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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막히고 닫힌 것을 소통해주시는 분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08 조회수462 추천수5 반대(0) 신고
 
 
 
 

막히고 닫힌 것을 소통해주시는 분 - 윤경재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마르 29-39)



 어릴 적에 감기몸살이 걸려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면 할머님께서 주름진 손으로 제 이마를 짚으시며 끌탕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얼른 찬물을 한 대야 떠다가 물수건을 이마에 대주셨습니다. 그러면 열이 조금 떨어지고 곤한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그때까지 지켜보고 계시다가 머리맡에 놓아둔 한약 한 사발을 마시라고 주셨습니다. 눈이 찡그려질 정도로 썼지만, 눈깔사탕 하나를 덤으로 얻어먹는 맛에 꾹 참고 들이켰습니다. 그러고 하루나 이틀 정도면 거뜬히 회복되었죠. 그때 느꼈던 할머님 손길이 새삼 그리워집니다. 제가 장손자여서인지 유독 저를 아껴주셨습니다.


 사람은 머리가 서늘하고 발이 따뜻해야 건강하다고 합니다. 이와 반대가 되면 건강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병증을 상열하한(上熱下寒)증이라 부릅니다. 이 병증이 급성병일 때는 몸이 불처럼 끓어오릅니다. 만성병일 때는 이유 없이 피곤하고 가슴이 답답해지며 공연히 화가 치솟고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건강검진에서 딱히 원인을 찾을 수 없이 이런 증상이 나타날 때 이 병을 의심해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병증 초기엔 잠잘 때 두꺼운 면양말을 두 겹 신고 잠자면 처음엔 답답해도 뜻밖에 간단히 치료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열하한 상태가 사회나 자연현상에서 발생하면 매우 혼란스러워지는데  본디 하늘의 불기운이 아래로 내려와 세상을 골고루 덥히고, 이와 반대로 땅의 찬 기운은 더워져 하늘로 올라가 열을 식혀야 정상 순환인데 하늘의 열은 더욱 하늘로 향해 올라가고, 땅의 냉기는 더욱 땅으로 향해 내려가 서로 갈라지는 형상이니 소통이 아예 끊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에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나서 바로 시행하신 표징이 여인을 일으켜 세우신 것입니다. 여인은 음기와 땅의 기운을 상징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께서는 땅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시몬의 장모를 잡아 일으키십니다. 이것은 곧 세상에서 벌어진 상열하한 상태를 일으켜 정상으로 만드셨다는 상징행위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사람들이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라고 합니다. 본문에 병세가 아니라 ‘그녀에 관하여’라고 쓴 것으로 보아 그녀가 처했던 삶 전체를 여쭈었나 봅니다. 아마도 그녀의 병은 급성열병이 아니라 만성병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여인에게서 나는 열병을 흔히 화병이라고 부릅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데 어찌할 수 없어 생기는 병이죠. 요사이도 여성들이 겪는 화병은 간단치 않습니다만, 그 당시에는 더 했을 것입니다. 시댁 식구를 모시거나 관계하면서 겪는 수모, 다른 별에서 온 듯이 전혀 알아주지 않아 못마땅한 남편의 행동거지, 무시하고 대드는 자식들 사이에 끼어 평생 종만도 못한 이류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시몬의 장모는 이제 사위집에 얹혀사니 그 심정이 어떠했을지는 보지 않아도 뻔합니다. 우두머리 기질이 있는 시몬이 아무리 잘 대해주었다 해도 속으로 무척 불편했을 것입니다. 미루어 짐작이 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손 한번 잡아주셔서 그녀를 일으켜 세웁니다. 이에 장모는 자발적으로 시중들었다(diakonei autois)고 표현합니다. 이 용어는 초기 공동체에서 친교라는 의미로 쓰이는 동사입니다. 즉, 그녀의 속에 맺혔던 응어리가 다 풀려 화병이 다 나았다는 말로 해석됩니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그동안 그녀는 속으로 “내가 너희 집 식모이냐?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해?”라고 생각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신이 나서 친교 식탁 공동체에 참여했다는 표현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막히고 끊어진 상태를 소통하고 이어주시는 분이십니다. 병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도 이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이 겪는 갖가지 질병은 사실 기혈 소통만 원활히 이루어지면 쉽게 치료됩니다. 기혈 순환이 잘 되면 처음부터 병에 걸리지도 않습니다. 악령 든 병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의 기운과 마음의 기운 어딘가에 막혀서 이상이 생긴 것입니다.


 실제로 먼발치에서 예수님 얼굴만 뵈어도 모든 질병과 마귀가 물러났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계시는 시공간 자체로 막힌 소통이 뚫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의학에서는 소통하지 않아 생기는 병증을 불인증(不仁症)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때 말하는 仁은 생명력이요, 순환력이요, 소통하는 힘이요, 우주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감수성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이야말로 仁 그 자체라고 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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