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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는 하늘의 시민" --- 2007.3.4 사순 제2주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05 조회수492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7.3.4 사순 제2주일                                    

창세15,5-12. 17-18  필리3,17-4,1  루카9,28ㄴ-36

                                                    

 

 

 

 

 

"우리는 하늘의 시민"

이렇게 사람으로 태어나

봄비 촉촉이 내린 날

아름다운 수도원에서

거룩한 사순 제2주일 미사를 드린다는 것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엄청난 축복의 선물입니다.

불가에서도 사람으로 목숨 받아 태어나기

참 힘들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생에 공덕을 많이 쌓아 놓아도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 장담하지 못한다 합니다.

 

그래서 많은 불교 승려들 한번 뿐이 없는 인생,

목숨을 내놓고 성불하려

동안거, 하안거 동안 집중적으로 참선을 합니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 하느님의 크나 큰 은총입니다.

 

하여 많은 수도자들 한 번뿐이 없는 인생,

하느님을 닮으려 그토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저절로 성덕도, 성인도 아닙니다.

색깔도 세월 흐르면서 바래듯

우리의 열정도 세월과 더불어 색깔 바래져

점차 나태하고 타성에 젖은 삶 되기 십중팔구입니다.

 

젊었을 때야 웬만해도 현상 유지지만,

나이 들어가면서는 초발심의 자세로

발버둥 쳐야 겨우 현상 유지입니다.


초발심의 자세로 벌떡 일어나 다시 시작하라고,

하느님 해마다 선사하시는 은총의 사순시기입니다.

 

40일 사순 광야 피정, 아직도 초반입니다.

힘내셔서 몸과 마음 추슬러 다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사순 제2주일 오늘 말씀들

사순 광야 피정 초반에 아주 적절합니다.


광야의 고독과 침묵 속에

하느님과 깊은 일치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같은 날씨 그대로 광야의 분위기 아닙니까?


영혼과 하느님과의 생명의 끈이 바로 기도입니다.

하여 기도를 하느님과 영혼의 대화라 합니다.

 

태아가 탯줄을 통해

어머니로부터 영양을 공급 받아야 살듯이

우리 역시 영혼의 탯줄을 통해

하느님으로부터

생명과 사랑의 영양을 공급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말 그대로 영육이 “살기위하여” 기도입니다.


평상시는 물론이고

삶의 고비마다 적절한 피정이나 기도는 절대적입니다.


하느님을 체험할 때

마음의 눈이 열리고

삶의 무게 역시 가벼워지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길, 고단한 여정입니다.

십자가 도상에서 제자들의 침체된 분위기를 알아채신 주님은

즉시 산위에서 일일 기도 피정을 실시하십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따로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


기도 피정과 더불어 하느님 체험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이 하얗게 번쩍였다는 사실,

바로 하느님과의 일치 체험의 반영입니다.

 

역시 하느님의 개입으로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

주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베드로와 그 동료들입니다.

 

감격에 벅찬 베드로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고 고백합니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산 피정을 통해 주님 부활의 영광을 앞당겨 체험시키므로

제자들을 용기백배케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오늘 창세기에서 하느님과 아브람의 대화 역시

기도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무렵 하느님께서

  아브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말씀하셨다.”


마치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오르신

다정한 주님을 연상시키지 않습니까?  


이어 축복을 약속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너의 후손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이 또한 아브람의 고단한 광야 여정 중에

얼마나 힘이 되는 하느님 체험이겠는지요.

 

여러분 역시 하늘의 별들을 바라볼 때 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무수한 축복을 헤아리시기 바랍니다.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라 하느님 말씀으로,

하느님 체험으로 사는 우리들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먹지 않으면,

하느님 체험이 없으면

그대로 바오로가 개탄하는 현실이 전개됩니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끝은 명망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

  자기네 수치를 영광으로 삼으며

  이 세상 것만 생각합니다.”


오늘날 흔히 접하는 모습들이 아닙니까?

하느님을 떠나 영혼이 눈멀면 누구나 이렇게 됩니다.

 

보이는 것들은 얼마 못가 허무만 가득 안겨 줄뿐,

숨겨진 내적 삶의 기쁨이 없으면

광야 인생 살아가기 참 힘듭니다.

 

밖에서 오염된 물을 퍼다 마시는 것도 어느 정도지,

이제는 마음 깊이 하느님 샘에서 솟아나는

생명수를 마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래서 광야 인생에서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하느님 체험의 피정이나 미사가

그리도 소중하고 고맙습니다.

“이는 내가 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느님 신비 체험에 안주 하고자 하는 제자들에게

하늘에서 들려온 말씀입니다.

 

우리의 광야 인생, 늘 신비 체험이 뒤따르는 게 아닙니다.

대부분은 무미건조하고 삭막한 나날들,

결코 기분이나 감정으로 살수는 없습니다.

 

하느님 말씀을 믿으며 살아갈 때 비로소 항구할 수 있습니다.


영성생활의 기초가 들음이며,

‘들음’없이는 기도도 믿음도 없습니다.

 
베네딕도의 규칙도 첫 마디 역시

"들어라(obsculta)!"라 시작됩니다.

 

성서 또한 “들어라!”는 말 얼마나 많이 나옵니까?

한결같이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외쳤던 예언자들이었습니다.

 

잘 들어야 기도와 대화도 잘 이루어집니다.


잘 듣기 위해 침묵이요,

잘 들어야 순종에 겸손이요 보석 같은 믿음입니다.


그러니 잘 들음은 영성생활의 기초입니다.


아브람이 잘 듣고 믿었을 때,

주님께서는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합니다.

 
아브람을 인정해주셨던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이는 내가 택한 아들이니...” 라 하시며

인정하십니다.

 

정작 중요한 건 사람들의 인정보다는 하느님의 인정입니다.

예수님이나 아브람처럼

늘 하느님 안전(眼前)에서

하느님 인정받으며

살아야 흔들림 없이 제자리에서 제 모습으로 살 수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하느님 인정하시면 그 인생 성공입니다.

오늘 변모 체험 중에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가 나눴다는 대화 내용이

의미심장합니다.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


이미 세상으로부터의 탈출(exdous)을,

죽음과 부활을 앞당겨 내다보고 계신 주님이십니다.

 

부활하실 주님을 기다리지만

세례 받아 새로 태어난 우리들 역시

이미 주님의 부활을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래서 바오로의 고백은 그대로 우리의 고백이 됩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세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킬 수 있는 그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들을 따로 데리고 기도하시러

불암산 요셉수도원에 오신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들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그러니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형제 여러분,

나의 기쁨이며 화관인 여러분,

이렇게 좋으신 주님께서 늘 함께 계시니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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