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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빵의 표징은 사랑의 모범입니다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14 조회수477 추천수8 반대(0) 신고

 

빵의 표징은 사랑의 모범입니다 - 윤경재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 저 사람들을 배불릴 수 있겠습니까?”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라고 하시니, 그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 사람들은 사천 명가량이었다. (마르 8,1-10)

 

 요즘처럼 사랑이라는 말이 넘쳐나는 적이 없었습니다. 누구나 사랑한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사용합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에 각자 나름대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잘 아는 듯도 하지만, 실제로는 사랑을 막연하게 느끼고 있을 뿐입니다. 사랑에 대해 수많은 정의가 있지만, 그중에 쉽게 수긍이 가는 말은 “사랑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온전히 상대방에게 집중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스스로 파악하고 있는’ 그대로를 헤아려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자신에게 관심을 쏟는 사람만 사랑하려 듭니다. 아니면 자기가 주는 대로 받으라고 강변합니다. 왜? 내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느냐고 투정합니다. 인간의 사랑은 이 둘 중 하나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더 깊이 발전하거나 성숙하지 못하고 겨우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하고 묻는 피상적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살피려 들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사랑이라는 말을 들으면 낯간지러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먼저 살피셨습니다. 직접 경험하셨기에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빵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빵을 먹지 않으면 단 며칠을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배고픔의 고통을 헤아려 주셨습니다. 그랬기에 일용할 양식을 간구하는 기도를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빵의 한계에서 벗어나 자유를 추구하는 방법도 함께 보여주셨습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4)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빵에 구속당하면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단계로 성장하지 못하고 빵의 노예가 될 뿐입니다. 썩어 없어질 빵만으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빵을 많게 하시는 표징은 단순히 놀랄만한 기적이 아닙니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마음을 표현한 행동 언어입니다.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아셨기에 아무 조건 없이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바를 강요하지 않으시고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는 초대의 말씀입니다. 너희를 속속들이 잘 아니 겁내지 말고 한 발걸음만 더 떼어 내게로 다가오라는 말씀을 행동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사람들은 빵을 많게 하는 표징을 기적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여러 가지 구구한 해석을 시도합니다. 그 해석방법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초대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기적입네 상징입네 하는 주장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신비입니다. 이제 우리는 용어마저 바꾸어 사용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언어는 인간 사고의 수단이라고 정의하는 세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원하는 정확한 용어를 사용해야 오해가 생기지 않습니다.

 기적은 가끔 일어납니다. 치료를 포기 했던 암환자가 놀랍게 건강을 회복하는 일이 기적입니다. 그러나 그 기적은 기적으로 머물 뿐입니다. 신비는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만, 이해가 가능한 진리입니다. 예를 들면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 진리는 아닌 것처럼, 기적은 하나의 사실이지 진리는 아닙니다. 이렇게 보면 빵을 많게 하는 표징은 기적이며 동시에 신비입니다. 그 표징을 직접 체험한 증인들이 전하기 때문입니다. 신빙성 있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서 6장에서 군중들이 그 기적을 체험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여 그들을 쫓아낸 형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을 하신 이유는 그 사건을 일회적인 이벤트로 치부하는 것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수난하시고 죽으셨으며 부활하신 이후에 예수님의 삶 전부를 살아있는 실제로 받아들이길 원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과거가 아니라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랑의 행위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만큼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스스로 파악하고 있는’ 그대로를 이해하시고 헤아려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런 예수님의 깊은 사랑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빵을 많게 하는 표징을 하나의 이벤트로 볼 것이냐 아니면 사랑의 말씀이라고 받아들이느냐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 선택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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