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오늘의 복음과 오늘의 묵상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16 조회수453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9년 2월 16일 월요일[(녹)연중 제6주간 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복음>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1-13
그때에 11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과 논쟁하기 시작하였다.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13 그러고 나서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표징을 요구합니다. 하늘의 기적을 보여 주면 승복하겠다고 합니다. 조건을 다는 것이지요. 믿음에 조건을 다는 것은 성숙한 자세가 아닙니다. ‘이렇게 해 줘야만’ 믿겠다는 것은 어린이의 신앙입니다. 답답한 것은 우리 인간이지 주님이 아니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리사이들 앞에서 답답한 것이 없으셨습니다.
‘하도 그러니까 참석하겠다.’ ‘하도 저렇게 말하니까 들어 주겠다.’ 이것은 끌려가는 신앙생활입니다. 주일 미사를 ‘참석해 준다.’는 자세로 임한다면 어떻게 은총이 함께할는지요? 강론 말씀을 ‘들어 준다.’는 마음으로 대한다면 어떻게 깨달음이 찾아올는지요?
‘자꾸만 읽으라니까’ 읽는 성경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읽다 보면 그저 평범한 말이 어느 날 ‘칼날’이 되고, ‘따듯함’이 됩니다. 은총은 늘 그렇게 갑자기 다가옵니다. 그러니 앞에서 끌고 가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뒤에서 밀고 가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신자들은 가끔씩 ‘이러이러한’ 신부님 때문에 성당에 못 다니겠다고 합니다. 신부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저러한’ 교우님들 때문에 사제 생활을 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돌아보면 모두가 조건을 다는 일이 아닐는지요? 믿음의 길 역시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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