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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째서 모고해가 이렇게 많을까? / 고해 사제에 대한 신뢰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10 조회수793 추천수2 반대(0) 신고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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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어째서 모고해가 이렇게 많을까?

어째서 모고해가 이렇게 많을까?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중요한 원인은 죄를 범한 후에 부끄러워서 바로 고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부끄러움 때문에 많은 사람이 마귀에게 입을 틀어 막혀 어떤 죄는 그 범행 실황과 횟수를 발표하지 못하고, 또는 똑똑하게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귀는 누구에게든지 죄를 저지르도록 부추길 때는 그 사람 옆에 와서 속삭이기를, “이 죄를 범한다 해도 너에게 무슨 해가 있겠는가? 하느님은 무한히 인자하시니까 구태여 너를 벌하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 너는 고해하면 되지 않느냐? 하느님은 몇 번이고 사해주시지 않느냐? 젊은 때는 이런 죄를 범하기 쉬운 것이다. 이 다음에 나이 들어서 보속을 많이 하면 될 것 아니냐?” 라고 오늘도 내일도 되풀이 한다. 사람들은 결국 마귀의 꾐에 빠져 죄를 범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한 번 범한 죄는 거듭 범하기가 쉽다. 이미 한 번 범한 죄이니, 두 번 범하나 세 번 범하나 고해하면 마찬가지 아니냐? 이러한 마귀의 속삭임과 마음의 느슨함이 그 사람의 지혜를 흐리게 하고, 자유의지를 약하게 만들어 버린다.
한 번, 두 번 죄를 범한 뒤에 양심의 가책을 받아 고해하려고 할 때 마귀의 전술은 또 달라진다. “어떻게 네가 이 죄를 남에게 말할 수 있나? 고해 사제가 너를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나무랄 것이다. 너를 나쁘게 여길 것이다. 좀처럼 용서도 안해줄 것이다.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차차 기회를 봐서 고해하면 되지 않느냐? 아직 바쁘지 않다. 다음에 얼마든지 기회가 있을 것이 아니냐?” 마귀는 이렇게 속삭인다.
큰 죄를 한 번 범한 사람은 흔히 이 속삭임에 속아 입을 다물게 되고, 신부 앞에 가서 바로 고백할 용기를 내지 못하여 마침내 모고해를 하게 된다.

마귀란 놈이 이 술책을 쓰는 것을 피렌체 대주교 성 안토니오에게 솔직하게 고백했다. 어느 날 성인이 고해소 옆에 숨은 마귀를 보시고 꾸짖으며 다음과 같은 문답을 했다.
“이놈, 너 거기서 무엇을 하느냐?”
“네, 대답을 하지요.”
“무슨 대답이냐? 똑똑히 말해보아라. 바로 말하지 않으면 단단히 혼을 내줄 테다.”
죄를 범할 때 사람들에게서 빼앗은 공포심과 수치심을 지금 돌려주려고 여기 서 있습니다.”

성 돈 보스코도 이런 깜찍한 짓을 하는 마귀를 보았다.
어느 날 성인이 토리노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서 고해를 받고 있었다. 고해하려는 사람들이 매우 많은데 특히 젊은이들이 많았다. 순서대로 들어와 고해를 하는데 한 젊은이가 들어와 고해대에 꿇어 절반쯤 고백하다가 갑자기 입을 닫아버린다. 돈 보스코 성인은 하느님의 특별한 성총의 빛으로 자기 제자들의 마음속까지 들여다보는 성인인지라 친절히 말하기를,
“계속하시오. 또 다른 고해거리는 없소?”
“예, 없습니다. 이뿐입니다.”
“이 사람아, 그대는 왜 모고해를 해서 마귀를 기쁘게 하고 우리 주
예수님을 울리려 하는가?”
“신부님, 정말입니다. 별로 다른 죄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계시로써 이 불쌍한 젊은이가 어떤 위험에 놓여 있는가를 잘 아시는 성인은 쓸데없는 문답을 그치고 나서, “자, 그대 어깨 뒤에 무엇이 있는가 보라!” 하고 말하였다.
그 젊은이는 신부의 말씀대로 돌아다보고는 갑자기 쓰러지는 듯한 소리를 지르며 성인의 목을 끌어안고, “예, 예, 신부님! 저, 저, 또 고해할 죄가 있습니다.” 하고 지금까지 말할 용기를 잃었던 그 죄를 고해했다.
성당 안에서 그 젊은이의 고함을 들었던 친구들이 그가 성당을 나올 때 그를 둘러싸고 이유를 물었다. 젊은이는 아직도 무서움에서 덜 풀려 벌벌 떨면서 미소를 짓고 말하기를, “아니, 참으로 큰일 날 뻔했다. 최후로 고해할 것이 한 가지 꼭 있었는데 도저히 고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만 말문이 콱 막혀버렸지. 신부님이 다른 고해할 것이 없느냐고 물으시기에 없다고 했다. 그러자 신부님이 네 뒤를 돌아다보라 하시기에 돌아다보았더니… 아이구 무서워, 눈동자는 타는 불같고, 원숭이처럼 생긴 마귀가 기다란 발톱으로 나를 움켜잡으려고 하지 않겠어….” 하고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겨우 말을 마친다.
물론 돈 보스코는 성인이시다. 고해 사제가 성인이신 것은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다. 모든 고해 사제가 이 돈 보스코와 같이 다 성인은 아닐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극히 거룩하시고 모든 것을 다 아시며 또한 한없이 인자하시어 항상 죄를 용서해주시는 하느님이시다. 그의 대리자인 고해 사제도 예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신다. 그러면 우리는 어째서 그를 신뢰하지 않고 바르게 고해할 것을 꺼리는가? 어째서 우리는 마귀의 꾐은 달게 받고, 인자하신 하느님에게는 부끄러움과 무서움 때문에 거짓말을 할 것인가?

마귀는 항상 이러한 수단을 쓴다. 마치 승냥이가 양을 잡아먹으려면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먼저 양의 목을 졸라매는 것과 같이 사람의 영혼을 그 방법으로 잡는다. 죄를 숨겨 말을 못하도록 그 사람의 목을 졸라매어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한번 마귀에게 속은 사람은 몇 번이고 그 올가미에 걸리게 된다. 참으로 이런 사람이 많다. 모고해를 하기 시작하는 사람은 매우 불행한 지경에 빠진다. 6계(간음하지 마라)를 범하는 사람들이 흔히 이러한 구렁텅이에 빠지기 쉽다. 신덕의 도리를 의심한다든가, 남을 욕했다든가, 원수를 갚았다든가 하는 죄는 고해하기가 쉽지마는, 사음(邪淫)의 죄를 고해하려고 할 때는 그만 부끄러워져서 죄를 둘러대서 범행 사실을 바르게 말하지 않거나, 여러 번 범한 횟수를 바로 대지 않아 모고해를 하기 시작한다.
그 다음, 또 그 다음 계속해서 모고해를 거듭하게 된다. 이와 같이 몇 해를 계속할 뿐 아니라 모고해를 한 다음에는 모령성체가 저절로 따라다니게 된다. 소년시절에 범한 어떤 대죄를 숨겨, 늙어 죽을 때까지 모고해를 계속하다가 한 번도 바른 고해를 못한 채 죽은 사람도 있다. 특히 젊은 남녀에게 이 '부끄러움의 약점'이 대단히 강하다.

성 레오나르도는 세 번이나 임종할 듯하면서도 그 부끄러움 때문에 모고해한 사람을 보았다고 말했으며, 성 알퐁소도 교리를 가르칠 때나 강론할 때, 종종 죄를 감추게 하는 부끄러움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기도 하고, 모고해 때문에 생기는 해독을 명시하려고 힘썼다. 왜 이 성인이 이 문제에 그렇게 주의를 기울였느냐 하면 어디서든지 이런 나쁜 습관이 생기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어떤 소녀가 7살 때 정절을 더럽힌 죄를 범했다가 너무나 부끄러워서 첫 고해 때부터 계속해서 그 죄를 아뢰지 못하고 중병에 걸려 고해 사제를 청하여 임종의 모든 성사를 잘 받고 죽었다.
그 어머니와 형제자매들과 친구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다가도  평소에 열심하고 착하게 살았으니 영혼을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장례를 지냈다. 사흘만에 신부가 그 영혼을 위하여 미사를 지내려고 제대로 올라가려 할 때 누군가가 제의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갑자기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기를, “신부님! 저를 위해 미사를 지내지 마십시오. 저는 지옥에 떨어져 있습니다. 7살 때 지은 죄를 고해하지 못하고 죽는 순간까지 모고해를 했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져 있습니다.” 라고 했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13살 먹은 어떤 소녀가 부활주일에 다른 친구들과 함께 영성체 난간에 꿇어 막 성체를 받아 삼키고 나서 별안간 경련을 일으켜 쓰러졌다. 깜짝 놀란 사람들은 소녀를 안고 가까운 집으로 데리고 갔다. 미사가 끝나고 주임신부가 그 소녀에게 갔더니 그녀는 미친 듯이 중얼대며 몸을 비틀고 돌아다니다가 쓰러진다. 신부는 그 아이 이름을 부르며 말하기를, “정신을 차려라. 예수님께 단단히 맡겨라. 금방 성체를 영한 그 예수님을 신뢰하라.” 고 천천히 타일렀다.
신부의 말을 듣고 그 아이는 눈을 두리번 거리며 무서워하는 기색으로 소리지르기를, “예수님! 저는 모령성체를 했습니다. 고해할 때 숨긴 죄 때문에 모령성체를 했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러더니 또 미치광이처럼 돌아다니다가 얼마 후에, 거기 모인 여러 사람들의 커다란 충격과 공포 속에서 죽고 말았다.

여러분은 이러한 예를 보아도 모고해가 얼마나 무섭고 흔히 있을 수 있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고해할 때는 죄를 바로 고할 것을 힘써야 한다. 조금도 무서워할 것이 없고, 조금도 부끄러워할 일도 없다. 예수께서는 잘만 고해하면 무슨 죄든지, 몇 번을 범했든지 모두 용서해주신다. 고해 사제는 혹독한 사람이 아니요, 정이 깊은 아버지의 마음씨를 지녔다. 그래서 고해할 때 들은 죄를 즉시 잊어버린다. 천주교가 시작된 후로 오늘까지 고해 때 들은 죄를 다른 사람에게 드러낸 일이 한 번도 없었고, 이것을 다른 방도로 이용한 일도 없었다. 그러니 무서워할 것이 무엇이냐? 어떤 죄든, 몇 백 번을 범했든, 항상 바로 고해만 하면 의심 없이 용서받는다.



고해 사제에 대한 신뢰

고해 사제에 대한 신뢰는 부모에 대한 아들의 신뢰와 같아야 한다. 쓸데 없는 걱정과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영혼에 대한 사정이면 무엇이든지 숨기지 말고 모든 것을 그에게 털어놓아야 한다. 마치 아이들이 저들을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감추지 않고 솔직히 말해버리듯이....
모든 것이라고 하는 것은 죄와 결점과 나쁜 습관과 악으로 기울어지기 쉬운 경향과 과거와 현재의 양심에 가책되는 일 등을 통틀어 말하는 것이다.

성 이냐시오가 말씀하신 바에 따르면 마귀는 경솔한 영혼에 대해 마치 처녀를 유혹하려는 방탕한 청년과 같은 태도를 갖는다고 했다. 이런 고약한 청년은 자기가 말한 것이나 취한 행동을 처녀가 부모에게 말하는 것을 무서워한다. 마찬가지로 마귀란 놈도 고해자가 고해 사제에게 자신의 올가미와 나쁜 꾐을 고하는 것을 무서워한다. 사실 마귀가 여기서 무서워할 이유가 있다. 고해 때 그것을 다 털어놓으면 그놈이 꾀는 올가미는 쓸데없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귀는 사람에게 고해 사제에 대한 신뢰심을 적게 가지게 하든지, 아주 가지지 못하도록 그 영혼 속에 고해 사제를 의심하고, 무서워하고, 믿지 않는 생각을 집어넣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용기를 내서 우리 영혼의 아버지인 고해 사제에게 이 고약한 유감까지 다 말해야 한다.

우리는 이것저것 다 말하여 고해 사제를 귀찮게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영혼에 대한 사정이면 어떤 것이든지 솔직히 말하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고해 사제에 대한 신뢰에는 제한이 없다. 다른 사람이 욕을 하든지, 고해 사제에 대한 존경에 일그러짐이 있다 하더라도 관계할 필요가 없다. 도리어 자기의 영혼 사정을 바로 말하기를 부끄러워하고 무서워해서 고해를 잘 하지 않는 사람이나 드물게 하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 불행을 부른다. 그런 사람은 마귀의 유감에 지는 것이다.

혹시 어떤 사람은 자기 영혼 사정의 전부를 알아내어 고해 사제에게 모두 설명하려고 했던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 걱정하고 괴로워하는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쓸데없는 걱정이요, 공연한 괴로움이다. 그런 걱정은 도리어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생각하고 설명했으면 그만이고,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길 일이다. 그리고 우리 영혼의 지도자요 아버지인 고해 사제도 우리를 도와줄 것이요, 우리가 설명하려 해도 잘 안되는 것을 알아서 스스로 이해하기로 힘을 쓰며, 우리에게 알맞게 물어보아서라도 우리가 고해를 잘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고해 사제의 질문을 귀찮게 여기는 사람은 마치 자기 병을 옳게 고쳐주려고 이것저것 물어보는 의사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것과 같다. 그런 사람이 제 병을 고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말할 점은 고해할 때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말 것이며,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말하는 방법을 어렵게 한다든지, 솔직히 말하기에 너무 덤빈다든지,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않나 하고 무서워서 이랬다 저랬다 한다든지, 해석하기에 애매하고 어려운 말을 한다든지, 앞서 말한 것을 부인하는 것처럼 말한다든지 하여 고해 사제로 하여금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도록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고해할 때 자기 사정을 분명히 또한 솔직하게 말하게 되면 자신에게 불명예스럽지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자신의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는 정직함과 단순함이 고해 사제로 하여금 그 고해자에 대해 마음을 기울이게 한다. 도리어 둘러서 말하거나 거짓을 말하면 나쁜 결과가 생기게 된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성 돈 보스코에게 고해하러 왔다. 그 사람은 지나치게 마음이 여린 까닭에 자기 죄를 고해한다기보다 그것을 변명하기 일쑤였다. 고해자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성인은 그의 말을 듣고 있다가 사이사이에 말을 가로막고 친절하게 물었다.
"실례지만 당신은 죄를 변명하러 왔습니까? 고해하러 왔습니까?"
"아, 신부님! 물론 고해하러 왔지요."
"그러면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고 나는 이러 이렇게 했습니다, 이러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하고 말하세요."
그래서 성인은 여러 가지 죄명을 들어주면서 말하기를,
"내가 말한 죄가 당신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거든 용서하시오. 그러나 나는 당신이 모고해하여 지옥에 떨어지도록 버려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송사(訟事)하는 사람을 하느님께서 송사하시고, 자기가 자기를 변명하는 사람을 하느님께서 송사하신다'는 속담을 잘 생각해보시오" 라고 타일렀다.
이 소심한 사람은 낭패했다고 생각하고 성인이 묻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죄를 모두 바로 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을 듯 매우 즐거워하면서 성인의 손을 잡고 친구하며 자기를 독성죄에서 구해주신 그 은공을 몇 번이나 감사해 마지 않았다.
그렇지만 고해 사제가 다 저 성인과 같이 고해자의 머리와 마음 속을 들여다볼 수가 없으므로 고해자는 고해 사제를 속이지 말고, 모든 사정을 잘 알도록 솔직하게, 거짓 없고 변명이나 둘러 말함이 없이 항상 바르게 고해야만 고해 사제가 잘 판단하여 용서할 수 있다.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에 대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날 교황은 한 교도소를 방문하셨다. 교도소를 한 바퀴 돌고 나서 죄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무슨 일로 여기 들어오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죄수들은 거의 모두 "아무 일도 아니었습니다. 교황님, 변변치 않은 죄 때문이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마지막 한 사람은 울면서 "아 교황님! 저는 불행한 인간이옵니다. 큰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여기에 와서 벌을 받게 된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라며 참으로 뉘우치고 겸손한 마음으로 대답했다.
교황은 간수에게 말하기를 "이 대죄인을 죄가 별로 없다고 하는 이렇게 많은 선량한 사람들과 함께 두어서는 안되겠으니 그를 여기서 내쫓아 자기 집으로 돌려보내시오."라고 하셨다.
솔직한 사람에게는 언제든지 그만한 보속이 오는 법이다.

또 한 가지는, 고해는 간단명료해야 한다. 가장 큰 죄로부터 시작하여 분명히 그리고 작은 죄까지 전부 말하는 것이 더욱 좋다. 고해하는 시간이 길었다고 고해가 잘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아주 짧은 고해 중에 매우 좋은 고해가 있을 수 있는 반면에 아주 시간이 긴 고해 중에도 대단히 변변치 않은 고해가 있을 수 있다. 쓸데없는 잡담이 없는 고해는 언제든지 짧고, 필요 없는 무익한 말이 섞이는 고해는 항상 너무 길다고 성인들이 말씀하신다.

( 영혼의 聖藥 / 가톨릭출판사 )




[오늘의 성경]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 (창세 28,15)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루카 6,22-23)

내 영혼아, 어찌하여 녹아 내리며 어찌하여 내 안에서 신음하느냐? 하느님께 바라라. 나 그분을 다시 찬송하게 되리라, 나의 구원, 나의 하느님을. (시편 42,12)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루카 21,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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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성인의 통공 안에 있는 가족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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