을 것입니다. 언어는 원래 문자 액면 그대로의 의미도 있고 또는 문자의 의미를 넘어 숨어 있는 의미도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은 언어를 사용하면서 그 언어가 드러내는 상황을 잘못 이해하면 서로 오해가 생길 여지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유머를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랑하는 남녀가 신혼여행을 갔습니다.

 

신혼여행을 가서 남자가 신부에게 고백을 하나 했습니다. 여보, 내가 애꾸눈임에도 불구하고 나와 결혼해줘서 정말 고맙구려.라고 했습니다. 난데없는 소리에 신부가 무척 놀랐습니다. 여보, 이게 무슨 소리인가요? 내가 예전에 당신께 청혼할 때 고백하지 않았는가요? 당신보고 한눈에 반했다고요? 난 속이지 않고 진실을 말했는데 뭐가 잘못됐단 말인지 모르겠소? 이런 유머를 봤습니다. 참 아내 입장에서는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이건 웃자고 하는 유머일 겁니다.

 

그럼 여기서부터 유머이지만 한번 이 유머를 통해서 우리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평소 어떤 오류를 범하고 생각하는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언어로 인간이 소통하기 위해서 완전히 소통하기 위해서는 이런 전제가 필요합니다. 말하는 자신과 듣는 상대방이 서로 똑같은 의미로 이해를 해야만 서로 오해 없이 의사소통할 수 있다고 전제할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남자는 한눈이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하고 알고 이런 말을 했을까요? 바로 눈의 개수의 개념으로 이해를 하고 말했을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한눈의 개념은 그런 개념의 뜻이 아닙니다. 한번의 시야에 들어오는 전체 모습과 이미지를 말할 때의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딱 처음 보고 바로 반했다는 그런 뜻으로 해석하는 게 적절할 겁니다. 원래 우리가 보통 상식적으로 이해를 할 때 말입니다.

 

근데 상대방인 여자는 당연히 이 의미로 해석을 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신부입장에서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의미로 해석하는 방식으로 그 남자의 말을 이해했던 것입니다. 이 애꾸눈을 가진 남자도 이런 의미를 모를 수도 있겠지만 그냥 정상적인 통상적인 사고방식으로 봤을 때 몰랐다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게 보면 이렇게 생각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이 남자는 고민을 했을 겁니다. 만약 사실대로 말을 하자면 여자가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있기 때문에 나름 말도 되지 않는 억지 같은 의미를 합리화시킬 수 있는 말인 한눈이란 말로 표현을 하면 나중에 자기는 여자가 어떻게 항변을 해 온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자신의 입장을 변명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한눈에 반했다고 했을 겁니다.

 

그렇게 하면 자기딴에는 거짓말 같지도 않으면서 또 사랑하는 여자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이런 식으로 한번 유머이지만 추측을 나름 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살면서 때로는 선한 존재이지만 때로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애꾸눈을 가진 남자처럼 때로는 세상을 살면서 자신의 상황을 이런 식으로 남에게 의사를 전달할 때가 있는 경우를 가끔씩 보기도 합니다.

 

나약한 인간이라 그럴 수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 언어는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학창 시절에 국어 시간에 배우는 내용입니다. 가령, 한번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저 배를 보아라 라는 이런 말만 들으면 이때 배가 어떤 배인지 모릅니다. 바다 위에 있는 배인지 아니면 배나무에 달려 있는 배인지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저 맛있는 배를 보아라 하면 바로 배나무에 있는 배라는 걸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항구를 지나는 배를 보아라 하면 바로 바다 위에 있는 배로 이해를 할 겁니다. 이처럼 어떤 일부분만 봤을 때는 이게 어떤 의미인 줄 모를 수 있기 때문에 주변의 문맥을 통해 그나마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있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래서 언어로 상호 소통하기 위해서는 정말 상대방에게 오해의 소지가 없을 정도로 명확하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또 아무리 본인은 명확하게 전달했다고 하더라도 듣는 상대방이 또 자신의 수준에서 언어를 조금전에 나온 애꾸눈을 가진 사람처럼 해석을 한다면 때로는 완전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이해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만큼 언어로 서로 완전히 정확하게 소통한다는 건 민감한 사안에서는 이런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은 이런 한계의 격차를 줄이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참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딱 정답이라고 꼬집어 이야기하기엔 한계가 있겠지만 그나마 하나의 방법이라면 이런 게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상대방이 하는 말을 들을 때 그 상대방이 어떤 의미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그가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를 전체 이야기를 통해서 이해하려고 노력을 하게 되면 중간 중간에 설령 잘못 전달되는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상대방이 표현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해할 수 있는 소지도 역시 줄어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말하는 사람도 말을 할 때 항상 상대방이 자기 마음과 같지 않다는 걸 인식하고 상황에 따라 이런 거라면 상대방이 혹시 잘못 오해할 여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서는 좀 더 상황을 사전에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곁들여서 미연에 그런 부분을 설명을 하게 된다면 만약 그렇지 않고도 잘 알아들어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오해를 하게 될 경우도 감안해서 미리 그런 식으로 좀 더 신경을 써서 서로 대화를 한다면 완전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방식으로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관점으로 소통을 한다면 극단적인 몰이해 같은 상황으로는 흐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봤을 때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보면 뒷담화 같은 건 아니지만 어떤 경우는 서로 좋은 일을 해보고자 의논하기 위해 의견을 모으려고 하는 과정에서도 예상하지 못하게 또 뜻하지 않게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되어 마음에 상처를 입는 그런 걸 아주 많이는 아니지만 가끔 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도 있기 때문에 말은 정말 지혜롭게 잘 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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