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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해석에 대한 단상 2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30 조회수1,109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 제가 올린 성경에 대한 단상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제가 오늘 그냥 개신교 신자랑 천주교 신자랑 서로의 논쟁이었다면 그냥 지나치고 넘어갔을 겁니다. 근데 그게 아니고 이건 서로 천주교 신자입니다. 그래서 제가 좀 생각을 한 겁니다.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이런 상황을 하느님께서 보신다면 하느님의 입장이 얼마나 난처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성경을 저희에게 주신 건 서로 사랑하라고 하는 교훈을 주시기 위해 주셨는데 그런 가르침을 담고 있는 책이 서로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차원에서 저는 한번 객관적으로 이 일을 중립적인 입장에서 제 생각을 피력한 겁니다. 며칠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아랍어를 모릅니다.

 

단지 아랍 속담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속담입니다. 영어 교재에서 이 아랍속담을 봤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좋은 말이다 하고 넘어 갔습니다. 제가 세 번째 이 글을 봤을 때 순간 이거 아랍속담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만약 책에 아랍속담이라고 하는 간단한 멘트가 달려있었다면 쉽게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냥 영어로만 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까지는 생각을 미처 못했습니다. 제가 그날 수업한 학생에게는 이거 아랍속담이다 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저는 이 일을 경험하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신앙생활에 접목을 한번 해봤습니다.  제가 그날 우연히 순간 발견했습니다. 근데 그런 걸 만약 발견하지 못하고 넘어갔다면 저는 그냥 좋은 말이네 하고 그렇게만 생각을 하고 넘어갔을 겁니다. 아마도요. 저는 이 부분을 좀 진지하게 생각해봤습니다. 왜 같은 말인데도 그걸 처음에는 아랍속담이라고 인식을 하지 못했을까 하고 말입니다. 바로 영어로 쓰여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영어니까 영어로만 인식을 했기 때문에 그게 아랍속담이라는 걸 몰랐던 겁니다. 바로 이겁니다.

 

사람은 어떤 고정된 시각에 갇혀 있으면 그 시각에서 탈피하지 못하면 어떤 그 사물의 본질을 볼 수가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결국은 성경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올린 글에서 해석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우리가 해석이라는 말도 일반적인 의미의 해석이라는 그런 의미로 해석한다면 이 또한 오해의 소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한 단어라고 해도 그 한 단어의 정의가 모든 뜻을 다 말해 줄 수는 없습니다. 제가 오늘 올린 글에서 해석이라는 의미는 일반적인 국어사전에 나오는 그런 의미의 정의가 아닙니다. 글자만의 뜻으로 이해를 해야 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문맥적인 의미입니다. 우리가 가령 눈물젖은 빵을 먹어본 적이 있는가? 하는 말에서 정말 이게 눈물이 들어간 빵이란 말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때의 눈물은 그 눈물이라는 의미가 가지고 있는 사전적 의미가 아닙니다. 삶의 애환이나 고통 이런 모든 걸 상징하는 함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오늘 올린 글에서 해석은 이런 의미입니다. 이것은 이렇다 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이건 이런 방향으로 이해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미입니다. 결국은 이런 의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중의적인 의미를 지니는 겁니다.

 

하나의 의미로 단정을 하지 않고 다른 의미도 있을 수 있다는 여지를 열어두고 그 의미를 이해하자는 의미가 더 정확한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상당히 표현이 어려울 수 있는데요 잘 생각해보시면 이해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정말 언어는 어렵습니다.

 

저는 왠만한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영어사전은 대부분 소지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렇게 다양한 원어민 사전을 가지고 있어도 그 단어의 의미를 전달하는 뉘앙스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결국은 인간의 언어는 이런 미묘한 의미 사이의 한계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의 세계의 영역을 인간 세계의 언어로 표현한다는 건 정말 이건 엄청난 사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건 차원의 문제가 그냥 보통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신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변경이 되었기에 그 변화된 신호를 원래의 신의 언어로 이해를 하기 위한 해독이 필요한 것일 겁니다. 그런 과정의 일부가 바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해석이라는 말로 통용해서 사용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개인적인 생각이라 제 생각이

잘못된 생각일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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