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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88) 손이 다치고 주님께 감사한 이유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30 조회수492 추천수3 반대(0) 신고
 
  작성자   이순의 (leejeano)          번  호  6738         작성일    2004-03-26 오후 11:36:33
 
 
 
 
   (88) 손이 다치고 주님께 감사한 이유

                                         이순의

 

 

몹시 오랫동안 한약을 복용하고 있었으므로 가리는 음식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생활은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지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서 가족들의 불편이 이만 저만이 아

니었다. 특히 무쇠도 먹으면 녹아날 나이에 있는 아들 녀석의 고기타령은 나를 너무 힘

들게 했다. 혼자 먹도록 해 보지만 그 횟수도 횟수려니와 나로 인해서 여러 가지로 제약

을 받다보니 늘 껄떡장이 걸구 같았다.

그런데 2월29일 날 배추김치를 담갔다. 당연히 3월1일 날은 삼겹살을 구워먹자는 소리

가 나왔다.

"엄마 새 김치에 삼겹살 한 점 싸서 후루룩 으어~~ 맛있것다. 우리 삼겹살 구워먹자."

라는 주문이 없는 게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그동안 내가 먹고 싶을까 봐 대충대충 해 먹였었는데 내일이면 개학도 하고, 학교생활

에 고생할 자식도 생각하고, 오랜만에 잘 갖추어 먹이고 싶었다.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서 준비하느라고 오후가 되어 보쌈용 돼지고기를 넉넉히 샀다.

들통에 물을 붓고 무 한 덩어리와 생강 한줌 그리고 양파 세 개를 넣고 끌이기 시작했

다. 뿌굴뿌굴 물방울이 세차게 갈라질 때 뚜껑을 열고 고기를 넣었다. 끓던 물방울이 차

가운 육질을 만나더니 단숨에 잦아들었다. 파랑 마늘이랑 넣고 청주도 한잔 붓고 물엿

도 짜서 넣었다. 다시 뚜껑을 덮고 끌어 오르는 동안 새우액젓을 준비하려다 말고 9년

 된 갈치 젓국으로 소스를 준비했다.

고기 한 점을 찍어 입에 넣으면 안 씹어도 저절로 소화제가 되어줄 것 같은 갈치젓국을

 종지에 담고, 비린 냄새를 없애려고 식초를 몇 방을 떨어뜨리고 짠맛을 덜으려고 설탕

을 약간 뿌려 저었다.

 

새로 담근 배추김치 한 쪽을 꺼내 꼬투리만 따고 접시에 가지런히 놓고 된장도 양념을

 해서 비벼 종지에 담았다. 준비하는 동안 들통에 담긴 주연과 조연들이 얽이고 섞이고

 야단법석으로 끌어올라 뚜껑을 밀치고 압력 센 수증기로 피어올랐다. 뚜껑을 열고 누

린 냄새를 없애려고 커피도 반 숟가락 넣고 마지막으로 된장을 풀어 간을 하였다. 이제

 불기운을 조금 낮추고 속살이 익을 때까지 뭉근한 시간이 필요했다. 상을 차리고 보니

 찬은 없으나 먹음직해 보였다. 그런데 욕심이 생겼다. 새김치만 먹을 것이 아니라 배춧

잎도 좀 있다면 쌈을 싸서 먹기가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고기의 속살이 익으려면 아직 먼 가스 불을 살핀 다음에 얼른 슈퍼로 달려갔다.

 그리고 살결 고와 보이는 월동 배추를 큰 걸로 한포기 사서 들고 재빠르게 돌아왔다.

무사히 기다려 준 가스 불에 안도하며 뜨거운 뚜껑을 열었다. 고기가 익었는지 살펴보

려고 칼집을 넣어보니 아직 칼 끄트머리에 전해오는 감촉이 둔탁하다. 좀 더 시간이 필

요했다. 배추를 준비하려고 반으로 쩍 갈라 보았다. 누런 배추 속살이 뽀시시하게 나를

홀리며 교태를 부리고 있다. 내 아들에게 저 뽀얀 어린 살을 먹이고야 말리라.

 

그냥 평소대로 뿌리부분을 싹둑 잘라내고 겉에서부터 푸른 잎을 떼어냈다면 아무런 일

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를 않았다. 왼 손으로 짧디 짧은 배추뿌리부분을

 잡고 속살만 돌려 판 것이다. 그러니 여리여리한 속살을 달고 있는 억센 수놈 같은 뿌

리가 쉽게 칼질을 허락할 일이 아니질 않는가?! 내 자식의 입맛을 위해 강제집행을 해버

린 나에게 배추께서도 맛 좋은 어린잎을 포기하기는 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뿌리가 돌

려 파지긴 했으나 그 앙갚음은 내 손가락에 해 버린 것이다.

상처가 그렇게 커 보이지는 않았는데, 잠깐 쌈빡하고 말은 것 같은데, 평소보다 출혈이

 심해서 이내 주방 바닥에 핏물이 후두둑 흘러 범벅이 되었다. 오랜만에 보쌈고기 한

 점 얻어먹으려 했더니 티내 보이는 것 같아서 손가락을 꼭 누르고 바닥의 피부터 훔쳤

다. 급한 대로 발바닥에 걸레를 걸치고 쓱쓱 밀었다. 그런데도 핏물은 그 위로 또 그 위

로 뚝 뚝 뚝 흘렀다. 좀 심했나보다고 생각하고 고무줄로 지혈을 하니 이내 멈추었다.

깨끗한 손수건으로 상처부위를 꽁꽁 싸매고 한 손으로 배추 속살을 씻어 놓았다. 살림

을 살구다 보면 손이 베지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므로 아프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

았다. 그냥 하던 일을 계속 하였다. 고기도 잘 익어서 건지고 찬물에 헹구어 정갈하게

썰어서 큰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 맛있게 먹었다. 정말 맛있게 먹어 주었다. 아들이!

그 동안 어미의 미안한 마음을 지우듯이 싹싹 접시를 비우며 잘 먹어 주었다.

그런데 상을 물리고 나니 설거지를 못 하게 되었다. 손가락에 상처가 생겼으므로 내일

이면 지혈이 되고 아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설거지는 내일로 미루었다. 대충 마무

리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왼손에는 손수건이 감겨져있었으므로 오른

손에 음식물 쓰레기 그릇을 들고 익숙한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그런데 계단의 중

간쯤인 어둡고 꺾이는 곳에서 검은 물체가 갑작스럽게 확 달려들었다. 고양이였다.

순간적이지만 넘어지지 않으려고 손가락이 다친 손벽에 짚었는데 그만 미끄덩 넘어

지고 말았다. 그러나 음식물 쓰레기들은 쏟아지지 않았다. 지저분한 그것들을 다시 주

어 담기가 싫었을 것이다. 다행히 음식물 쓰레기는 온전했지만 손목에서는 통증이 심하

게 느껴지고 있었다. 손의 모양새도 제 위치에 있지 못하고 휘어져 보였다. 어찌 되었든

 무사히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아들에게 알렸다.

"병원에 가야할 것 같아."

 

아픈 손을 다른 손으로 받쳐 들고 택시를 탔다. 그리고 평소에 다니던 병원으로 갔다.

아니?! 그런데?! 탈골이 되었다는 손목은 이렇게 저렇게 몇 번 만져주시니까 제 자리로

 돌아 왔는데 손가락의 상처를 풀어 본 의사선생님은 엉뚱한 소리를 했다. 지금 3.1절이

전문의가 우리병원 내에 계시지 않으니까 손가락 전문 병원에 가서 빨리 수술을 해

할 것 같다는 것이다.

"엄마야? 지금 무슨 소리하세요? 여자들이 살림하다가 손가락 상하는 게 한 두 번이데

요?" 라고 대꾸를 했다.

"아주머니 이 손가락 오후 네 시 반에 상했다면서요? 그런데 고무줄을 풀어보니까 아직

도 지혈이 안 되고 있잖아요? 지금 시간이 저녁 아홉시가 넘었어요. 손가락 잃고 싶어

요? 다섯 시간 동안이나 고무줄로 묶어 두었다면서요. 어휴! 빨리 택시타고 손가락만 보

는 병원으로 가요."

오히려 의사선생님이 답답해 하셨다.

아들아이가 겁을 먹기 시작 했다.

"보쌈 안 먹어도 되는데 엄마 손가락이 잘 못 되면 어떻게 하지?"

택시를 타고 급하게 이동을 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모든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사진을 찍고 심전도며 항생제 반응검

사며 이런저런 검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되고 수술 동의서에 아들이 서명을 하고 수

술실로 들어가고........

엉겁결에 엄마의 일곱 번째 수술에 보호자가 되어 밖에서 혼자 초조할 아들을 생각하니

 그때서야 눈물이 쏟아졌다. 벌써 커서 자식이 보호자구나 라는 생각을 하니 오늘 죽어

도 아들이 있어서 기쁨이었다. 그러니 주르룩 주루룩 눈물이 흘러 내렸다.

 

수술을 돕던 간호사가 다가와 "어디가 아프세요?" 라고 물었다. "아니요 그냥 눈물이 나

오네요." 라고 응답했다.

부분 마취이지만 나는 이 수술이 일곱 번째가 된다. 배추를 자른다는 칼이 깊어지는 바

람에 손가락의 동맥과 신경과 힘줄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 출혈이 심했던 이유가 동맥

이 잘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고양이가 아니었다면 멍청하게 잠자고 일어나 다음날 썩

은 손가락을 제거하러 갈 뻔 했지 않은가?!

의사 선생님은 수술 중인데 나는 이 생각 저 생각 생각이 많았다.

오늘 행복한 만찬준비에 손을 다쳤는데 멍청이 같이 병원에는 가지 않고 있었으니 고양

이를 시켜 병원에 가게 한 뜻이 뭘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오른손으로는 묵주기도를 계

속 했다.

 

수술이 끝나고 병실에 오니 자정이 넘고 있었다. 놓았던 생각들이 돌아왔다.

내일 개학인데 어떻게 하니? 엄마를 걱정하느라고 의기소침해진 아들의 개학이 더 걱정

되기 시작 했다.

"어서 집에 가서 자고 엄마가 없으니까 모닝콜을 설정해 놓고 자라. 첫날이니까 친구들

하고 장난 같은 거 심하게 해서 시비꺼리 만들지 말고 아침에 엄마 없어도 꼭 밥 챙겨먹

고........"

보호받는 입장에서 보호하는 엄마로 돌아 온 잔소리가 이어졌다. 아파도 엄마이기 때문

에 가능한 말들이었다. 아들은 돌아갔고, 엉겁결에 병실 침대에 누워 마취생태로 제 자

리를 잃은 무감각의 팔 한쪽을 단속하느라고 꼬박 잠들지 못 했다.

그래도 시간은 멈추지 않았으므로 퇴원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컴퓨터를 켰더니 아

들이 묵상 글을 쓰지 못한다는 안내문을 올려 두었다.

그 순간 손가락 다친 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순시기가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부터 복음서의 수난사들을 읽게 되는데 나는 그 묵상들로 인하여 힘들어 지고

있었다.

유행가 가사처럼 "아~~ 어쩌란 말인가 이 아픈 가슴을. 아~~ 어쩌란 말인가 이 아픈

 마음을." 가슴을 쓸고 또 쓸었다. 수난의 복음을 묵상하면 할수록 토해내지 못한 상처

들이 뼈를 깎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버거운 묵상을 묵상글로 옮겨야 되었으니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이실직고하며 통찰의 때를 보내야 한다는 말인가?! 사순시기가 하루 씩

 하루 씩 보태어 질 때마다 나의 진은 소진되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다처서......." 라는 안내를 보며 주님께서는 나를 쉬게 하시려고 다치게

 하신 것 같은데 병원에 가지 않고 있었으니 걱정이 되셔서 고양이를 배치시키신 거로

나. 라는 풀이가 전해졌다. 덕분에 나는 푸우욱 쉬기도 하고, 아픈 손가락을 열심히

돌보고 아껴서 완치시느라고 시간이 잘도 가버린 사순시기를 보냈다. 부활쯤 되면 좀

더 잘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지금도 손가락에 지극한 정성을 쏟고 있다.

주님의 뜻은 언제나 그랬다. "지금은 희미하게 보이나 그 때는 주님 마주 대하리."

이번 사순시기에는 마음고생일랑 그만하고 차라리 아픔을 택하여 주셨다는 위로가 나

의 마음을 온유케 하였다. 손가락을 다치게 해주신 은혜에 저절로 감사의 송가가 불러

진다.

주님 감사합니다. I Lo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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