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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말묵상]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 - 변희선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21 조회수963 추천수10 반대(0) 신고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두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아마도 자기 자신의 죽음에 관한 질문일 것이다. 부처님의 전기를 읽어보면 그분은 집을 나서서 세상의 거의 모든 이치들을 깨우쳤어도 마지막 득도의 순간까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할 수 없어서 번민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왜 죽어야만 하는가? 죽고 나면 어떻게 되는가? 이러한 질문에 관하여 속이 시원하게 답변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아무도 죽고 나서 되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죽음이라는 현실을 직감했던 적이 몇 번 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급성장염에 걸려서 병원에 갔는데 배를 째고 수술을 받으면 죽을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의사선생님께 수술을 받지 않고 고쳐달라고 애원했더니 측은한 눈으로 나를 보시면서 새로 나온 항생제로 치료를 해 보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어쨌든 수술 없이도 나의 장염은 치유되었다.


    또 한 번은 서울 전농동 성당의 주일학교 선배교사가 암으로 죽어 가는 모습을 목격한 그 날 밤이었다. 아무리 잠을 청해도 죽음의 전율이 엄습하면서 정신은 점점 더 말짱해지기만 하였다.


    가슴은 두근거리고 폭풍우 같은 공포가 닥치면서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아서 무조건 묵주를 꼭 잡고 성모님께 매달렸다.


    잊을 수 없는 이 날 밤, 나는 사제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어린 시절부터 사제의 길이 좋은 것이고 막연하게나마 성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자주 기도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날 밤 나는 나 자신의 한계와 운명에 대하여 보다 확실한 깨우침을 얻었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죽으며 죽음이 삶의 마지막이라면 어차피 절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만일 하느님께서 계신다면 죽음이 문제될 것이 없으며 나의 구원을 위한 최선은 사제의 삶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그 길을 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주님께 기도했다. "주님, 제가 지옥을 간다고 할지라도 당신은 계셔야 할 분입니다. 당신이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아무런 의미도, 희망도 없겠기 때문입니다. 주님,  저를 구원하시지 않아도 좋지만 우리에게 당신이 계신다는 것 자체가 희망의 시작이고 끝이기 때문입니다."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절망이다." 이 말은 수많은 불치병 환자들의 진솔한 고백이다. 정말로 고통스러운 것은 육체의 아픔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과 영혼이 삶의 의미와 희망을 잃고 절망에서 헤맬 때가 더욱 고통스러운 법이다. 육체의 감각이 무디어지는 것보다 양심의 감각이 마비되고 영혼이 그 분의 진리와 사랑에 목마를 때가 훨씬 더 힘든 것이다.


    문제는 육체적 감각만을 맹신하는 문화적 풍토에서 매일 매임을 살아가는 우리는 죽음이라는 육체적인 감각의 한계조차 인정하지 않고 그저 잊어버리고 외면하려 한다는 점이다.


    죽은 이들을 기억하지 않으려는 문화적 풍조는 죽음 후의 삶을 믿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그래서 젊음만을 찬미하고 무조건 좋은 것인 양 선전한다. 그러나 미래의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보다 먼저 가신 영혼을 기억하고, 기도하고, 만날 수도 없을뿐더러 부활 자체이신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복음은 "하느님은 죽은 자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이시다."라고 (루카 20,38) 선포한다. 여기서 죽은 자는 이미 육체적으로 죽은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잃고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감각만을 현실의 전부하고 맹신하고 육체의 죽음이 삶의 끝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은 결국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떠한 고통이나 육체적인 죽음까지도 견디고 이겨서 희망으로 구원된 자를 의미한다.

 

▣ 변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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