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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용산참사 여섯 영혼들을 위해 위령미사를 봉헌하다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03 조회수469 추천수3 반대(0) 신고
     용산참사 여섯 영혼들을 위해 위령미사를 봉헌하다


 

2월 1일 아침 '덕산온천 가족목욕' 행사를 했다. 내 12인승 승합차를 이용하여 가족 모두 50분 거리인 덕산온천에 가서 목욕을 한 것이다. 올해 86세 되신 어머니와 우리 부부, 대학생 딸아이와 올해 대학생이 되는 아들녀석, 지난 2005년 엄마를 잃은 이후로 큰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 조카아이들(올해 고등학생이 되는 오빠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누이)도 새벽 4시에 일어나 출발하는 목욕 행사에 기꺼이 참여했다.

가족 모두에게 1일 아침의 목욕행사 이유를 설명했다. 2월의 첫날이고 주일이기도 해서지만, 2009년 2월 1일과 2일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남다른 날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2월 2일은 가톨릭교회의 '주님봉헌축일'이다. 예수 그리스도 탄생 후 40일째 되는 날 성모 마리아께서 성전에 나아가 '정결례'를 치르고 아기 예수님을 봉헌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중세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인데,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날을 '봉헌생활의 날'로 정하여 세계 가톨릭교회의 모든 신자들로 하여금 '봉헌'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바칠 것을 다짐하도록 했다.  
 

▲ 시국미사에 참례하고 있는 내 아내와 아이들 / 2일 저녁 7시 서울 청계천 광장에서 열린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시국미사'에 참례하고 있는 내 가족들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일은 세상 떠난 영혼들께 죄송스러운 마음을 갖게 하면서, 뿌듯한 느낌도 가지게 한다.  
ⓒ 지요하  시국미사

그런데 우리 본당(대전교구 태안성당)에서는 주님봉헌축일 전날이 주일이고 해서, '초 축복'과 '봉헌 행렬' 등의 고유 행사를 주일 교중미사 전으로 옮겨 갖기로 해서 사실상 1일 주일부터 주님봉헌축일, 봉헌생활의 날을 지내게 된 셈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가족은 주님봉헌축일 행사를 갖는 1일 주일과 주님봉헌축일인 2일을 좀더 바른 마음가짐으로, 정갈하고 경건한 몸과 마음으로 지내기 위해 굳이 1일 새벽에 덕산온천 가족목욕 행사를 한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2일 아침 6시 미사에 함께 참례했다. 두 조카아이를 제외하고, 어머니와 우리 부부, 두 남매가 기꺼이 함께 했다. 우리 성당에서는 월요일 평일미사를 아침에 지낸다. 이 월요일 아침미사에는 주로 어머니와 나만 참례를 하는데, 방학 동안 최대한 꿈나라 여행을 즐기는 아내와 아이들도 2일 아침에는 단잠을 빼앗기는 고통(?) 속에서도 군소리 없이 일어나 주었다.

우리 가족이 2일 월요일 아침미사에 함께 참례한 것은 주님봉헌축일, 봉헌생활의 날을 잘 지내기 위한 뜻만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이 봉헌하는 특별한 '위령미사' 때문이기도 했다. 단순한 위령미사가 아니었다. 가족 모두 의논을 하고 의견일치를 본 다음 돈을 모아 미사예물을 마련하고 하루 전에 신청을 하여 주님봉헌축일 아침에 지내게 된 위령미사인 것이었다.

▲ 반가운 어른들 / '시국미사'에 참여하시는 노인들을 보면서 야릇한 반가움과 고마움을 느꼈다.  
ⓒ 지요하  시국미사

주님봉헌축일 아침의 위령미사를 생각하게 된 것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2일 저녁 7시 서울 청계천광장에서 여는 '용산참극과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시국미사' 때문이었다. 며칠 전 인터넷을 통해 시국미사 개최 소식을 접한 순간 나는 그 미사에 참례해야 할 '의무' 같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저녁식사 자리에서 가족에게 그 소식을 전하고, 나 혼자가 아닌 가족 모두 시국미사에 참례했으면 좋겠다는 내 소망을 말했다.

아내와 아이들 모두 찬동을 했다. 어머니는 반대를 하시지 않는 가운데서도 걱정을 하셨다. "나 같은 늙은이는 빼고라도, 네 식구가 함께 움직이려면 비용도 많이 날 텐데, 네 식구가 소비하는 시간, 비용, 고생을 생각하면 선뜻 찬성을 헐 수가 읎구먼 그려" 이런 어머니의 말씀 속에는 이미 찬성의 뜻이 내포되어 있는 셈이었다.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용산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여섯 영혼을 위해 2일 아침미사에 위령미사를 봉헌하자는 제안을 했다. 가장인 내 지갑에서 미사예물을 마련할 양이면 일삼아 그런 제안을 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두 가지 뜻이 있었다. 미사예물을 마련하는 일에, 그리고 2일 아침의 위령미사에 가족 모두 참여시키려는 뜻이었다.

가족 모두 내 의견에 찬동을 했다. 용산참사로 목숨을 잃은 철거민 다섯 분과 경찰관 한 명, 그 여섯 사람에 맞추어 미사예물은 6만원을 준비하기로 했고, 각자 1만원씩 모으기로 했다. 어머니와 우리 부부, 그리고 설날 세뱃돈을 솔찬히 받은 딸아이와 아들녀석이 기꺼이 만원씩을 내었고, 일터에서 퇴근하면 형 집에 와서 저녁식사를 하는 동생도 군말 없이 만원을 내주었다.

나는 참으로 의미 있는, 우리 여섯 명 가족이 1만원씩 모아 마련해보기는 처음인 6만원의 미사예물을 예물봉투에 넣으며 뿌듯하고도 감미로운 느낌을 가슴 가득 안았다. 예물봉투에 아내가 예쁜 글씨로 정성스럽게 여섯 영혼의 이름을 적었다.  

<용산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철거민 이상림, 양희성, 이성수, 한대성, 윤용환 님과 경찰관 김남훈 님을 위하여>
  

▲ 안동교구 신부님의 강론 / 함자를 잊어서 죄송스러운 마음 크다. 안동교구 신부님이시라는데 강론을 하시는 신부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했고, 깊은 공명을 주셨다.  
ⓒ 지요하  시국미사

2007년 여름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건 때 개신교 신자들인 배성규 목사와 심성민씨를 위해 봉헌했던 연미사를 비롯하여,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생면부지인 사람들의 억울하고 안타까운 죽음 때문에 연미사를 봉헌한 경험은 여러 번이지만, 이번처럼 한꺼번에 생면부지 여섯 분을 위해, 더구나 가족 모두 1만원씩 모은 미사예물로 위령미사를 봉헌하기는 실로 처음이었다.

그 사실에 나는 야릇한 희열을 맛보았고, 내게 이런 기회를 베풀어주시는 하느님께 뜨거운 마음으로 감사를 드렸다. 내 가족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실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것이기에 더욱 뜨거운 마음일 수 있었다.

나는 1일 주일 오후 다시 성당에 가서 사무실에 미사예물을 드렸고, 2일 아침 가족과 함께 더없이 뿌듯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위령미사를 지낼 수 있었다. 함께 사는 조카아이들은 함께 하지 않았지만, 월요일 아침미사에 가족 모두 참례하기는 매우 오랜만이거나 처음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계속>


2009.02.03 19:49 ⓒ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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