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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자녀답게" - 2.16,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16 조회수464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2.16 연중 제6주간 월요일
                                                  
창세4,1-15.25 마르8,11-13

                                                        
 
 
 
"하느님의 자녀답게"
 


인간의 자유를 존중해 주시는 하느님을 본받아
우리 또한 하느님의 자유를 존중하고 이웃의 자유를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바로 이게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입니다.
 
오늘의 창세기의 내용은 그대로 세상의 축소판 같습니다.
어제 저녁 성체강복 전
얼핏 오늘의 제1독서 창세기를 읽으며
하느님이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보다 사고뭉치 자녀를 둔 부모들이
이 하느님의 심정을 잘 헤아릴 수 있겠습니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듯이,
이미 주신 자유를 회수할 수도 없고
계속 사람들의 사고 수습에 여념이 없는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벌주기 좋아하는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전 번에 하느님께서는
하와와 아담이 사고를 쳐 벌을 주시고 에덴동산에서 내 쫓았지만
하느님의 상처는 참 깊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또 이어 아담의 장남인 카인이 대형 사고를 쳐
아우인 아벨을 죽였으니
아담 부부는 물론이고 하느님의 상처는 얼마나 깊었겠는 지요.
 
이런 하느님의 심정을 헤아려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고 추스르는 자가 진정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주님은 카인에게 벌을 주셨으나 그에게 표를 찍어 주셔서,
어느 누가 그를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다니
바로 이게 죄인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로운 배려입니다.
 
인간의 죄에 결코 좌절하지 않고
세상 끝날 까지 구원역사를 계속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카인이 아벨을 죽여 버려,
  하느님께서 그 대신 다른 자식 하나를 나에게 세워 주셨구나.”

아벨은 죽었어도 산 사람들은 계속 살아남아야 합니다.
 
죽은 아벨대신 하느님께서 다시 주신 아들 셋에 위로 받아
살 힘을 얻는 아담 부부입니다.
 
창세기의 인간들,  
예나 이제나 끊임없이 사고를 쳐대는 우리 인간들의 모습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하늘의 표징을 요구하는 바리사이들,
철딱서니 없기로는 창세기의 인간들과 똑같습니다.
 
마음의 눈만 열리면 도처에 하늘의 표징들인데 새삼 무슨 표징입니까?
 
오늘 복음에서 주님의 심정이나
창세기에서의 하느님의 심정이나 착잡하기는 똑같았을 것입니다.
 
주님은 바리사이들의 처신에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매몰차게 거절하시며 이들을 떠나 제 갈 길을 가시는 주님이십니다.
 
창세기와 복음의 말씀, 그대로 오늘의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아담, 하와, 카인, 아벨, 바리사이들 역시 우리의 모습들입니다.
 
오늘 아침 성무일도 시편 한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주님께 바라는 너희는 모두 굳세게 마음들을 가져라.”

주님을 향한 시선을 놓치고
자신을 바라봤을 때
탐욕과 교만, 질투의 유혹에 빠져 터지는 사고입니다.
 
주님 향한 시선을 놓치고
탐스런 열매에 시선을 뒀을 때
하와는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었고,
카인 역시 주님 향한 시선을 놓쳐
아벨과 자신을 바라보며 비교했을 때
질투의 유혹에 빠져 급기야 동생 살해라는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네가 옳게 행동하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
  그러나 네가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

자유는 아무도 강제, 강요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의 자유를 존중하심을 알았더라면,
카인은 하느님의 자유를, 아벨의 자유를 존중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하느님을 절대 신뢰하여
하느님의 자유를 존중하며
자신의 존엄과 품위를 지켰을 것이며
아우 아벨도 살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들,
하느님의 자유를 존중했더라면
절대로 하늘의 표징을 요구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며
자신의 존엄과 품위를 지켰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유를 존중하고
이웃의 자유를 존중하며
자신의 존엄과 품위를 유지하는 자세,
바로 이게 하느님의 자녀다운 자세입니다.
 
매일 주님은 하늘에서 오는 거룩한 성체성사의 표징을 통해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어
하느님의 자유와 이웃의 자유를 존중하며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게 하십니다.

“주님,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위해 간직하신
  그 선하심이 얼마나 크시옵니까!(시편31,2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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