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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성모님의 눈물을 보게 해 주세요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07 조회수1,259 추천수1 반대(0) 신고

 

 

이제 12시가 지났으니 어제가 되겠네요. 어제는 재의 수요일입니다. 재의 수요일을 기점으로 해서 사순이 시작됩니다. 제가 성체조배를 수요일 날 밤 11에서 12시까지 합니다. 조배를 하며 사순에 관한 묵상을 하는데 약 30분쯤 시간이 지날 무렵 두 눈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어제 조배 때 성체 앞에서 묵상한 주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주님, 이 죄인을 용서하소서. 그리고 성모님의 눈물을 보여주세요였습니다.

 

며칠 전부터 사순을 맞이하면서 마음속에 다짐을 한 게 하나 있었습니다. 이번 사순을 계기로 해서 다시 새로운 신앙인으로 태어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사순을 계기로 정말 한 단계 성숙된 신앙인으로 태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러기에 어제 조배 때 성체를 보며 주님께 애원을 해봤습니다. 참으로 신앙생활이 쉽지 않습니다. 혼자와 하느님과 예수님의 관계라면 정말 어려운 신앙생활이 되지 않을 텐데 신앙생활이라는 게 하느님과 일대일만의 신앙이 아니고 공동체와 어우러져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때로는 정말 공동체 개인 개인과 함께 조화를 이루어가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되니 그래서 힘든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마음과 같지 않아서입니다. 정말 자기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상대방은 오해를 한다든지 이럴 경우입니다. 그렇다고 오해를 하는 경우에 일일이 그건 이렇고 저렇고 해명을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제가 옛날부터 이런 경우를 만나게 되면 항상 생각하는 게 있었습니다. 바로 누가 사람의 마음을 찍는 카메라를 발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누가 이런 걸 발명했으면 좋겠습니다. 공동체와 조화를 이루려다 보니 사람이 어쩌다 보면 정말 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또 그 사람이 혹 오해를 할까봐서 본의 아니게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대로 말하고 또 그 느낌대로 행동을 하면 불을 보듯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하고 그 상대방의 감정이 어떻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니 참으로 난감합니다. 자신의 감정 그 느낌 그대로 하자니 관계가 좀 꺼려지는 상황이 되니 또 그렇게 되면 정말 지금까지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신앙생활이 피곤하다는 표현이 좀 그렇지만 정말 피곤해집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상대방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아무리 선의의 거짓말이지만 거짓말을 하게 되니 말입니다. 이게 선의의 거짓말 선에서 끝나게 되면 또 별문제입니다만 이게 그 단계에서 끝나는 게 아니고 다음에는 또 다른 사실로 그 선의의 거짓말을 합리화해야 하는 그런 사정이 생기는 겁니다. 이건 뭐 정말이지 하느님 일이라고 어떤 때에는 세상말로 정말 죽어라고 해도 일이 꼬여갈 때는 정말이지 모든 걸 그냥 포기하고 싶지만 포기도 싶지 않습니다. 포기하자니 어떤 일을 맡았으면 그 일을 맡은 이상 책임을 다해야 하는 그런 경우도 있기 때문에 정말 난감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결국은 주님, 이래서 어쩌다 보니 제가 원래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제 모습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제 모습이 아닌 다른 저의 모습의 가면을 써야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저는 저의 이런 모습이 정말 싫습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바로 이런 가면을 써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가식적인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렇다고 아주 양심적으로 산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저도 인간인지라 어쩔 경우는 때로는 가면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어쩌면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떤 일 때문에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표현할 수 없고 부득불 다른 사람이 되어야 되고 또 그러다 보면 하느님께 자기도 모르게 죄를 짓게 되니 이걸 어쩌면 좋겠습니까?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하느님. 하느님을 믿고 잘 따르자니 이런 게 일어나는 데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요? 이런 맘으로 성체 앞에서 하느님께 하소연하며 예수님께 한 가지 희망을 말씀드렸습니다.

 

저란 인간도 인간인데 어찌 세상을 살면서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겠습니까? 이미 성경에서도 인간은 죄를 짓기 마련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죄를 지을 때는 짓더라도 조금 들 짓는 방법이 없겠습니까? 하고 여쭈면서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생각이나 말로 죄를 지으려고 할 때 눈물 흘리시는 성모님의 모습을 제 마음속에 떠오르게 하고 또 그 모습을 제가 죄를 지으려고 할 때 제 눈앞에 보여주시게 해 주십사고 말입니다. 왜 차라리 저희 죄 때문에 피눈물 흘리시며 채찍에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살점이 벗겨지는 그런 처절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십사고 제가 예수님께 바라지 않았을까요? 물론 이런 모습을 생각하면 죄를 들 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성모님의 눈물을 보여주세요라고 한 건 바로 이런 연유에서입니다.

 

처절한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때는 예수님의 모습만 보이게 되고 성모님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골고타 언덕을 오르시는 당신의 아들의 모습을 보시며 가슴 부여잡고 가슴으로 눈물 흘리시는 성모님의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성모님의 얼굴을 보면서도 바로 예수님의 모습을 동시에 볼 수가 있어서 그렇게 해 달라고 요청한 겁니다. 바로 성모님의 눈물에는 어떤 게 있겠습니까?

 

바로 성모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그 아들이 그 아들의 죄가 아니고 저희의 죄를 보속하시려고 인간의 온갖 멸시와 조롱이 썪인 정말 하느님의 사랑하는 외아들이 짊어지고 가는 그 십자가가 얼마나 성모님의 가슴을 후벼파겠습니까.  애끓는 모정을 어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성모님의 모습에 하느님도 함께 같이 눈물을 흘리셨을 것 같습니다. 왜 하느님께서 우셨을까요? 바로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어머니이지만 동시에 하느님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천주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라는 단어는 우주에서 가장 숭고한 말인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정말 성모님을 공경하는 효자였습니다. 마지막 십자가상에서 죽어 가시는 그런 상황에서도 성모님을 걱정하시며 요한 제자에게 성모님을 부탁하시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원래 예수님의 마음과 하느님 마음의 근본 본성이 같으니 어찌 하느님께서 그런 성모님의 아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애끓는 모정의 눈물을 흘리실 텐데 그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실 거라고는 저는 상상을 할 수 없습니다. 바로 그 눈물은 성경이 증명합니다.

 

바로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올 때 그때 아버지가 흘리는 눈물이 바로 이때 하느님께서 흘리시는 눈물과 같을 겁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때 아버지의 눈물은 죽었다고 생각했던 아들이 돌아와서 흘리는 기쁨의 눈물일 수도 있지만 그 기쁨의 눈물에는 그동안 집 나간 아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노심초사 기다리며 말없이 가슴으로 흘린 눈물이 그때 같이 함께 나왔을 겁니다. 그 눈물에는 아들을 생각하고 걱정하는 아비의 한 맺힌 눈물입니다. 바로 그 한의 눈물이 성모님의 눈물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성모님께서 가슴 부여잡고 가슴을 타고 흐르는 단장의 눈물 속에는 바로 이 세상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사랑하는 아들을 가슴에 묻는 고통이 동반하는 그런 눈물이기 때문에 그래서 성모님의 눈물을 보게 되면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볼 수도 있고 그런 모습을 보고 가슴 부여잡고 흘리시는 성모님의 눈물을 보게 되면 하느님께서 그렇게 천주의 어머니께서 눈물을 흘리시는데 어찌 하느님께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성모님의 눈물을 보게 되면 성모님의 눈물에는 이 모든 눈물이 다 녹아 있을 것 같아서 성모님의 눈물을 제가 생각으로나 말로 또는 행동으로 죄를 짓게 될 때 성모님의 눈물을 의식하게 되면 죄를 들 지을 것 같다는 생각을 조배를 하면서 드는 단상이었습니다.

 

성모님의 눈물을 보여주세라고 하면 어쩐지 슬픈 모습일 것 같다는 생각도 한번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면도 있을 겁니다. 근데 저는 한편 다르게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물론 눈물 흘리시는 성모님의 모습은 가슴 아프지만 이를 통해서 예수님의 수난을 생각하며 우리가 왜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골고타 언덕을 오르셨는지를 묵상하며 그런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이때의 성모님의 눈물은 가슴 아픈 슬픔의 눈물이 아니고 정말 성모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 갸륵하다고 느끼시지 않을까 하고 한번 상상을 해봅니다.  이렇게 생각을 한번 하게 된다면 정말 성모님께서 대견하다고 생각하시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어디까지나 저만의 생각입니다. 그냥 어떻게 하다 보니 생각지도 않게 성모님 생각으로 조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떠오른 단상을 한번 나누어보려고 적었습니다. 두서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솔직 단백하게 표현해봤습니다. 어찌 보면 이게 더 제 진솔한 마음을 함께 나누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위적으로 글을 다듬어서 표현한다면 기계적인 느낌이 들지도 모르니깐요. 아무튼 부족한 내용이지만 조금이라도 은혜로운 사순을 보내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번 올려봤습니다. 이제 시간이 새벽 세시를 조금 지나는군요. 감사합니다. 은혜로운 사순이 되길 기도드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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