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바리사이들은 왜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 하였나?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2-12-29 조회수492 추천수0 반대(0)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목록으로 돌아갑니다.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마태 12,14)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고 어떤 일을 하셨기에 그들은

에수님을 어떻게 없앨까하고 모의하였는가?

 

마태오복음 11장25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이신지 친히 밝히십니다.

바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마태 11,25-27)

 

그러시면서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당신에게 오라고 하십니다.

안식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당신이 바로 온유이고 겸손이시니

우리가 당신에게 와서 배우면 그 안식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마태 12,8)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안식일의 주인이신 분이 직접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왜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고 갔을까요?

 

바리사이들은 구약성경을 잘 알았습니다.

구약성경에는 그들을 구원해 줄 메시아(엘리야)가 오실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기대했고 원했던 메시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없애려고 모의를 했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 사실을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바램이 그 바램대로 성취되지 않을 때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마음도 생긴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자신이 정립해 놓은 고정관념의 틀에 이웃의 생각과 맞지 않을 때에도

그와 같은 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기도하신 것입니다.

"아버지,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소서!"

또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이 장면을 통해서 우리는 바리사이들은 병든 이웃이 안식일에라도

치유받아
행복하게 사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병들고 아픈 이웃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을 어떻게든

행복하게
살게 하는 데에 마음을 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정해 놓은

율법 규정과 자신들이
하느님은 이런 분이어야 한다고 정해 놓은

어떤 규정의 틀에 묻혀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무엇을 원하실까를 헤아려 하느님의 뜻을 살아내려는 데에

마음을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이 정해 놓은 어떤 법에 마음을 쓰며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곧 이것은 하느님 중심으로 살지 않고 인간 자기 중심으로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저자는 하느님께서 에덴동산 한가운데에 선과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심어 놓으시고 자라나게 하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 한가운데에 선과악을 알게 하는 나무(양심)를 심어 놓으신

하느님의 뜻을 잘 헤아려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마음 한가운데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를 알게 하는

나무가 늘 자라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열매를 따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

다.
왜 그러셨을까? 그 열매를 따 먹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저는 이렇게 묵상해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우선 양심이 발동을 합니다.

이게 선한 일인가?  악한 일인가?

그렇게 고민하다 결정을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많은 경우 선을 택하기보다

악한 쪽을 많이 선택하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곧 양심을 거슬러 선택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모습이 바로 선악과를 따 먹는

모습은 아닐까하고 묵상해 보았습니다.

 

분명 선악과를 따 먹으면 죽는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자신의 이상형을 가진 여성을

만났습니다. 양심으로는 그 여성과 관계를 맺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면서도 양심을 거스르고 그 여인과 깊은 관계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그런 관계에 들어가지 전에 그들은 그것이 죄가 되어 죽는다는 사실을

몰랐을까요? 아닙니다. 분명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되어 죽는다는 사실보다 그것이 주는 달콤함이 더 크고 탐스러워

보였기에 선악과(양심)를 따 먹는 것입니다.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창세 3,6 참조)

 

감사합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