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4월 5일 야곱의 우물- 마르 14, 1-52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4-05 조회수497 추천수6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필자가 묵상한 구절을 중심으로 싣습니다.)
파스카와 무교절 이틀 전이었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속임수를 써서 예수님을 붙잡아 죽일까 궁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백성이 소동을 일으킬지 모르니 축제 기간에는 안 된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베타니아에 있는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의 일이다. 마침 식탁에 앉아 계시는데, 어떤 여자가 값비싼 순 나르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그분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 몇 사람이 불쾌해하며 저희끼리 말하였다. “왜 저렇게 향유를 허투루 쓰는가?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도 있을 터인데.” 그러면서 그 여자를 나무랐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가만두어라. 왜 괴롭히느냐? 이 여자는 나에게 좋은 일을 하였다.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으니, 너희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들에게 잘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내 장례를 위하여 미리 내 몸에 향유를 바른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수석 사제들에게 팔아넘기려고 그들을 찾아갔다. 그들은 그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그에게 돈을 주기로 약속하였다. 그래서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무교절 첫날 곧 파스카 양을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가서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 두 사람을 보내며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가거라. 그러면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를 만날 터이니 그를 따라가거라. 그리고 그가 들어가는 집의 주인에게, ‘스승님께서 ′내가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음식을 먹을 내 방이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하여라. 그러면 그 사람이 이미 자리를 깔아 준비된 큰 이층 방을 보여 줄 것이다. 거기에다 차려라.”
제자들이 떠나 도성 안으로 가서 보니, 예수님께서 일러 주신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곳으로 가셨다. 그들이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 나와 함께 음식을 먹고 있는 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근심하며 차례로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는 열둘 가운데 하나로서 나와 함께 같은 대접에 빵을 적시는 사람이다.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니 모두 그것을 마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 그들은 찬미가를 부르고 나서 올리브 산으로 갔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떨어져 나갈 것이다. 성경에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되살아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갈 것이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모두 떨어져 나갈지라도 저는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그러자 베드로가 더욱 힘주어 장담하였다. “스승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결코 스승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이들도 모두 그렇게 말하였다.

그들은 겟세마니라는 곳으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기도하는 동안 너희는 여기에 앉아 있어라.” 하고 말씀하신 다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셨다. 그분께서는 공포와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깨어 있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앞으로 조금 나아가 땅에 엎드리시어, 하실 수만 있으면 그 시간이 당신을 비켜 가게 해 주십사고 기도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 그러고 나서 돌아와 보시니 제자들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시몬아, 자고 있느냐?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 너희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 하시고, 다시 가셔서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다. 그리고 다시 와 보시니 그들은 여전히 눈이 무겁게 내리 감겨 자고 있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분께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랐다.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 오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아직도 자고 있느냐? 아직도 쉬고 있느냐? 이제 되었다. 시간이 되어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어간다. 일어나 가자. 보라, 나를 팔아넘길 자가 가까이 왔다.” 그러자 곧,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가 다가왔다. 그와 함께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이 보낸 무리도 칼과 몽둥이를 들고 왔다.

그분을 팔아넘길 자는, “내가 입 맞추는 이가 바로 그 사람이니 그를 붙잡아 잘 끌고 가시오.” 하고 그들에게 미리 신호를 일러두었다. 그가 와서는 곧바로 예수님께 다가가 “스승님!” 하고 나서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손을 대어 그분을 붙잡았다. 그때 곁에 서 있던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사제의 종을 내리쳐 그의 귀를 잘라버렸다. 예수님께서 나서시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강도라도 잡을 듯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를 잡으러 나왔단 말이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지만 너희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리된 것이다.”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다. 어떤 젊은이가 알몸에 아마포만 두른 채 그분을 따라갔다. 사람들이 그를 붙잡자, 그는 아마포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다.

(마르 14,1-­52)
 
 
 
 
“파스카와 무교절 이틀 전이었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속임수를 써서 예수님을 붙잡아 죽일까 궁리하고 있었다.”(14,1) 파스카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종살이에서 풀려나온 것을 기념하는 축제로, 유다인들은 이 축제 첫날 저녁 파스카 양을 먹습니다. 그리고 축제 기간 동안에는 누룩을 넣지 않은 빵, 곧 무교병만을 먹도록 되어 있어 무교절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삶에 적용하는 기준이 예수님과 달랐던 유다교 지도자들은 이제 더 이상 그분의 말씀 선포와 행위를 손 놓고 보기만 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사회의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종교적 혼란을 야기시키는 위험한 인물로 예수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군중이 소동을 일으킬까 두려워 축제 기간은 피하기로 합니다(2절). 자칫 잘못하다가는 예루살렘에 몰려든 수많은 순례자를 자극해 소요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백성의 안녕과 평화가 위협받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소요로 인해 로마 제국이 개입하고, 이에 따라 자기네들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이 흔들릴지 모른다는 것이지요.

예루살렘에 들어간 예수님은 이제 시몬이라는 사람의 집에 계십니다. 그곳에서 음식을 잡수시는 예수님 앞에 한 여인이 들어와 값진 향유를 그분의 머리에 붓습니다. 이 향유는 인도의 나르드나무 또는 그 나무의 뿌리에서 채취한 것으로, 여기서는 그 값이 3백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양이라고 합니다. 이는 당시 노동자의 300일 품값에 해당하는 값어치입니다. 여인의 행위에 담긴 깊은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비싼 향유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데에 화를 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이 여자는 나에게 좋은 일을 하였다.…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내 장례를 위하여 미리 내 몸에 향유를 바른 것이다.”(6­8절)

여기에서 이름도 나오지 않는 ‘기름 부은 여인’과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의 모습은 사뭇 다릅니다. 서로 무척 대비됩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그분을 가까이에서 모셨던 그가 이제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예수님을 넘겨주기 위해 그분을 떠나갑니다(10절). 그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에 실망했던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을 실제적으로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잡지 않고 헛되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이사 55,8­9) 예수님을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한 여인과 달리, 유다는 자신이 그리고 있는 메시아상에 부합되는 예수님만을 사랑했던가 봅니다.

이와 같은 유다의 배반과 달리 우리가 지닌 한계, 인간의 약함을 보여주는 사람으로 예수님의 다른 제자 베드로가 묘사됩니다. 베드로는 제자들을 대표하는 이름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이 당신을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베드로는 힘주어 장담합니다. “스승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결코 스승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31절) 그러나 예수님이 체포되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나고(50절),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합니다(66­72절 참조). 또 다른 제자에 관한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그는 아마포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다.”(52절) 이 비극적인 순간에 자신이 따르던 스승과 함께하지 못하고 ‘알몸으로’ 달아나는 제자입니다. 그는 몸에 둘렀던 아마포를 남겨둔 채 자신의 무력함과 수치심을 상징하는 알몸으로 도망갑니다.

무엇이 예수님을 겟세마니 언덕 어둠 속으로 불러냈을까요?(32절) 제자들에게 “내가 기도하는 동안 너희는 여기에 앉아 있어라.” 하시고, 그분은 지금 완전한 고독에 잠겨 당신 아버지께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겪으신 광야에서의 유혹(마르 1,13)과 한적한 곳에서 바치신 기도(1,35)를 떠올려 봅니다. 당신이 가야 할 길을 아시고, 그 길을 갈 수 있는 힘을 기도에서 얻으시던 예수님은 이제 어둠 속에서 당신의 마지막 길을 앞두고 괴로움과 비탄에 잠기십니다.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깨어 있어라.”(34절) 그러나 제자들은 깨어 있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고통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분이 잡혀가 십자가형을 받고 죽음을 당하실 때에 그분 옆에 함께할 수 없었던 제자들의 모습을 여기서도 봅니다.
강선남(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박사과정)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