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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문과 증거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15 조회수502 추천수7 반대(0) 신고
 
 
 

소문과 증거 - 윤경재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마르 1,40-45)


 엊그제 어처구니없는 뉴스를 접하고 경악하여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여섯 분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 참사에 들끓는 여론을 가라앉히고자 희대의 연속 살인마 X를 체포한 사건을 적극 홍보하라는 메일을 청와대 간부가 경찰청에 내려 보냈다고 합니다. 그것이 공식적인 문건은 아니라고 발뺌을 하지만, 그의 직책이 홍보 행정관이라는 데에 문제점이 더 큽니다. 그는 PR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론을 조작하면 일이 손쉽게 마무리될 거라는 불순한 의도를 가졌습니다. 정직이 더디지만 최선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기가 그리도 어려운지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러니 국가 신인도가 바닥을 헤매며, 부패지수가 최악이지 싶습니다.

 마르코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소문내지 말고 비밀을 지키라는 엄명을 내린 적이 무려 여섯 차례나 나옵니다. 그것도 치유와 구마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말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도 엄명을 내리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병에 걸려 사랑하는 가족과 마을에서 쫓겨나 평생 인간답게 살지 못한 나환자를 고쳐주셨습니다. 나환자가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정말 끔찍합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는 서울에서도 동냥 다니던 나병환자들을 심심치 않게 만났습니다. 코가 떨어져 나간 사람, 손가락이 뭉그러진 사람들이 두세 명씩 몰려 다녔습니다. 온몸에 진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무척 놀라 슬슬 피하다가 냅다 뛰어 대문을 걸어 잠그고 문틈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어린아이를 잡아다가 생간을 빼먹는다는 흉흉한 소문을 들었기에 더욱 무서웠습니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죄송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분들에 비하면 우리가 겪는 어려움은 고통도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입다물고 있어야 마땅합니다.

 나병환자는 율법을 어겨가면서 죽기를 각오하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나병 환자를 아무 거리낌 없이 손대어 잡아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 한마디로 깨끗하게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니 그가 느꼈을 감사와 환희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갑니다. 세상이 떠나가라고 마음껏 소리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심정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뜻밖에도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라고 엄명하십니다. 그러나 그 환자는 예수님의 당부를 그만 잊고 말았습니다. 감격이 너무나 컸고 주위에서 자초지종을 캐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도저히 말하지 않고는 못 배겼을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소문과 증거’라는 차이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증거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무런 해석이 필요 없습니다. 누구나 척보면 그냥 아는 상태입니다. 그러니 왜곡이 생길 여지가 없습니다. 이에 비해 말은 아무리 사실대로 이야기 한다 해도 전달자의 의견이 개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만간 ‘내 생각에는’이라는 말꼬리가 붙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모든 말은 결국 소문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진실이 왜곡되는 것입니다. 청와대 홍보 행정관도 이런 소문의 역할을 잘 알고 악용하려 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인간의 속성을 속속들이 아셨습니다.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거치고 부활 사건을 체험한 연후에라야 제자들과 사람들이 예수님의 정체성과 진심을 깨달을 것이라고 잘 아셨습니다. 그 전에는 알아도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소문을 내리라고 아셨지만, 그럼에도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주님 입장에서는 의심하시기보다 모험을 거신 것입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인간들에게 주님을 택할 것인지 아닌지를 인간의지에 맡겨 두셨듯이 말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는 고을 밖 외딴곳에 머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나환자와 예수님의 처지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한 사람은 공동체 밖에서 안으로 받아들여졌지만, 또 한 분은 공동체 밖으로 내침을 당했습니다.

 이 침묵의 명령은 첫 번째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으로서는 첫 번째 모험을 건 것입니다. 그러나 여지없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랬음에도 예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 병자를 고치시고 구마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럴수록 점점 더 배척당하셨습니다. 정말 아이러니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약점은 상대방을 그가 파악하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늘 제 생각만 앞세웁니다. 그것이 선의든 악의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제 생각만 앞세우고 제 목소리만 내다가 주님을 내안에서 밖으로 내쫓는 일을 하지나 않는지 살펴야 합니다. 말보다는 증거가 되는 삶을 살아 주님을 왜곡하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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