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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피와 물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03 조회수783 추천수9 반대(0) 신고

 

 

 

연중 4주간 화요일 - 피와 물

 

어제 복음묵상이 좀 어려웠지요? 강론의 형식으로는 깊게 들어가는데 제한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중엔 복음묵상이 아니라 성경공부나 교리공부를 통해 좀 더 깊은 내용을 다루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오늘은 어제의 보충설명 정도가 되겠네요.

 

어떤 글에서 ‘성체는 예수님의 심장이요 그 심장에서는 아직도 피와 물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 피는 죄를 씻어주고 그 솟아나오는 생명의 물은 성령님을 상징한다.’라는 것을 읽었습니다.

교회의 공식적 탄생은 성령강림이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부들과 신학자들은 그 상징적 탄생이 골고타 십자가상에서 있었다고 말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하느님께서 마치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여 그 옆구리에서 갈비뼈를 뽑아내어 하와를 만들어 둘이 한 몸이 되게 하셨듯이, 이번엔 두 번째 아담인 예수님을 깊은 죽음의 잠으로 빠뜨리시고 그 옆구리에서 하와인 교회를 탄생시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나온 것은 피와 물입니다. 피는 인간의 죄를 씻어주기 위한 희생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어 주님과의 사이가 단절되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당신의 피 값으로 우리 죄 값을 대신 치러주신 것입니다.

구약에도 하느님이 ‘이 선악과를 따먹으면 너희는 반드시 죽는다.’라고 하신 것처럼 죄의 값은 ‘죽음’입니다. 그래서 다시 생명을 찾기 위해선 그 죽음에 상응하는 값이 있어야 했는데 레위기에는 ‘피는 곳 생명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즉 죄를 씻을 수 있는 것은 피밖에는 없었고 인간의 죄가 섞인 피가 아니라 죄 없는 어린양의 깨끗한 피의 제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실 때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너희와 모든 이의 죄의 사함을 위하여 흘릴 피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물보다 피가 먼저 흘러나온 이유는 성령님이 들어오시기 전에 먼저 그 안의 죄를 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피는 인간의 죄를 씻습니다. 그래야 물로 상징되는 생명의 성령님이 들어오십니다. 우리가 귀한 손님을 모시기 전에 먼저 집안을 청소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기도합니다. 하늘은 깨끗한 하느님의 집을 상징합니다. 인간은 죄를 지어 땅에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늘과 땅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하느님은 깨끗한 하늘에 거하시지 더러운 땅에는 거하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런 의미로 회개와 죄의 사함은 모든 성사에서 절대적인 요소입니다. 그렇게 깨끗해진 상태가 되면 비로소 성령님이 그 안에 임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곧 사랑입니다. 자동차가 기름이 없으면 달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 안에 성령님이 계시지 않으면 용서도 사랑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사랑할 수 있다고 한다면 스스로 하느님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 그 사랑으로 하느님을 사랑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구도 먼저 하느님께 접하여 그 사랑을 받지 않으면 하느님도 사람도 참 사랑으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 밑에는 성모님이 계셨습니다. 물론 성모님은 죄가 사해질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성령님으로 충만하셨던 교회이전의 교회이십니다. 따라서 성모님은 처음부터 그리스도와 한 몸이셨습니다.

성모님과 함께 있던 요한은 죄가 씻기고 성령님이 임하심으로 비로소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신비를 체험하게 되고 처음으로 세례를 받게 됩니다. 세례는 다름 아닌 그리스도의 피와 물로 정화되고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야 비로소 그리스도와 온전히 혼인하여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되고 성모님을 ‘어머니’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 교회 탄생의 신비, 성사의 신비가 지금도 계속 성체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성체 앞에만 앉아있으면 그 피로 죄가 계속 씻기고 그 물로 성령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오늘의 복음이 이 두 신비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예수님께 어린 딸이 죽게 되었다고 예수님을 데려갑니다. 그러던 중 어떤 여인이 군중을 헤집고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댑니다. 그 여인은 12년 동안이나 하혈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이었습니다. 피는 생명입니다. 피가 자꾸 빠져나가는 병은 죄로 인해 죽어가고 있는 영혼을 나타냅니다.

그 영혼은 그리스도와 접하기만 해도 죄가 사해지고 깨끗해지고 그래서 건강해지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 여인은 그리스도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지면 병이 낫는다고 믿었고 그 기적의 힘이 예수님께서 원하시지도 않았는데 빠져나갔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죄 사함의 은총을 빼앗기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은 피를 온 인류를 위해 흘리셨기 때문에 누구라도 당신에게 와서 생명의 피로 건강해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야이로의 딸이 있는 집으로 들어갑니다. 야이로의 딸은 이미 죽어있었고 사람들은 울며불며 난리법석입니다. 예수님은 그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잠들어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야이로의 딸은 여기서 죄가 사해진, 즉 피로 깨끗해진 영혼을 상징합니다. 피로 깨끗해졌다고 해서 생명의 힘이 들어온 것은 아닙니다. 야이로의 딸은 어린아이로 죄가 없는 깨끗한 영혼입니다. 그 이전의 하혈병 걸렸던 여인이 깨끗해진 상태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소녀의 손을 잡습니다. 그리고 ‘탈리타 쿰’하고 외치십니다. ‘소녀야, 일어나라!’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손을 통해 이 죽어있는 소녀에게 생명의 에너지, 사랑의 에너지, 즉 성령님을 넣어주십니다. 그 때부터 소녀는 일어나 걷기 시작합니다. 성령, 즉 사랑은 삶의 에너지이고 이 성령이 없으면 곧 죽은 영혼입니다.

 

이 피와 물의 신비는 세례 성사와 성체 성사, 고해 성사를 비롯하여 모든 성사 안에서 일어납니다. 그 구체적인 형태가 오늘의 복음입니다. 즉, 죄가 사해지고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얻는 것.

 

한 자매님이 남편이 바람피운다고 저에게 상담을 해 왔습니다.

“제가 남편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자매님이 하루에 한 시간씩 꾸준히 성체 앞에 앉아계시면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한 일 년 정도 지난 뒤에 그 자매님이 저를 다시 찾아왔습니다. 기적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돌아왔냐고 했더니 여전히 바람을 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슨 기적이 일어났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남편에 대한 배신감과 좌절감으로 살기도 싫었었는데 지금은 남편이 한 달 만에 들어와도 기쁘게 밥상을 차려주고 이부자리까지 펴 주며 ‘잘 주무시고 또 나가세요.’라고 해요. 남편이 밉지가 않아요.”

 

사실 그만한 기적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오늘도 당신 몸을 통해서 우리의 하혈 병을 고치시고 축 늘어져 죽어있는 우리의 영혼을 일으키시는 기적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적어도 병을 고친 여인처럼 예수님께 다가오려는 노력을 하지 않거나 주님을 자신의 집으로 모시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이런 기적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 해야 하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이 피와 물의 신비를 믿고 그 원천인 예수님 앞에서 그 피와 물에 흠뻑 젖기 위해 일정 시간 앉아있는 일 뿐입니다.

 

 

로마에 유학 중이신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복음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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