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모고해를 시작하는 사람은 과연 불행하다 / 고해 사제에 대한 순종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11 조회수581 추천수3 반대(0) 신고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
[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모고해를 시작하는 사람은 과연 불행하다

모고해는 이와 같이 많다. 마귀가 신자들에게 죄를 고해하지 않도록, 모고해를 하도록 항상 작용한다는 사실을 고해 사제들이 버젓이 알고 있으면서 어째서 고해자에게 샅샅이 들어서라도 바른 고해를 하도록 하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 점은 고해 사제를 탓할 일이 아니다. 신부들은 종종 이 사람이 바른 고해를 하는가 의심하는 때가 있지만, 의심이 가는 것을 질문하다가 도리어 좋지 못한 결과를 내지 않을까 걱정한다. 비유하건대 신부가 고해자에게 “이러저러한 죄를 범하지 않았는가?” 하고 물으면 신부가 나를 그런 죄를 범하는 줄 알고 평소부터 의심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고해자가 이런 생각이 들면 바로 고해할 것도 숨기기 쉽고, 둘러대기 쉬운 역효과를 낼지 모른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고해자 자신이 항상 바른 고해를 할 의무가 있다.

한 번 모고해를 하기 시작하면 양심의 가책으로 못 견디게 괴로워하면서도 하느님의 특별한 조치가 없이는 늘 모고해를 계속하기 쉽다. 여기에 내가 직접 당한 사실을 한 가지 이야기하겠다.
어느 성당에서 피정 기도가 있었다. 나는 수개월 전부터 내가 고해를 들을 때 항상 고해소 언저리를 돌아다니며 근심을 이기지 못하던 여성이 이 피정 기도에 참석한 것을 보았다.
어느 날 밤 그 여성은 드디어 나에게 와서 내 발 앞에 엎드리고는, “신부님, 저를 좀 도와주셔요. 저는 불행한 여자입니다. 15년 전부터 모고해에 모고해를 거듭하며 지내왔습니다.” 하면서 운다.
나는 그녀를 위로하고 권면하면서, “자, 그러면 용기를 내시오. 하느님은 당신에게 사랑을 베푸십니다. 예수님도 당신에게 지극히 인자하십니다. 자, 바로 말하시오. 몇 살 입니까? 어째서 그런 죄에 빠지게 되었습니까?” 라고 물었다.
“27살 입니다. 12살 때 좋지 못한 호기심으로 뒤에 고해할 용기를 내지 못할 만한 큰 죄를 처음으로 범했습니다. 모고해하고 모령성체를 했습니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17년 동안 늘 모고해, 모령성체를 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열심히 기도도 하고, 울기도 많이 했습니다. 성지순례도 여러 곳을 했습니다마는 모두 헛일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달마다 자주 고해를 했습니다. 피정 기도 때는 일생의 총고해도 했습니다. 그러나 부끄러워서 처음 숨긴 그 죄만은 언제든지 바로 고하지 못했습니다.”라고 한다.
“당신, 그런 고해로 만족했습니까? 영성체를 안심하고 했습니까?” 하고 내가 물었더니, “아, 신부님!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얼마나 가책을 받았겠습니까? 고해 때나 영성체할 때마다 제 마음은 무서운 가시가 찌르는듯 괴로웠답니다.” 라고 말한다.
“그렇게 괴로워하면서 왜 그대로 모고해를 계속해왔습니까?”하고 물으니, “저는 참으로 미련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죄를 바로 고해하면 신부님이 저를 나무랄 줄 알고 무서워서 그것을 감추었고, 영성체를 하지 않으면 친구들이 이상히 여길 것 같아서 그대로 늘 성체를 영했지요.”
“그러면 최근에 고해는 언제쯤 했습니까?” 하고 물으니, “신부님, 피정 기도 시작하고 나서 벌써 3번 고해했는데 그 때마다 다른 신부님께 했습니다. 이 신부님, 저 신부님께 고해할 때마다 이번에는 바로 고해하겠다고 결심해보았습니다만 죄를 고하려고 하면 꼭 새끼로 제 목을 졸라매는 것 같아서 그만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어째서 그 죄를 고할 용기를 얻었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바른 고해가 절대로 필요하다는 오늘 밤 신부님의 강론에 제가 깨달은 바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이 ‘해보아라. 그러면 예수님이 얼마나 인자하신 어른이신지 알 것이다’라고 몇 번이나 말씀하시기에, 저는 어떻게 되든지 이번에는 바로 고해를 하리라고 단단히 결심하고 온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고해 사제의 명철한 지도 아래 지금까지의 모든 죄를 깨끗이 고해하여 사죄를 받고, 15년 동안 불안에 싸였던 마음이 비로소 평온해졌다. 그녀는 너무나 기쁘고, 너무나 감격하여, “신부님! 모고해, 모령성체한 죄가 말할 수 없이 많았습니다. 저는 이제 마음이 시원하고, 괴롭고 무거운 짐을 벗은 것 같습니다. 저는 누구에게든지 예수님이 얼마나 인자하신 어른이신지 말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거듭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임종 때라도 이와 같은 은혜를 받게 되는 사람은 얼마나 다행이리오만 고해를 잘못하는 중에 임종 때까지 모고해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고도 슬픈 일이다. 곧 한 발을 무덤 속에 넣고도 소년시절에 숨겼던 죄를 그대로 가지고 남은 한 발마저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
하느님의 인자하심이 무한하지만 일생 동안 그 인자하심을 악용하며 독성죄를 범하여 하느님을 모욕한 사람을 하느님께서 무조건 용서해주 실지는 모를 일이다. 그뿐 아니라 대개 이런 유에 속한 사람들은 임종을 당하여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바라는 대신 도리어 그를 경멸하게 되는 두 서너가지 실례를 들어보기로 한다.

다르 비오 신부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안주인의 권면에 따라 어느 가정부가 자주 고해성사를 보기는 하는데 한번 범한 6계(간음하지 마라)의 죄가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고집도 세서 고해를 하지 않았다. 한 번은 그녀가 중병에 걸려 안 주인의 친절한 주선으로 고해 사제를 청하여 고해성사를 받게 되었지만, 또 모고해를 했다. 그 뿐 아니라 안주인의 각별한 간호로 병이 나아서는 안주인과 고해 사제가 바른 고해를 하도록 애쓴 것을 도리어 자기 친구들에게 비웃기까지 했다.
그러던 중, 그녀는 다시 중병에 걸렸다. 안주인은 또 다시 신부를 청하느니, 간호를 하느니, 매우 당황했다. 신부가 와서 고해성사를 주는데, 이런 경우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인내심과 친절을 다하여 그 불행한 여성에게 간절한 통회로 바른 고해를 하도록 꽤나 노력했다. 그러나 또 헛일이었다. 그녀는 임종이 오래 걸리는 동안에 고집을 부려 그 죄를 끝까지 고해하지 않고 통회의 기도를 외우라는 신부의 말씀도 거절했을 뿐 아니라 그가 곁에 있는 것까지 귀찮게 여겼다.
신부는 그녀가 점점 죽어가는 것을 보고는 안타까워서 그녀에게 십자고상에 친구를 하라고 입술에 대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최후의 발악을 하며 신부를 어서 가라는 눈치로 잔뜩 흘겨보면서, “그리스도고 무엇이고 다 싫소. 나는 귀찮습니다.” 라고 하며 돌아눕더니 무섭게 긴 한숨을 쉬며 독성죄 그대로 죽고 말았다. 이런 사람에게 앙화로다!

부지니아의 아우구스티노 신부도 자신이 당하고 목격한 사실을 이야기했다. 어느 불행한 여성이 고해할 때 항상 제일 큰 죄만을 숨겼다. 이렇게 모고해를 하면서도 부끄러워서 강론을 들을 때나 친절히 권면 받을 때 양심의 가책을 무한히 받기는 하지만 바르게 고백하기를 꺼렸다. 오랫동안 그녀의 회개를 기다리시던 하느님의 자비하심은 그녀에게 무서운 병을 보내주셨다. 그녀는 그 병으로 거의 죽게 되어서 빨리 신부를 청했지만 신부를 보자 즉시 소리 지르기를, “신부님! 당신은 고해할 때 거짓말을 한 여성이 지옥에 빠지는 꼴을 보시려고 마침 잘 오셨습니다. 저는 종종 고해는 했습니다만 언제든지 제일 큰 죄만은 숨겼습니다.”라고 한다.
신부는 너무나 기가 막혀서, “그러면 지금이라도 그것을 잘 고해하시죠.”라고 친절히 타일렀다.
“안됩니다. 안돼요. 자비를 받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지금은 정의의 때입니다.”라고 소리를 지르더니 미친 사람처럼 발광하다가 주위 사람들의 마음속에 엄청난 절망과 슬픔을 남긴 채 영원히 가고 말았다. 참으로 이런 고해를 시작하는 사람에게 앙화로다!

또 성 알퐁소도 이런 이야기를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도 열심하면서도 늘 모고해를 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 역시 중병에 걸렸다. 그는 본당신부를 청했다. 신부는 그 사람에게 매우 위중하니 임종에 필요한 성사와 임종 전 대사를 잘 받도록 권했다. 그러나 그는 종래 고집을 부리며 고해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어째서 당신은 곧 임종할 터인데 고해하기를 싫어하시오?” 하고 물으니, “아, 저는 벌써 틀렸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제가 이때까지 모고해, 모령성체한 그 독성죄를 바로 고할 생각과 힘을 제게서 다 떼어버렸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자기 혀를 깨물어 발광하면서, “요 망할 혓바닥! 망측한 무언(無言)! 저주스러운 독성!”이렇게 횡설수설하다가 그만 숨지고 말았다.

아!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이러한 실례를 듣고도 또 모고해할 사람이 있을까? 어떤 일이 있어도 모고해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결심을 하지 못할까? 어째서 벙어리 마귀에게 져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밟고, 거룩한 약인 고해를 독약으로 바꾸며, 영원한 멸망으로 스스로 원해서 떨어질 까닭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우리는 항상 바른 고해를 하도록 힘쓰자.



고해 사제에 대한 순종

고해 사제에 대한 순종이라 함은 그를 신뢰하고 신용하며 그의 판단에 자기를 아주 맡기며, 그의 명령과 훈계와 권면을 충실하게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혹시 내가 아직 전부를 말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 고해 사제가 좋다, 알았다, 그만 해도 넉넉하다라고 말할 경우가 있다. 그때는 한 마디도 더 말할 필요가 없고 곧 잠자코 순종할 따름이다. 그 때는 모두 말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해도 상관 없다. 그 사람의 영혼 상태를 고해 사제는 벌써 짐작했고, 미처 말 못한 부분까지 다 잘 알았다는 의미로 말하는 것이다.

또는 고해 사제가 무엇을 물어보려고 고해자의 말을 가로막을 때도 있다. 그 경우에도 고해자는 아무런 구애를 받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아직 덜 고해한 것을 잊어버리기 전에 다 고한다고 신부의 말씀을 귀에 담아 듣지도 않고, 자기 말만 자꾸 하려는 것도 안되는 일이다.
가령 아직 덜 고한 죄를 잊어버릴 위험이 있다 할지라도 신부의 말씀부터 주의해 들어야 한다. 그리고 신부의 질문이 다 끝나거든 그때 아직 덜 고한 죄를 고해할 것이다. 이렇게 하다가 사실 무슨 죄(대죄일지라도)를 잊었다 할지라도 그 고해의 효과가 없지 않다. 그러나 잊었다고 생각되는 죄는 다음 고해 때에 할 의무가 있음을 알라. 그 고해가 유효한 까닭은 신부의 말씀에 주의하다 잊었지, 일부러 잊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해가 유효하였으니 다음 고해할 때 그 잊은 죄를 고할 마음을 먹고 영성체를 해도 무방하다.

고해 사제보다 학식이 많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신부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왜냐하면 고해 사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예수 그리스도가 신부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해할 때마다 신부의 긴 설명과 교훈을 들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 희망은 허영심에서 오는 것이다. 고해소는 무슨 설교대나 강론하는 곳이 아니다. 그러나 고해 사제 쪽에서 무슨 긴 말씀이 있을 때는 주의 깊게 귀담아 들을 일이다.

또 한 가지는, 고해 사제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 안된다. 고해 사제가 고해자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믿어야 함과 같이 고해자도 신부의 말씀을 솔직하게 믿을 의무가 있다. 신부의 권면을 듣지 않고 자신을 변명하려 드는 사람은 마치 자기 병을 고치겠다는 기분만 가지고 의사가 하는 말은 듣지도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이 건강을 회복하는 데 아무 소용이 없는 이치와 같다. 도리어 의사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그를 신용하여 자기 생각에는 덜 맞을지라도 약이나 주사를 선정하는 책임을 의사에게 맡기고 그가 시키는 대로 해야, 병을 고치든지 건강을 회복하든지 할 것이다. 영혼의 의사인 고해 사제의 권면을 안 듣는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요, 또한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다.

고해 사제가 고해자에게 이제는 과거를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는 그 죄는 고하지 마시오라고 말한다든지, 그 의심, 그 의혹에 마음을 태우지 마시오, 그 유감을 가지고는 걱정할 필요 없소, 등등의 말을 하면 절대로 확신을 가지고 고해 사제가 말씀하시는 것이니까 안심해도 좋을 것이다.
고해 사제의 권면과 타이르는 말을 순종하여야 하며, 영혼 사정에 대해 신부가 말씀하는 것을 믿어야 한다
.

고해 사제가 우리 영혼 사정과 양심 문제에 대해 책임을 가지는 것은, 신부는 우리 마음 속을 잘 알고 우리의 결점을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면 그 환자보다 훨씬 병상을 잘 아는 것처럼.

우리는 고해 사제를 신용해야 한다. 자기의 의견을 버리고 솔직하게 고해 사제의 훈계와 위로를 받아들이는 영혼만이 참된 평화를 마음에 누리게 될 것이다.

( 영혼의 聖藥 / 가톨릭출판사 )




[오늘의 성경]

네 근심을 주님께 맡겨라. 그분께서 너를 붙들어 주시리라. 의인이 흔들림을 결코 내버려 두지 않으시리라. (시편 55,23)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로마 8,35.37)

너희는 마치 사람이 제 아들을 업고 다니듯,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가 이곳에 다다를 때까지 걸어온 그 모든 길에서 줄곧 너희를 업고 다니시는 것을 광야에서 보았는데, 그 광야에서도 그렇게 싸워 주셨다. (신명 1,31)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 (히브 12,5-6)

*~*~*~*~*~*~*~*~*~*~*~*~*~*~*~*~*~*~*~*~*~*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성인의 통공 안에 있는 가족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