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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숨은 여유입니다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13 조회수583 추천수9 반대(0) 신고
 
 
 

한숨은 여유입니다 - 윤경재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마르 7,31-37)



 우리나라 사람들은 축구를 무척 좋아합니다. 국가 대항전이라도 있는 날에는 모두 그 경기에 집중합니다. 2002년 월드컵에서 맛보았던 4강 신화의 감격은 아직도 우리 가슴을 울렁이게 합니다. 스페인을 꺾고 4강에 든 날 온 나라가 들썩였고 시청 앞 광장은 열광한 시민들로 넘쳐났으며 길거리로 몰려나온 차량은 경적을 울려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길거리에 휴지 조각 하나 뒹굴지 않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었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과 우리 자신에게 멋진 코리아의 이미지를 심어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과 선수들이 준비를 충실히 한 덕분이었지만, 거스 히딩크 감독이 보여준 통솔력은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그를 대통령으로 모시자는 유머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한국 축구가 안고 있는 병폐와 장점을 정확히 진단했으며 그 처방대로 선수단을 조련하고 이끌었습니다. 월드컵 이후 모든 스포츠계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장기적 훈련방법이나 선수단 통솔방법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그만큼 그가 보여준 지도력은 과학적이고 통찰력이 넘쳤습니다.

 그가 진단한 몇 가지 병폐는 이방인이 아니면 깨닫지 못할 우리의 속성이었습니다. 어쩌면 민족성이라고까지 부를 수 있었습니다. 제게 인상깊이 남아 지금까지 기억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첫째 체력이 약하다는 지적입니다. 이 말을 듣고 모든 사람이 놀랐죠. 그동안 축구 전문가들은 체력보다 기술이 모자란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었죠. 전 선수가 한 유기체처럼 움직여야 하는데 체력이 달리면 토탈사커를 제대로 못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지칠 줄 모르고 뛰는 박지성 선수를 발굴한 공로가 그 좋은 예입니다. 그는 지금도 선진 축구 무대에서 통합니다. 둘째 운동장 안에서 소통이 부족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고참 선수가 무섭고 어려워 이름을 부르지 못해서 패스 타임을 놓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연습할 때부터 형이라는 호칭을 부르지 못하게 하고 반드시 이름만 부르게 했답니다. 공을 달라거나 상대 선수가 쫓아간다는 지시를 꼭 소리 질러 알리게 하였답니다. 침묵하면서 경기하다보니 팀 전술이 약해졌다는 진단이었습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을 강조했습니다. 다행히 이 점은 우리 선수들의 장점이었습니다. 한때 오대영이라는 오명을 들었던 우리 축구 대표선수단이 결국 4강 신화를 창조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람은 반벙어리였습니다. 그는 소리를 들을 수 없어 말 배울 기회가 없었습니다. 나름대로 소리를 내었지만, 남들은 명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와 오래 살아온 사람이라야 겨우 몇 마디 알아들었습니다. 눈치로 때려잡아 겨우 소통했을 것입니다. 무척 답답했을 겁니다. 마치 옛날 축구대표팀이 패스미스를 자주 범해서 답답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어느 사제께서 쓴 묵상글이 떠오릅니다. 외국 봉쇄수도원에서 생활할 때 세탁장에서 노동했었는데 함께 일하던 수도자가 나이 어린 외국인이라서 곧잘 자기가 하자는 대로 따랐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그런 사람이 좋았으나 어느 날 그 사제는 자기가 그 수도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저 사람 좋은 성격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자기 의견만 내세웠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 그 후 사제는 그 수도자에게 매사에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의견을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반색하며 이런저런 속마음을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그 사제는 마음을 열지 못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이 대목 묵상을 썼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피상적 대화는 하지만 영적인 귀가 닫혀 서로 깊은 교류가 일어나지 못하는 경험을 자주 합니다. 그래서 서로 오해하기도 상처받기도 합니다. 특히 기도를 하느님과 대화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기도를 무척 어려워하곤 합니다. 들으려 하지 않고 내 목소리만 내질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병자를 치유하실 때 취한 모습을 우리는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한숨을 내쉬었다.”라고 분명히 적어 놓았습니다. 바로 아빠 하느님과 소통하시는 모습을 제자들은 그렇게 받아들이고 표현한 것입니다. 하늘을 우러르는 모습은 하느님께 영광을 구하는 자세이며, 아버지의 뜻대로 치유가 일어나기를 청하는 태도입니다.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혹시나 인간의 뜻은 아닌지 여쭈어 보는 자세입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하고 숨을 내쉬셨습니다.

 한숨은 여유입니다.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효과도 있습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모든 것을 정리하고 통찰하는 힘을 줍니다. 깨어 자신을 바라볼 능력을 충전합니다. 선사들은 자기 호흡을 바라보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도 매사에 한숨을 쉬면서 여유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게다가 하느님의 뜻까지 먼저 살핀다면 우리도 한 발짝 주님께 다가서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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