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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는 당연히 ...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05 조회수1,528 추천수1 반대(0) 신고
 나는 당연히(2열왕 5,11) 이것이 나아만의 나병은 아닐까?


"그리하여 나아만은 군마와 병거를 거느리고 엘리사의 집 대문 앞에 와서 멈추었다. 엘리사는 심부름

꾼을 시켜 말을 전하였다.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십시오. 그러면 새살이 돋아 깨끗해질

것입니다.' 나아만은 화가 나서 발길을 돌리며 말하였다. '나는 당연히 그가 나에게 나와 서서, 주 그

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병든 곳 위에 손을 흔들어 이 나병을 고쳐 주려니 생각하였다."(2열왕 5,

9-11)

 

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에서 사람에게 쓸 수 없고 사람에게 해당이 안 되는 말이 있을까? 있다면 뭘까?

내가 생각하는 건 절대로와 당연히가 아닐까 싶다. 절대로와 당연히라는 말을 우리는 얼마나 하고 살까?

절대로와 당연히를 쓸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이 아니실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나아만은 자신의 나병을 치유받기 위해서 엘리사 예언자를 만나러 간다. 그런데 그의 모습은 전쟁을

치루기 위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군마와 병거를 거느리고 그는 엘리사를 만나러 왔다. 그리고 자기가

생각한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 어찌 인간의 생각이 당연할 수 있다는 말인가? 당연하

다는 것은 절대적이라는 말이 아닌가? 인간에게는 절대적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왜냐? 한계를 지

녔기 때문이고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치유받기 위한 사람의 기본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낮아진 자의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낮아진 자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군마와 병거를 거느리고 가는 모습이 아니고 우리 예수님처럼

나귀를 타고 가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치유해 줄 수 있는 분의 권위에 복종하는 모습이

낮아진 사람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분보다 자신의 생각이 당연하다고 화를

내는 나아만의 모습이 바로 나병의 모습은 아닐까 싶다.


우리도 신앙 생활 안에서 나아만처럼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따르지 않고 당연히 내 생각대로 예수님께서 해 주셔야 되지 않겠냐고 화를 내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깊이 묵상해 볼 가치가 있다고 본다. 당연히라는 말 안에는 자신이

하느님의 자리에서 살고 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주님, 이제 제 입에서 당연히라는 말이 아니라 당신 말씀에 "예!" 하고 순명하는 마음을 주소서.

아멘.


결국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 그러자

그는 어린 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2열왕 5,14)


나아만은 자신의 당연히를 고집했다면 결코 나병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아만의

훌륭한 점은 당연히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사람들의 조언을 수용하는 점이

그의 훌륭한 점이라고 보았다. 그의 부하들이 해 주는 말을 기꺼이 그는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여정에서도 이런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나도 나아만의 모습을 살 수 있고 또 너도

나아만의 모습을 살 수 있다. 당연히라는 말을 하면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만의 부하들의

말을 듣고, 그 말을 수용했던 용기있는 면도 본받아야 한다. 화가 나서 당장 떠나고 싶을 때가 어디

한두 번이던가? 그러나 그럴 때마다 지인들이 이러저러한 조언들을 해 준다. 나는 기꺼이 나아만처럼

그들의 조언을 듣고 수용하며 사는 사람인가? 반성해 본다.


나아만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점은 내가 당연히라는 말을 품고, 또 하고 살지만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수용하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 안에서 하느님의 사람의 말씀도 잘 따르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전해주는 어떤 조언이나 충고 등

이런 것을 무시하고 살아간다면 결국 하느님의 사람의 말씀을 따르는 데도 걸림돌이 되는 것 같다.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의 조언이나 충고를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모습이 바로 나아만이 요르단 강으로

내려가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하느님의 사람의 말을 먼저 들은 것이 아니고 자기와 함께 살아가는 사

람들의 말은 듣고, 하느님의 사람의 말씀을 실천하는 나아만의 모습 안에서 자기보다 낮은 사람의 말을

수용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요르단 강으로 내려감을 의미하지 않나 싶다. 내려감이란 그런 것이 아닐

까 싶다. 군마와 병거를 거느리고 위풍당당했던 그가 자신의 부하들이 해 준 말을 수용하는 모습이 바로

내려감이 아닐까 싶다.


결국 나아만은 스스로 내려감으로 나병에서 치유가 되었다. 요르단 강물이 어떤 기적을 베푼 것이

아니라 나아만의 내려감이 그를 구원으로 이끌었다고 묵상해 본다. 당연히를 내려 놓고 내려감을

통해 그는 어린 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났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나아만, 나병, 당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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