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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 굳이 사제에게 고해해야 하는가?
작성자전삼용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07 조회수732 추천수10 반대(0) 신고

왜 굳이 사제에게 고해해야 하는가?

 

한 자매님이 고해성사에 대해 질문해 와서 그냥 글로 써서 우리들의 묵상에 올리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야 좀 길게 써도 될 것 같아서입니다.

개신교인들도 하느님께 직접 통회를 하고 죄의 용서를 받는데 또 상등통회를 해도 죄가 용서받는데 왜 굳이 사제에게 고해를 해야 하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글쎄요, ...

만약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고 그 죄가 사해졌다는 확신이 있다면 굳이 사제에게 고해를 해야 할 필요는 없겠죠. 그렇게 하느님과 일대일로 대면하여 고해할 수 있는 거룩함을 지닌 성인이라면 상등통회가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직접 죄를 고해해서 죄가 용서받았다는 확신을 받을 수 있을까요?

정말 상등통회를 했다면 그 죄를 다시는 짓지 않겠지만, 개신교 신자들이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통회한 죄들을 다시는 짓지 않을까요? 그들은 그렇게 고백한 죄에 다시 빠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의 회개가 온전하지 못함을 스스로 깨닫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해서는 온전한 용서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기도 합니다. 개신교 신자들이 천주교로 개종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죄의 용서의 확신을 얻지 못해서라고 합니다.

 

고해성사를 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고해성사가 죄의 용서의 확신을 주는 ‘성사’이기 때문입니다. ‘성사’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의 가시적 표징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에게 은총이 온다는 확신을 주시기 위해서 보이는 표징들을 세워주신 것입니다. 굳이 세례 때 물을 붓고 견진 때 기름을 바르고 성품 때 안수를 해 주고 굳이 밀떡과 포도주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 분은 우리에게 은총을 풍부히 내려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이 본래 물질적인 것으로 보고 느끼지 않으면 잘 믿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성사에 가시적 표징들을 세워주신 것입니다.

고해성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의 죄를 사합니다.”라는 말은 그저 하느님께 고백한다고 하면서 하늘만 쳐다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죄 사함을 그리스도의 대리자를 통해 들음으로써 죄가 사해졌다는 확신을 줍니다.

물론 이 권한은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주신 것이고 사도들은 지금의 주교님들이고 주교님들은 이 권한을 당신의 협조자들인 사제들에게 부여한 것입니다.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하면 용서받고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고해성사를 세워주신 것은 단지 원하는 사람만 참여하고 다른 사람은 혼자 기도해서 용서를 받으라는 식으로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완전하시다면 그 분이 세워주신 성사도 완전한 것이고 그 완전한 성사에 모든 이를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에 가장 올바른 길인 것입니다. 꼭 필요하지도 않는 것을 예수님께서 만드셨을 리는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정해주신 고해성사를 거부하면서 주님과 직접 대면하겠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전화 하라고 전화번호를 주셨는데 자신이 다른 방법으로 직접 그분과 통교하겠다는 것은 문제가 있죠. 예수님께서 길을 가르쳐주셨다면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 가장 좋은 길을 놓고 왜 다른 길을 굳지 찾아야 하는 것일까요?

 

두 번째 이유는, 고해보는 신자가 사제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서 교만의 죄를 겸손으로 씻는 회개의 증표를 보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죄에는 교만의 원인이 들어있습니다. 교만으로부터 출발하지 않는 어떤 죄도 없습니다.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는 것 안에는 겸손이 들어있습니다. 이는 회개했다는 증표입니다. 같은 죄인들인 사제들에게도 자신의 죄를 털어놓을 만큼 겸손하게 되지 않았다면 진정 회개한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 직접 고백한다고 하는데 사실 하느님은 천사들도 두 눈을 뜨고 바라보지 못하는 분입니다. 실제로 하느님 앞에 서면 그 거룩함 앞에서 숨기위해 쥐구멍부터 찾을 것입니다. 같은 죄인인 사제에게 고백하지 못하는데 어찌 하느님 앞에서 당당히 죄를 고백할 수 있다는 걸까요? 하느님께 고백한다고 하지만 사실 자신이 만들어놓은 고백하기 편한 신을 상상하며 고백하는 것이지 참 하느님께 고백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참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죄의 용서의 확신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저도 한 명의 사제입니다. 한 때 너무 자주 고해를 하는 것도 고해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상등통회를 좀 이용해보려고 했습니다. 또 특별히 대죄를 짓지 않는 이상 고해를 규칙적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의심이 갔습니다.

물론 작은 죄들은 통회와 미사 안에서 용서가 됩니다. 그러나 일정 기간을 두고 정리해주지 않으면 자꾸 쌓여만 가서 결국 대죄까지 가게 되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고해를 함으로써 작은 잘못들도 짓지 않으려 새로 결심하고 새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작은 먼지들도 자주 닦아내지 않으면 양심의 센서를 막아버리게 됨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집안에 보이지 않는 먼지도 규칙적으로 청소해주어야 하듯이 특별한 대죄가 없더라도 규칙적으로 고해를 하는 것은 더 큰 죄에 빠지지 않기 위해, 내 자신의 겸손해짐을 위해, 또 새로운 결심을 위해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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