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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68) 주님께서 거렁뱅이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10 조회수435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9년2월10일 화요일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_창세기1,20-2,4ㄱ;마르코7,1-13_
 
(468) 주님께서 거렁뱅이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이순의
 
 
2009년 정월 열사흩날에 하와가 아팠습니다. 오돌오돌 춥고, 코 끝이 맹맹하고, 머리는 지끈지끈 조여오는데다가 몸은 몽둥에 맞은 것처럼 욱신욱신 합니다. 산에서 내려 온 후로 곰이 되었는지 틈만 나면 잠만 자던 하와가 잠을 청하지 못하고 축 늘어진 수제비 반죽처럼 쇼파를 차지하고 퍼질러져 있습니다. 아담이 좀 걸터 앉아 텔레비젼이라도 볼 요량인데 눈치를 보아하니 하와의 꼴이 만사가 귀찮아 보이는 눈치입니다. 에라 그냥 잠이나 자자 싶어서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가 아담은 잠을 잤습니다. 아담과 하와네 집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 정적을 깬 쪽은 아담이었습니다.
 
<꿈자리가 참 이상하네. 자네가 많이 아플랑갑네. 술을 세 번 따르는 걸 보니 죽게 아플 것 같은디......>
아담이 안방에서 나오며 내 뱉는 걱정스런 꿈이야기에 풀죽 같은 하와가 일어나 자리를 비켜 줍니다.
<응, 나 지금 많이 아퍼.>
소파에 앉은 아담의 어깨에 하와가 무거운 머리를 기대며 하소연을 합니다.
 
그리고 늦은 출근을 하려고 아담이 양말을 신습니다. 저녁 7시면 출근인데 김장철 장사가 끝났으니 물건도 없곤 하여 시장 동향이나 보러 나간다고 아주 깊은 밤 중에 양말을 신습니다.  하와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서 출근을 말려 보지만 하루 하루의 동향이란 중요한 밥벌이와 연결선이라서 나갔다가 금방 온다고 합니다. 하와는 굳이 고집을 피우지도 않았습니다. 감기 몸살 같았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양말 한 짝을 신고 남은 한 짝을 발가락에 끼우려고 할 때 휴대 전화기가 울립니다. 아담은 발가락에 걸린 양말을 그대로 두고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 응. 알았다.>
 
그 간단한 아담의 음성에서 큰 일이 벌어졌음을 예감한 하와가 벌떡 일어나 앉았습니다.
<작은 아버지 돌아가셨다네.>
 
아담에게는 위로는 다 가시고 끝으로 막내 작은 아버지 한 분이 계십니다. 하와에게는 시 작은아버지 이시지요. 순간적으로 둘은 별 말이 없었습니다. 독신이시고, 후손이 없으며, 술보에다가, 땡깡쟁이에, 고집불통 뿐만 아니라, 주사가 심하시고, 가족의 말은 절대로 안 듣고, 직업도 없으며, 때 되어 오셔서 가난한 어머니의 단칸 방에서 제사를 지낸다거나 명절을 지내시고 만취상태가 되면 늙은 형수 자리 차지하고 누워 주무시고 가십니다. 그 정돈되지 못한 단칸의 방에서 작은 아버지께서 주무신 날에는 언제나 빨래와 씨름을 하시는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작은 아버지께서 깔았던 요를 빨으시다가.......
 
언제부턴가는 미리서 골목에 버려진 헌 요를 주어다 놓으셨습니다. 더러운 남의 이부자리를 주워다 놓았다고 야단하지도 못했습니다. 간혹이지만 작은 아버지께서 오신 날에 깔아 드리고, 가시고 나면 버리는 일을 어머니께서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돈이 필요하면 영업중인 아담의 주변에서 얼쩡거리며 소리 몇 번 지르면 차마 작은 아버지라는 말은 못하고 얼마의 돈을 쥐어 주곤 했습니다. 그 돈 받으면 잠시 동안은 찾아 오시지 않았습니다. 작은 아버지는 늘 그렇게 큰 형수와 장조카인 아담의 주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합니다. 장조카의 가슴에는 늘 그 그늘과 책임이 있었습니다. 혹시 일터인 시장의 어느 구석에 걸인이 죽었다는 날에는 가슴이 쿵 내려 앉는다고 합니다. 불이나케 달려가 덮인 거적이라도 발로 밀어 보고, 포장이라도 들춰보고.....  그런 아담의 모습과 가슴을 읽으며 동행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사람은 하와였습니다. 어머니께서 늙으시고, 조카들이 장성하여 조카 며느리들이 생기고, 또 손자들도 생기고, 모두들 싫은 소리만 하게 되었지요. 무엇보다 그런 객정도 젊은 기운으로 부린다더니 작은 아버지 스스로 그놈의 몹쓸 객정을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도 일생의 습관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아담도 없는 하와에게 작은 아버지께서 전화가 왔습니다. 집 근처에 왔으니 좀 나오라는. 하와의 입장은 시어른이시고 늘 보아 온 모습이지만 하와가 직접 감당할 몫은 아니라서 극진히 작은 아버지를 모셔 옵니다. 가난하기는 하와도 매 한가지였고, 설마 시 어른인데 조카 며느리 한테까지 그런 모습을 보이실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작은 아버지는 이미 전작이 있으셨습니다. 그래도 술을 가져 오라고 하셔서 얼른 달려가 가게에서 소주 한 병을 사왔습니다. 아담이 있었으면 장조카의 권리로 술을 드리지 않았거나 어떤 조치든지 취하여 방어해 주었을 것이지만 지극히 평범한 조카며느리와 시작은 아버지의 입장으로 마주 앉은 풍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사가 시작 되었습니다. 아담과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은 바로 위나 두 번째 형님 뻘 되는 작은 아버지가 하와에게 몹쓸 망언은 물론이고 작은 아버지를 모시지 않은 불효 막심한 취급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좁은 방에서 어떻게 모실 수 있느냐고 고정하시라고....... 그런데 순종하여서 모신다는 소리를 안한다고 입에 거큼을 물으시고 역정을 내시더니 자리하고 누우셨습니다.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여기서 살을 것이라는....... 아담은 서울에 있지 않으면 늘 먼 지방에 있습니다. 하와는 결혼 한 날 부터 술에 쩔어 사는 시 작은 아버지 세 분을 보았습니다.
 
한 분은 피를 토했는데 옆에 사람이 없으니 목에서 그 피가 응고되셔서 돌아 가셨고, 또 한 분은 시골에 계셨으니 잘은 모르지만 중풍을 맞아 반신불수가 되셨는데 한 손에는 술병을 들고 절룩 거리며 걸어 오시던 모습을 뵌지가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왔었고...... 악몽이었습니다. 저대로 누워 잠이라도 드시면 어머니가 하시던 이불 빨래보다 더 처참한 꼴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늙은 할머니시지만 하와는 새파랗게 젊은 며느리였으니까요.   
 
하와는 아랫목에 누워 추접을 부리는 작은 아버지를 끌어 냈습니다. 그 풍경 또한 악몽이지요. 하와에게 죄가 있다면 아담을 만난 죄 뿐인데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그래도 아담이 없는 그 가난한 작은 집에서 취한 시 작은 아버지와 함께 밤을 맞을 수는 없었습니다. 더구나 조금 시간이 지나면 어린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이 모습을 보고 혈육이 가르치는 주벽을 배울까봐서 더욱 싫었습니다. 하와에게 악심이 돋습니다. 그리고 그 주정뱅이 작은 아버지를 끌고 2층에서 아래층까지만 간 것이 아닙니다.  아래층에 두고 오면 또 올라올 것이 빤 하였으므로 멱살을 잡고 골목 밖 큰낄까지 끌어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달려서 다른골목으로 들어 갔다가 피해서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그 날 하루 종일 2층 발코니에 숨어서 비틀거리며 골목을 누비시는 시 작은 아버지를 지켜 봅니다. 집집마다 들어가 보시고, 소리 질러서 부르시고...... 하와 집에도 오셨지만 문을 닫고 가만히 있었으니 몇 번 발길질로 문만 차고 나가셔서 옆집으로 가셨습니다. 서울의 단독주택들이 처음 온 사람들도 못 찾을 만큼 동일하게 생겼습니다. 그러니 만취 상태의 작은 아버지는 하와가 문을 열어주지 않고는 찾을 길이 없었으므로 해가 저물도록 골목을 누비며 소리를 지르고 다니셨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로는 아담도 하와에게 면목이 없었는지 작은 아버지에 대하여 자자분한 소식이나 걱정들을 털어 놓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와가 걱정이 되면 작은 아버지  소식을 묻곤 하였지요. 
<다 잘 살어. 그러니까 자네까지 끼어들어서 걱정 안해도 되네. 잊어 부리소.>
 
그러면 하와는 살아 온 세월의 경험으로 작은 아버지의 무탈하심을 짐작하곤 하였습니다. 하와에게까지 처들어 오는 일이 있기 전에는 아담이 송장은 거두어 들여야 발 뻗고 잠을 잔다고 입 버릇 처럼 나불거리곤 하였습니다. 작은 아버지를 시장의 어느 귀퉁이에서라도 만난다거나, 리어카에 박스를 까고 하늘을 지붕 삼아 잠들어 있을 때라든지, 당신 몸도 못 가누면서 누군가를 때려 죽이겠다고 달려들어 두둘겨 맞고 있을 때면 오히려 때린 놈을 잡아 "거지같은 인간 두둘겨 패는 놈이 정상이냐?" 고 오히려 두둘겨 패서 보낸 날이면 늘 그랬습니다. 송장이라도 거두어 땅에 묻어 드려야 잊어버릴 원수라고.  
 
삶의 진창에서 지처가는 쪽은 하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아담도 지처 가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일생을 뼈빠지게 일을 했어도 자식의 대학 등록금을 못 준 후로 하와는 시댁과 연결된 모든 끈을 잘라버립니다. 그런 과정에서 오는 부작용과 소용돌이는 끝이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언제나 시어머니를 불쌍히 여겼던 하와는 시어머니의 돈을 갈취한 파렴치한 인간이 되고....... 그 누명을 밝히겠다고 나섰으니........ 시어머니도 속닥거리는 누군가에 의해서 어머니의 자식들과 살아보겠다고 그 몸부림을 쳤던 하와에게 등을 돌리셨으니........ 그 선택의 결단에서 하와는 급기야 손을 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담으로서도 동생들에 대한 배신감과 어머니의 모자란 판단력 앞에는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아마도 하와가 독심을 먹고 산으로 간 후 같습니다. 하와가 일을 해서 돈을 벌겠다고 산으로 간 후로는 아담도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연결된 소통의 길을 외면하고 살았습니다. 어머니를 저버린..... 엄밀히 말하면 어머니께서 등을 돌리셨는데 작은 아버지를 돌보고자 마음을 쏟는 다는 것은 아담의 성품으로는 허락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토록 고통의 결혼 생활동안 단 1원도 동생들의 임금을 밀리거나 주지 않은 적도 없었고, 백화점 화장실 청소를 해서 돈을 버시는 어머니의 수고에 1원도 신세를 져 본 적도 없었고, 궁금한 적도 없었는데....... 동생들이 저지른 그 많은 짐에 십자가를 져 온 하와가 20년 쯤 된 어느 날 갑자기 도둑년이 되어있었으니........  너희는 너희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살자고....... 하와가 이제는 우리 둘이만 살자고, 제발 우리 둘이만 살자고, 아담을 잡고 (눈물나서 못 쓰것네.)
 
하와가 산으로 가서 소처럼 일을 했습니다. 둘이만 살다 보니 한 2~3년 조용히 살았나 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복을 주시어 그 오랜 세월동안 짓눌리게도 져 온 그토록 많은 빚도 어느정도 갚았고, 가난한 그 방에서 나와 아파트로 이사도 했습니다. 가슴 한 켠으로 아담도 하와도 선한 사람이었으니 어머니가 걸리기도 하지요. 그럴때면 하와가 몸서리를 칩니다. 부모는 팔이 굽는 자식에 눈이 어둡게 되어 있으므로 큰자식이 똥구멍이 갈라지게 가난하고, 맏손자 학비를 난도질 한 자식이 어머니의 다른 자식이라고 알려드렸어도 어머니는 아담과 하와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가난할 때도 어머니는 그러셨는데 지금 이만큼이라도 살은지가 딱 1년인데 이 1년의 만족을 되돌려서 어머니로 인해 아담의 형제들까지 얽히고 섥히며 싸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한 다리 건너 작은 아버지는 더욱 관심 밖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거렁뱅이 작은 아버지가 돌아 가셨다는 소식이 온 것입니다.   
 
시장으로 출근을 하려던 아담이 그대로 작은 아버지께로 갔습니다.
<자네는 가지 말고 있어. 내가 들여다만 보고 금방 올텡께.>
간단하게 생각하고 출타를 하는 눈치엿습니다. 하와의 생각도 복잡해지는 것이 싫었습니다. 더구나 작은 아버지로 인해 그토록 지겨운 결혼생활이 되돌아 올까봐 겁도 났습니다. 18년의 생활을 잘라내는데 겪었던 그 고통을 다시는 복습하고 싶지도 않고, 복습해서도 안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하와는 옷도 갖추지 않고 시장에 가는 잠바차림의 아담에게 다시 확인을 합니다.
<어머니를 봐도, 동생들을 봐도 당신 마음이 흔들리면 안되. 우리 아들 제대해서 복학한다. 아들 가슴에 또 못 박으면 당신은 아비도 아니야. 알았지?!>
<걱정 말어. 금방 온당께.>
 
그런데 하와는 금방 오지 않았습니다. 불길함으로 기억되는 하와의 혈관이 팽창되기 시작했습니다. 또 제 식구들 챙기느라고 알아주지도 않는 총대 매고자빠져서 전화도 안온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와는 아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 안 올거야?>
<아니, 성당에서 병원비도 내 주고 헌다고 하니까 기다려봐.>
전화를 끊었습니다. 왠 성당? 어머니도 동서를 따라 개신교회를 다닌다고 천주교회는 절대로 안다니고, 송장이 썩어도 천주교는 안다닌다고 가셨는데 왠 성당? 하와는 머리를 돌려 수 없이 계산을 해 보아도 뭔가 맞아 떨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한가지! 걸인! 작은 아버지는 거렁뱅이였으니까 시설에 들어가셨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 아담더러 어느 시설인지 알아보고 전화를 하라고 했습니다. 한참 후에 아담의 전화가 왔습니다.
 
<시설이 아니고 성당이라는디?>
아담은 하와랑 결혼하려고 세례를 했고, 일생동안 성당에서 주일을 지켜야 한다는 결혼조건을 지킬 요량으로 성당에 다니는 아담이 장례 예식 돌아가는 내막을 알 턱이 없었습니다. 하와는 다시 작은 아버지께서 정식으로 세례를 받았는지 알아보고, 성당의 장례 절차를 조목조목 짚어가며 알아보고 전화 하라고 알렸습니다. 
 
작은 아버지는 요셉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셨다.
세례 받은지는 3년 쯤 되었고,
1~2년은 성당에 다니면서 봉사도 하셨다가 술주정도 하셨다가 뒤죽박죽인 신앙생활을 하셨다.
그러다가 돌아가시기 전 1년은 술도 안드시고 돈으로 내는 회비는 내지 않았어도 진짜로 열심히 성당에 오시고 거칠고 더러운 봉사는 다 하셨다고 한다.  
입원하시기 전에 돈이 없어서 보증이 필요했는데 본당 신부님께서 전액 병원비를 지급하신다는 싸인을 하셔서 입원이 가능했고,
본당의 빈첸시오 회에서 돌아가며 병 수발을 들어 드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도는 끝이 없었고,
입을 여는 사람들은 다 안가도 요셉씨 연도는 꼭 가야한다고 마음을 먹으셨다는......
그런 상황을 아담으로 부터 생중계로 듣고 하와는 황당한 마음이 들었다.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 성당을 찾고, 신부님이 누구신지, 경륜이 긴지 짧으신지도 알아보고, 두루 주변의 관계들을 나름 탐문하여 알아보고........ 
다시 아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본당에서는 병원비를 일부 도움은 받을 수 있으나 책임지지 않으니까 자세히 알아보고 세례까지 하시고 돌아가신 작은 아버지께서 선택하신 성당이니까 신부님께 짐을 지우지 말고 당신이 감당해 보도록 해.>
아담이 대답하였습니다.
<아니야. 작은 아버지 수중에서 통장이 나왔는데 그 돈으로 병원비는 얼추 될 것 같고, 살으시던 방세 보증금이 조금 있는데 그동안 신세를 지고 살았을 본당 빈첸시오회에 드렸네. 장례비용은 고모부님과 상의해서 할 것이네.>
 
하와는 날이 밝은 오후에 감기 기운이 좀 나아지는 대로 작은 아버지가 모셔진 병원으로 갔습니다. 찾아 오는 이 하나 없을 빈소가 얼마나 처량할지도 짐작이 되었고, 거렁뱅이 작은 아버지께서 가시는 길에 서로 미루다가 영정마저 거지꼴 일 것이라는 생각도 하며 갔습니다. 그런데 작은 아버지의 빈소에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연도소리 우렁찬데다가 영정은 꽃으로 가득이었습니다. 누가 하였든지 여느 어른들에 비하여도 초라해 보이지는 않았고 결코 외로워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내심 안심은 되었고, 3년이란 세월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셨을 교우들과 신부님 수녀님께 가족으로서 조금이지만 가시는 길이라도 함께 한다는 성의 표현은 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와는 그 자리에 오래있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래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형에게 붙어서 벌어 먹었고, 가족을 일구었고, 부모도 태워주지 못한 밥벌이를 형이 태워주었는데 결론에는 형을 어머니 돈 긁어서 쓴 놈을 만들었고, 형수를 독종으로 만들어버린 시동생들이 그 자리에 있었으니....... 함께 앉아 있어 보아야 피가 바르게 흐르겠는가?! 하와의 생각으로는 어머니 등 쳐 본 놈들이 형도 어머니 등 쳐서 살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제 뱃 속 채우자고 앞뒤 가리지 않고 가게 공금 써 본 놈들이 형수도 가게 돈 갉아서 살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고 위로를 해 보아도 앉아서 그 틈에 끼어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담의 가게에서 하와가 융통한 돈으로 장사를 하고, 아담이 영업활동하여 물어온 상품들을 팔아서 벌어먹고 사는 놈들이 아담을 도둑놈을 만들고, 하와를 독종으로 만들고.......
 
어른들의 만류에도 하와는 단호하게 거절하고 나왔습니다. 보나마나 어른들은 한마디라도 지천을 할 것이고, 결국에는 대답이라도 하다가 보면 싸움판 밖에 더 되겠는가?! 아담이 있으니 원래 잘 한 장남이었으니 잘 할 것을 믿고 돌아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장례미사가 있는 성당으로 갔습니다. 저 신부님께서 거렁뱅이 우리 작은 아버지에게 세례를 주었고, 3년동안이나 지켜봐 주셨고, 죽음이라는 마지막 길에 입원까지 책임져 주셨다는! 사실은 신부님의 강론을 듣고 싶었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작은 아버지의 신앙의 모습들을 신부님이라면 말씀해 주실 것 같은 예감! 그런데 아침 출근을 해보지 않은 관계로 그 시간에 그렇게 길이 막히는지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듣고 싶었던 신부님의 강론은 듣지 못했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화장을 하러 가는 길에 아담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따라오지 마라는 언질을 했습니다. 돌아 오는 길에 그냥 자손도 없으니 아무데나 뿌려버리고 오겠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하와는 그 암흑의 관계 안에 섞여 화장장까지 따라가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작은 아버지도 마지막 가실 길을 가시고, 교우들도 일가친척들도 다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뒷모습은 거렁뱅이가 죽은 것이 아니질 않는가?! 저게 어떻게 그토록 개차반인 사람의 죽음길이란 말인가? 저렇게 멋지게 가시면 안되는 것이질 않은가? 거적대기에 말려서 그냥 버려질 그런 사람의 모습이 아니질 않은가? 연도소리 우렁차고, 버스에는 교우들이 가득이고, 뒤따르는 차량은 또 몇 대란 말인가?! 거기다가 성당 마당에서 수녀님이랑 신부님이랑 교우들이 손을 흔들어 주시질 않은가?! 작은 아버지께서 벗들과 함께 성당 마당을 떠나시고 하와는 홀로 신부님께 인사를 드렸다. 
 
 
<신부님이시니까 솔직히 말씀드릴께요. 저는 장조카 며느리이고요. 시댁을 끊어버린지 3~4년 되었구요. 세례하신지도 성당에 다닌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본당교우들과 신부님 수녀님께 감사를 전하구요. 솔직한 제 지금의 심정은 더럽습니다. 하느님 더럽습니다 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세월은 아무 소용이 없고 지난 3년의 작은 아버지 행적을 모르고 살은 저희를 죄인을 만드신 하느님께 제 마음이 더럽습니다. 라고 외칩니다. 술주정뱅이에 개차반으로 살았어도 마지막 부르심에는 이토록 큰 은총을 받으시는데 죽어라고 열심히 살은 사람은 죄인 되었으니 신부님 꼴찌가 일찌 되고야 말았습니다. 주님께서 저희 앞에 꼴찌를 일찌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신부님 부끄럽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지난 일은 다 요셉씨랑 같이 보내버리고 지금 부터가 중요하다는 말씀을 강조 하셨습니다. 그 말씀의 뜻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반모임을 하기로 되어 있으니 바빴습니다. 죽은 자는 가셨으니 끝이 났고 살아있는 자의 모임 준비를 하느라고 바빴습니다. 그런데 문득 돌아 오는 길에 아무데나 뿌려버리고 오겠다던 아담의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어머니도 천주교는 안다닌다고 악다구니를 쓰셨는데 거렁뱅이 작은 아버지께서 천주교 신자로 죽으신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집에 들어 온 장조카 며느리의 신앙을 함께 해 주신 것이 아닌가?! 얼마나 세례했다고 자랑 하고 싶으셨을까?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얼마나 기다리셨을까? 눈물이 앞을 가려 하와가 일손을 멈추었다. 그리고 아담에게 전화를 했다.
<고모님들 한테 여쭈어 봐요. 낯선 산천에 뿌리면 아무래도 인생도 외로우셨는데 죽어서까지 외로우실 것 같아. 그러니까 근자에 내가 시골에 갈 일이 있으니 작은 아버지를 아버님이랑 할아버님이랑 돌아가신 어른들 가까이 뿌려드리고 싶다고 말 해 봐. 그래야 할 것 같아. 작은 아버지는 장조카인 우리에게 오시고 싶으신 것 같아. 그러니까 가능하면 아무데나 뿌리지 말자고 해 내가 반 모임 끝나면 성당으로 모시러 갈께.>
 
그리고 혼자 앉아 얼마나 울어야 했다.
<주님, 열심히 살면 뭘 합니까? 술도 맘껏 마시고, 사람들도 괴롭히고, 놀고 싶은 대로 제 멋 대로 놀다가 죽을 때 한 3년 불러 주시면 이렇게 큰 은총의 길을 갈 수 있는데 제 고생과 제 희생과 제 눈물은 다 죄가 되었습니까? 말씀 해 보십시오. 이제부터 저도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됩니까? 주님께서는 사랑이시니까 제가 어떻게 살든지 작은 아버지처럼 불러 주실 거잖아요?! 저는 거렁뱅이 작은 아버지를 버린 죄인입니까? (또 눈물나서 못 쓰것네. )
 
약속 된 반모임을 정신없이 마치고 아담과 약속한 성당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작은 상자의 한 줌 흙으로 돌아오신 작은 아버지를 차에 태우고 안전벨트까지 채워 드렸습니다. 아직 뒷 정리가 남은 아담이랑 일가친척들을 뒤로하고 혼자서 돌아왔습니다. 그 길이 또 하와 혼자서 감당하는 울음 바다였습니다. 살아서도 못 태워드린........   
한 쪽 구석에 주차를 하고 성수를 뿌리고 간단한 기도를 했습니다.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촛불을 켜고 연도를 시작 했습니다. 연도가 지속 될리가 없었습니다. 울다가 연도를 이어가기를 다 하지 못하는데 정리를 마친 아담이 전화를 했습니다.
< 다 가고 인제 부터는 고모부가 집안의 제일 어른이 되었는디 우리 집에 들렸다 가신다는데 자네가 싫다고 하면 그냥 가시라고 할라네. 자네한테 물어 보라고 해서 전화했네.>
 
그렇게 해서 고모님과 고모부님이 오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살아 오면서 장자로서의 책임만 있었을 뿐, 단 한 번도 어른들을 만나 누구를 씹어 본 적도 없었고, 고자질 해 본 적도 없었고, 자신들을 변명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고모님과 고모부님은 많은 것을 알고, 담고, 오신 것 같았습니다. 옛 할머니께서 늦게까지 출산을 하셔서 두 살 터울인 고모와 조카 사이가 아니던가?! 그래도 어른은 어른이시니까 말씀을 꺼내 놓으셨습니다.
1986년9월7일에 혼인성사를 받은 후로 시어른 누구께 라도 자초지종을 차분차분 이야기 해 본 것도 처음 있는 일입니다.
 
역시 어머님의 돈을 아담이 다 가져다 쓰고 동생들은 한 푼도 안 준 형에 대하여 짚으셨고, 하와는 독살 스럽고 동서들과도 맨 날 싸움만 하고 누구도 발 붙이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와는 삶에서 몇가지 신조가 있는데 그 중에 시동생들은 물어 뜯고 싸워도 동서들과는 절대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 이유는 친정 엄마 아버지께서 귀한 막내 딸로 키워 주셨는데 이토록 험한 집에 와서 이 꼴을 겪고 살아보니 남의 집에서 귀하게 살았을 동서들에게는 어떠한 경우라도 험한 꼴 보이지 않는다. 그 다짐을 딱 한 번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지켜왔습니다.
<누가 나를, 아니 누가 우리 부부를 이토록 난도질 하는가?!>
그래도 모처럼 어른들이 오셔서 조목조목 묻는 질문에 아담도 하와도 솔직하게 다 실토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돌아 가셨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돌아가시고 부부는 묘한 기쁨에 눈물을 흐르게 되었습니다. 작은 아버지께서 막힌 심정을 뚫어주시질 않는가?! 작은 아버지가 아니면 고모님과 고모부님은 아니 모든 시댁 식구들은 장조카와 장조카 며느리를 계속 독살스럽게 보지 않겠는가?! 이제 제일 큰 어른이 아셨으니...... 전부를 믿어주시지 않고 10%만 믿어 주신다고 해도 100%를 나쁘게 본 것 보다는 숨통이 트이질 않겠는가?! 그러니 거렁뱅이 작은 아버지를 장조카 며느리인 하와가 모시고 오심으로 해서 벌어진 아버지 하느님의 기술이지 않은가?! 아담과 하와가 뚫으려고 해도 절대로 뚫어지지 않았던, 오히려 뚫으려고 할 수록 더욱 얽혀지는 가시길을 이끄심의 능력으로 열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거렁뱅이 작은 아버지는 당신의 죽음 길을 성당에서 봉사하시며 수 없이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아버지 하느님, 저를 장조카에게 보내 주십시오.>
<주님, 저는 장조카한테 가고 싶습니다.>
<성령께서는 제 영혼이라도 장조카에게 안겨주십시오.>
그 기도가 닫힌 하와의 마음을 열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신부님의 입으로 지난 것은 잊으시고 지금부터 입니다.라고 하신! 이미 죽으셨는데 지금 부터 뭘 하라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랐습니다. 그 응답 또한 성령께서 인도 하셨습니다.
 
아담이 말했습니다.
<화장 할라고 기다리는디 나도 생각을 못한 전화를 자네가 해 주어서 진짜 고마웠네. 자네가 고모들 한테 물어 보라고 해서 말을 하니까 고모님들도 다 좋아허데. 모셔 갈 사람이 모시고 당신이 가시고 싶은데로 가시는 것 같다고 다들 반기시는디 진짜로 자네한테 고맙데. 작은 아버지를 할아버지 할머니 계시는 곁에다 뿌려드릴 생각을 전혀 못했는디 진짜 고맙데. 가루가 되셨지만 자네가  성당에 와서 작은 아버지를 모시고 가는 모습이 진짜 고맙데. 장하데.>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요셉이라는 이름으로 거듭 난 한 거렁뱅이 영혼의 기도를 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께서 들어 주신 것입니다.
 
날이 밝는 대로 당신이 그토록 열심히 다니신 성당에 들려 가루라도 마지막 미사에 참례하고 고향으로 갈 것입니다.  내일이 삼우미사입니다. 당신의 삼우 미사를 당신이 가루가 되서 참례하게 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진실로 주님을 믿고 기도하셨을 거렁뱅이 영혼을 지극히 사랑하신 아버지의 뜻일 것입니다.
 
죄송하고 면목은 없지만 수원교구 수진동 성당의 김동진 다니엘 신부님과 수녀님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더블어 빈첸시오 회원님들과 연령회 회원님들과 정말로 끝도 없이 연도에 참례해 주신 교우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제가 비록 수진동 성당의 교우는 아니지만 제가 머물고 있는 모든 삶과 생활과 봉사와 기도를 통해 열심히 본받아 살아가겠습니다. 또한 제 시어머니를 구할 방법도 강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를 꼬드긴 간교함 앞에 간단하게 굴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맏이가 갖고 살아가는 큰 책임이라는 몫은 결코 식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거렁뱅이 작은 아버지처럼 어머니께도 주님의 그런 사랑을 주시라고 기도 하겠습니다. 오늘은 저희 작은 아버지의 길이오나 내일은 우리의 길이며 제 길이오니 그 길에 깊은 사랑이 이루어 지도록 기도 열심히 할 것입니다.  송장이라도 거두어 땅에 묻어 드려야 잊어버린다던 장조카의 입버릇 같은 책임이 이루어 졌습니다.
 
참! 아담의 기억으로......
세례를 받으신 후로 술을 드시지 않고 아담을 찾아오셨더랍니다. 그래서 전어회를 사 드리고 돈을 십만원을 드렸더니 그렇게 좋아하셨더랍니다. 술 드셨을 때는 돈을 드리면 쥐락펴락 하시며 개차반 같은 객정을 부리셨는데 그 날은 조카가 돈 주는가 하시며 그렇게 좋아하시더니 그 후로 시장에서 보이지 않은 것 같답니다. 일가친척들의 잔치에서나 보이면 작은 용돈 쥐어 드렸을 뿐 더 이상 시장 바닥의 진창에서 취한 거렁뱅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답니다. 성당에 맛들여서 아버지의 은총과 신부님의 배려 깊으신 사랑 받으러 다니셨으니 시장 바닥에서 구르실 일이 없으셨나 보다고........ 작은 아버지가 회개를 하시고 요셉이 되셨는데 일가친척들은 개차반 거렁뱅이로만 알고 있었으니 마지막이 외로우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장조카의 가슴이 아프지요. 다행히 마지막 길이라도 우리 부부가 이렇게 모실 수 있으니...... 주님께서 저희 부부를 더 이상은 죄인으로 뽑지 않으시고 택하여 주신 은총이라고 믿습니다. 사무치도록 감사할 뿐입니다.
 
 
† 기적입니다.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은 언제나 진실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진리 그 자체이십니다. 아멘
 
-주님, 저희의 주님, 온 땅에 주님의 이름. 이 얼마나 존엄하나이까?! 시편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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