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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 2.15,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16 조회수467 추천수2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2.15 연중 제6주일                                           
레위13,1-2 1코린10,31-11,1 마르1,40-45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인생은 신비입니다.
생명도 몸도 마음도 고통도 병도 악도 자연도 신비입니다.

세상에 신비 아닌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미사도 신비 중의 신비입니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 천지입니다.
 
삶의 신비 앞에 저절로 무릎 꿇을 때
비로소 겸손이요 풍요로운 영적 삶입니다.

편리와 신속을 추구하는 인스턴트 시대,
신비 감각의 상실이,
경외심의 상실이 현대인의 크나 큰 병입니다.
 
하여 사람들은 날로 교만해지고 천박해지고 거칠어져 갑니다.
 
이 모든 신비에 대한 유일한 답은 신비 자체이신 하느님뿐이십니다.
 
하느님을 알면 알수록
서서히 계시되는 삶의 신비요 회복되는 신비감각에 경외심입니다.

“그지없이 크오셔라. 주님을 찬미하라, 알렐루야!”

하여 끊임없이
신비의 원천이자 행복의 원천이신 하느님의 크옵심을 노래하는
우리수도자들입니다.


고통도, 병도 신비입니다.
 
스스로 자초하는 고통이나 병일 수는 있어도
결코 죄악의 벌로써 병이나 고통을 주시는 하느님이 아니십니다.
 
불행이나 병고를 겪을 때
하느님이나 남을 탓하거나 자책하여 자포자기로 주저앉을 게 아니라,
즉시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빛을 간절히 찾는 것입니다.
 
바로 이게 생명과 구원의 길입니다.

오늘 복음의 천형이라는 나병에 걸린 어떤 사람이
바로 그 훌륭한 모범입니다.

어디 예수님 당대에 나병 걸린 사람이 한둘이었겠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나병환자들은 체념하여
자포자기로 주저앉았을 것이나
복음의 어떤 나병 환자 하나만이 끝까지 주님을 찾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간절히, 절실히 주님을 찾는 열정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이 열정 사라지면 삶은 선물이 아니라 무거운 짐이 되어버릴 것이며  
평생 운명의 노예 되어 살 수뿐이 없습니다.
 
오늘 복음의 나병 환자, 결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이 한 사람의 나병 환자만이 주님을 찾았고 주님을 만났습니다.

간절히 찾지 않으면 결코 주님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나타나셔도 모를 텐데 주님께서 나타나실 리 있습니까?
 
복음을 보셔요.
대부분 사람들이 주님을 찾아 만났고,
주님 역시 당신을 찾은 자들에게 치유의 구원을 주셨습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간절히 주님을 찾았던 나병 환자는,
나병 환자들만 아니라
모든 고통과 절망 상태에 있는 이들의 희망이자 모범입니다.
 
간절할수록 무릎 꿇어 겸손할 수뿐이 없습니다.
 
다음 묘사가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그때에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로 몸과 마음이 하나 된 기도가 아닙니까?
 
무릎 꿇는 몸의 기도, 그대로 겸손한 마음의 표현입니다.
일만하라 있는 몸만이 아니라 이렇게 기도하라 있는 몸이기도 합니다.


주님을 만날 때 해명되는 신비요, 치유되는 병입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아, 이런 철석같은 믿음이 부럽습니다.
 
우리 삶의 신비가 해명되지 않는 것은,
우리 병이 치유되지 못하는 것은,
우리 기도가 응답 받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런 곧이곧대로 믿는 단순하고 간절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과 주님의 은총이 만나야 비로소 치유의 기적입니다.
믿음 없이 주님 은총 만으로의 일방적 치유의 구원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합니다.

주님의 가엾은
마음과 몸의 터치와 말씀이 삼위일체 하나가 되어 발생한 기적입니다.
 
나병의 저주는 주님을 만남으로 전인적 치유의 축복으로 변했습니다.
 
가엾어 하는 마음 그대로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보기 흉하게 이지러진 얼굴 너머
고귀한 인간 자체를 보시는 주님의 깊고 깊은 연민의 눈길입니다.
 
레위기의 말씀대로
진영 밖에 외딴 곳에 자리를 잡고 격리되어 
혼자 외롭게 살아야 하는
악성 피부병에 걸린 부정한 사람, 나병 환자를 찾아오신
자비하신 주님이십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습니다.
 
 
절망은 없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합니다.
외딴곳이 상징하는바 불행과 절망의 현장이요
바로 거기 찾아오신 주님을 만날 때
영육은 치유되어
저주는 축복으로,
불행은 행복으로,
절망은 희망으로 바뀝니다.

치유 받은 나병환자 즉시 복음 선포자로 돌변합니다.

180도 인생 전환입니다.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했다 합니다.
끊임없이 마음속에서 샘솟는 치유 받은 구원의 기쁨을
도저히 가둬둘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업적을 알림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자연발생적 본능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유일한 목적은 단 하나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물론 모든 성인들의 유일한 삶의 목표,
기쁨, 행복은 오직 하느님의 영광뿐이었습니다.
 
‘샬롬’ 이라는 하느님의 평화라는 유대인들의 인사말과 더불어
‘인샬라’ 라는 하느님께 영광이라는 아랍인의 인사말이 생각납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살 때
점점 하느님을, 그리스도 예수님을 닮아가게 되며
구원의 행복에 안개 걷히듯
서서히 드러나는 신비의 정체 하느님이십니다.
 
하여 우리 수도자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끊임없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미사와 성무일도를 바칩니다.
 
바오로 사도의 권고가 참 고맙습니다.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는 나처럼 하십시오.
  나는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내가 아니라 그들에게 유익한 것을 찾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여러분도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분도회의 모토와도 같은 말씀도 생각납니다.
 
‘하느님은 모든 일에 영광 받으소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저절로 삶은 단순해지고 긍정과 낙관으로 빛날 것입니다.
 
절대로 비관과 부정의 정신이,
허무의 어둠이, 무질서의 혼란이 끼어들지 못합니다.
 
막연한 하느님의 영광이 아니라
바오로처럼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는 삶,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그들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 삶이
바로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삶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의 장면을 잘 보십시오.
바로 이 은혜로운 미사 장면 같습니다.

세상에 병 없는 사람,
걱정 없는 사람,
고통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병환자가 상징하는바 바로 우리들입니다.
 
이 미사 중에
나병환자를 치유해주신 똑같은 주님께 간절히 청하는 우리들입니다.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곧 이어 우리를 향한 주님의 응답 말씀입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주님은 당신의 말씀과 성체를 통해
친히 우리를 터치해주심으로
전인적 치유의 구원을 주시어
우리 모두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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