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냉정과 다정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11 조회수703 추천수4 반대(0) 신고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인상을 어떻게 심어줄 것인가를 두고 고민한다.
온갖 노력을 다하여 아무도 모르게 노력하여 직장에서나 친구들의 모임에서 조용하고 평정을 잃지 않고 있는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특히 약한 모습이나 궁핍한 모습이나 외로운 모습이나 흐트러진 모습이나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요구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그렇게 보이려고 애쓰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입고 있는 옷에서부터 선글래스의 선택과 대중 앞에 보이는 용모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려고 한다.
“나를 똑똑히 봐, 나는 성공했어. 건강해. 얼마나 매력적인지 잘 봐. 아무 일도 없어. 전혀 외롭지 않아.
아무 근심걱정도 없어. 정말 행복해. 아무런 고통도 없어. 어떤 문제든 내가 해결할 수 있어.
흔들리거나 위기에 처해 있지도 않아. 나는 별 노력 없이도 이와 같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어. 식은 죽먹기야!”
그러나 덕이 없으면 절대로 그렇게 보일 수가 없다.
이의 반대는 감정을 보이고 히스테리를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삶을 잘 통제하여 다른 사람에게 궁핍한 인상을 주지 않으려하고
건강하게 보이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들이 이러한 능력을 추구하고 삶 속에서 그런 인상을 보이려고 애쓰지만
의도적인 냉정함이나 평정은 미성숙의 표시일 수도 있으며 인정머리가 없거나
깊이가 없는 사람이라는 표시일 수도 있다.
성숙하고 연민을 갖고 있는 사람은 어떤 고통도 숨기지  못하며 냉정함을 가장하지도 못한다.
왜 그런가? 인정이 많거나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고통이나 외로움이나 어떤 절망적인 상황이나
연약함을 숨기지 못함을 뜻하기도 한다. 인정이 많을수록 냉정하지 않게 된다.
아픔을 느끼지 못하거나 삶의 고통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하고 내면의 깊이가 없다는 표시이다.
인정이 메마른 사람은 걱정이 없고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하여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므로 밤에도 잠을 쉽게 이룬다.
미국의 예수회 소속의 신학자인 마이클 버클리(Michael Buckley) 신부는
이를 그의 유명한 수필에서 잘 묘사하고 있다. 그는 인간적인 우월성 면에서 예수님과
소크라테스를 비교하지만 놀랍게도 여러가지 면에서 예수님이 소크라테스보다 못하다고 썼다.
버클리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소크라테스는 냉정하게 평정심을 잃지 않고 죽음을 맞았다.
그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 들이고 아무런 두려움 없이 죽음의 의미에 대하여 일장연설을 하고
불멸성(immortality)에 대한 변증론을 펼친 후 독약을 마시고 죽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반대였다. 예수님은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신경질적으로 되어 있었다.
‘당신을 죽음에서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을 보시고는 큰 소리로 울면서 눈물을 보이셨다.’
위안을 얻기 위하여 친구들을 거듭 보시고 죽음에서 빠져 나오시려고 기도하셨지만 허사였다.”
 
  나는 한 때 예수님께서 소크라테스의 독약에 비하여
 무서운 십자가의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도 그런 생각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이제는 그것은 피상적이고 부차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는 예수님께서 육체적인 고통을 더 느끼시고 쉽게 지치시는 약골이며
인간의 배신과 경멸에 더 민감하시고 사랑과 증오에 더 예민하셨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친구들의 배신에 대하여 결코 괴로워하거나 힘든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인간은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못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유사이래 인간성의 면에서 그는 가장 위대하고 영웅적인 철학자가 되었다.
같은 이유로 나자렛의 예수님은 비록 확실한 표현을 하시지는 않으시고 고통스러워하시며 신비스러웠지만 인류를 구원하신 사제가 되셨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그의 저서 『갈멜산의 등정(The AscentofMount Carmel)』에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을 소개하고 있다.
첫 걸음은 그리스도의 생애를 되돌아보면서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아는 것이며
두 번째는 그리스도의 인류사랑의 동기를 제대로 이해하여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고통을 피하려 하지 않고 고통에 익숙하게 되며 예수님처럼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고통을 보이지 않고 예루살렘 사람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게 된다. 이제 우리는 더 약해지거나 냉정해져야 한다.
 
 아이리스 머독(Iris Murdoch)이 말했다.
“병사는 보통 두려움 없이 죽지만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시면서 돌아가셨다.”
여기에 깊은 교훈이 있다.
(롤하이저 신부님 칼럼)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