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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님 미사 강론]주님 수난 성지주일 기념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2019.4.14)
작성자정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9-04-20 조회수1,924 추천수1 반대(0) 신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9.index.html

https://www.vaticannews.va/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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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 2019414일 주일[주님 수난 성지주일]

[강론 당일 독서와 복음 말씀] 1독서 : 이사야서 50,4-7

화답송 : 시편 22(21),8-9.17-18.19-20.23-24(◎ 2)

2독서 : 필리피서 2,6-11

복음 : 루카가 전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22,14―23,56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10315&gomonth=2019-04-14&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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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수난 성지주일 기념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성베드로광장

34차 세계청년의날

2019 4 14일 주일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기쁨에 찬 환호성들, 잇따르는 그분의 겸손. 축제의 큰 환호 소리들 그 다음에 잇따르는 잔혹한 고통. 이 이중의 신비가 오늘 두 가지 특징을 가진 기념의 순간 안에서 묵상되면서 매년 우리의 성주간 입성에 함께합니다. 종려 나뭇가지들과 엄숙한 수난기와 함께 한 입당 행렬.

 

성령의 이끄심으로 이 움직임으로 들어갑시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 우리가 본기도에서 간구했던 은총을 얻읍시다. 믿음 안에서 우리 구세주의 겸손을 모범으로 따르기 위해서, 그분의 인내하시는 고통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기 위해서, 그리하여 악의 영을 이기신 그분 승리 안에서 몫을 나누어 받기에 합당해 지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마음 안에서 평화를 지킴으로써 고난의 시기에 그리고 유혹 중에서도 가장 교활한 유혹의 순간을 대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그 평화는 무심함이나 고통을 느끼지 않는 초인적인 무표정이 아니라 성부 하느님 아버지께 확고히 내어 맡김, 그리고 생명과 자비를 주시는 그분의 뜻에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지상 사목의 모든 순간에 성부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완전한 순종이 아닌 자신의 방법으로 일하도록 하는 유혹을 쫓아 버리심으로써 우리에게 이러한 내어 맡김을 가르쳐 주십니다. 광야에서 그분의 40일 동안의 체험으로부터 그분 수난의 절정까지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당신의 순종하는 신뢰로 이 유혹을 물리치십니다.

 

또한 오늘 그분의 예루살렘 입성으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길을 보여 주십니다. 그 사건 안에서 악한 존재, 이 세상의 왕자는 비장의 카드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승리주의라는 카드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계속 그분 자신의 길, 겸손함의 길을 확고히 지키심으로써 응답하셨습니다. 

 

승리주의는 지름길이나 거짓 타협으로 목적을 달성하려고 합니다. 승리주의는 승자의 마차 안으로 뛰어 오르기를 원합니다. 승리주의는 십자가의 가혹한 시련 속에서 연마되지 않은 말과 행동에 의지해서 삽니다. 다른 사람들을 낮추어 봄으로써 그리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을 열등하고 부족하고 실패자라고 심판함으로써 승리주의는 자라납니다승리주의의 한가지 교활한 형태는 영적인 세속성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대한 위험의 전형이며 교회를 위협하는 가장 기만적인 유혹의 전형입니다(De Lubac).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수난으로 승리주의를 무너뜨리십니다.

 

진실로 주님께서는 왕으로서 그리고 메시아로서 그분께 환호하고 그분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는 그분의 백성 그 젊은이들과 기뻐하십니다. 그분의 마음은 이스라엘의 가난한 이들의 열정과 흥분을 보시면서 기뻐하셨습니다. 너무나 대단해서 그들의 아연케 하는 환호에 대해 그분의 제자들을 꾸짖어 달라고 예수님께 말한 바리사이들에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들이 잠자코 있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루카 복음 19, 40). 겸손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진실로 예수님께서는 메시아이시며 왕이십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예수님의 마음은 다른 길로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그분과 하느님 아버지만이 홀로 알고 계셨던 성스러운 길. 바로 하느님의 모습에서 종의 모습으로 이어지는 길,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심으로써 자신을 낮추시는 길(필리피서 2,6-8). 그분께서는 진정한 승리는 하느님을 위해 자리를 마련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계시고 그렇게 하는 유일한 길은 자기 자신을 벗겨내는 것, 자기 자신을 비우시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침묵을 지키는 것, 기도하는 것, 치욕을 받아들이는 것. 십자가와 타협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껴안거나 아니면 거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우리에게 믿음의 길을 열어 주기를 원하셨고 그 길에서 우리를 나아가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제일 먼저 그 길을 따르신 분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그분의 첫 번째 제자입니다. 복되신 동정녀와 성인들은 하느님 뜻에 대한 믿음과 순종의 길을 걸으면서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생명의 사건에 믿음으로 응답하는 것에는 특별한 마음의 무거움(Redemptoris Mater, 17 참고)”이 따릅니다. 믿음의 밤. 그러나 오로지 그 밤으로부터 우리는 부활의 새벽이 시작되는 것을 봅니다. 십자가의 발치에서 마리아는 당신의 아드님에 대해 했던 말을 다시 한번 천사가 생각했습니다.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루카 복음 1,32-33). 골고타 언덕에서 마리아는 그 약속에 대한 완벽한 부정을 마주 보았습니다. 마리아의 아드님은 십자가 위에서 범죄자처럼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승리주의는 예수님 자신을 낮추심으로 무너뜨려지고 그분 어머니의 마음 안에서 마찬가지고 무너뜨려집니다. 두분 다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마리아 님을 따라 수많은 남녀 성도들이 겸손과 순종의 길 위에서 예수님을 따라 왔습니다. 오늘 세계 청년의 날, 나는 그 모든 젊은 성인들, 특히 하느님만 아시는 우리의 이웃집성인들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때때로 그분께서는 그 성인들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을 좋아 하십니다. 사랑하는 젊은이들이여, 예수님을 향한 여러분의 열정을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살아 계시다고 그분께서 여러분의 생명이라고 소리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동시에 십자가의 길에서 그분을 따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당신 자신을 버리라고 모든 안정을 빼앗기도록 당신 자신을 놓아 두라고 그리고 당신 자신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게 완전히 의탁하라고 하실 때 그때 기뻐하고 좋아하십시오! 당신은 하느님 나라의 길 위에 있습니다.

 

축제의 큰 환호 소리들 그리고 잔혹한 고통. 그분의 수난 내내 예수님의 침묵이 깊은 인상을 줍니다. 또한 그분께서는 반박하거나 슈퍼스타처럼 행동하는 유혹을 극복하십니다. 어둠과 엄청난 시련의 순간에 우리는 침묵을 지켜야 하고 말하지 않을 용기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의 침묵이 온유하고 분노로 가득 차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침묵의 온유함은 우리를 훨씬 약하게 더 겸손하게 보이게 할 것입니다. 그때 악마는 용기를 얻을 것이고 그리고 밝혀지고 알려질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리를 지키면서도 예수님과 똑같은 자세로 침묵 속에서 악마에 대항해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그 싸움이 하느님과 이 세상 왕자와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우리의 손을 칼에 대는 것이 아니라 믿음 안에 굳건히 머무르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때입니다. 하느님께서 싸우러 나가시는 때에 우리는 하느님께서 차지하시도록 해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피난처는 천주의 성모님의 망토 아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폭풍을 가라앉히기를 기도 안에서 우리가 우리의 침묵하는 증언으로 기다리는 동안(마르코 복음 4,37-41 참고) 우리는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우리가] 지닌 희망에 관하여(…) 대답”(베드로 1 3,15)을 줍니다. 이것이 해주신 약속에 대한 기억, 십자가에 현존하는 고통과 부활의 희망 사이에 존재하는 성스러운 긴장 안에서 살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울 것입니다.



*강론영어원문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9/documents/papa-francesco_20190414_omelia-palme.html

 *소리로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심쿵 소리 강론 -> http://www.podbbang.com/ch/1771273


 

* 프란치스코 교황님 강론을 소리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 마리아 사랑넷 -> https://www.mariasarang.net/ (->신앙생활-> 교황님 강론)

   - 팟캐스트 "소리로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 http://www.podbbang.com/ch/1771273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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