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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귀를 막아야 들린다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12 조회수716 추천수10 반대(0) 신고

 

 

 

연중 5주간 금요일 - 귀를 막아야 들린다

 

저는 일반 대학교를 다니다가 신학교에 들어갔기 때문에 친한 대학 친구들도 몇몇이 있습니다.

지금은 모두 결혼하여 직장들을 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고 신학교를 가겠다고 하니까 다들 매우 놀랐었습니다.

대학 다닐 때는 항상 몰려다니며 술도 마시고 재밌게 놀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신학교 들어간 이후에 만났을 때는 서로 이야기하는 소재들이 다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하느님에 대해 말하고 싶었지만 그들은 여자와 주식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제가 사제가 되어 만날 때 그들은 저를 단란주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한 친구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갔는데 그들은 함께 술을 마실 도우미들을 능숙하게 골랐습니다. 마치 시장에서 물건 고르듯이 여자들이 줄지어 들어와서 서 있으면 마음에 드는 파트너를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팀이 지나갔고 거기 자주 오던 한 친구는 마담을 부르더니 숨겨 논 에이스를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도저히 그런 모습을 보며 더 있을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친구가 도착하여 저는 그 친구와 인사만 하고 바쁜 일이 있는 것처럼 그 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이젠 저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즐길 소재거리도 공통되는 게 없구나!’

그리고는 연락이 점점 단절되고 지금은 거의 연락을 못 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서로 각자 접하며 사는 것들이 다르기 때문에 할 이야기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제가 가정생활이나 주식에 관해 할 이야기가 없는 것처럼 그들도 하느님에 대해 할 이야기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귀머거리-벙어리를 고쳐주십니다. 저는 어렸을 때 벙어리가 되는 것이 귀가 들리지 않기 때문이란 것을 알고 놀랐었습니다.

‘아! 말하지 못하는 것이 듣지 못해서구나!’

예수님은 말을 할 수 있도록 당신 침을 바른 손가락을 벙어리 혀에 대십니다. 이 행위는 벙어리가 혀가 풀려 말을 할 수 있도록 당신의 성령님을 혀에 넣어주시는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예수님의 몸에서 나오는 물은 항상 생명수, 즉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을 통해 하는 말들은 가치 있는 말들이고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영적인 힘과 가치가 있습니다.

구약에서 요나가 사십일이 지나면 그 큰 니느웨가 잿더미가 된다고 말하자 이방인들이고 이스라엘 적국의 수도였던 니느웨 사람들 모두가 회개하였습니다. 이렇게 같은 말이라도 영적인 말은 큰 힘과 가치가 있지만 영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는 말은 아무 가치도 없고 어떤 때는 사람들에게 상처까지도 주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하시는 말과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하는 말의 차이는 바로 그 영적인 차이에서 기인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많은 말들을 하고 살지만 주님께서 기뻐하실 말을 과연 하루에 몇 마디나 하면서 살고 있을까요? 어쩌면 하루 동안 한 말 중에 가치 있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결국 벙어리의 모습입니다. 말만 많이 한다고 해서 벙어리가 아닌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벙어리는 영적인 말을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세상에 살며 세상적인 이야기만 하고 자신의 이야기들만 한다면 결국 영적인 벙어리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영적이고 가치 있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그 혀를 풀어주시기 위해 먼저 하신 것이 그 사람을 사람들로부터 떨어뜨려놓고 두 손가락으로 귀를 막는 일이었습니다. 어제 ‘왜 귀와 입을 열어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그 사람의 귀를 막는 행동을 하셨을까?’를 차를 타고 가며 묵상하다가 제 손으로 저의 귀를 막아보았습니다.

갑자기 차 소리도 사람 소리도 안 들리며 고요해졌고 더 크게 들리는 것은 내 자신의 목소리였습니다. 아주 작게 이야기해도 내 귀를 막고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은 안 들려도 자신에겐 크게 들립니다.

예수님께서 혀를 풀어주시기 이전에 하신 일은 바깥에서 들려오는 온갖 소리들을 먼저 막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자신의 소리는 물론 내면에서 오는 하느님의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밖에서 오는 온갖 소음 때문에 사실은 하느님의 소리와 내 양심의 소리까지도 듣지 못하고 있었고 그래서 영적인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듣는 것을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들어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귀와 눈을 계속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혹은 사람들과의 우스갯소리들로만 채운다면 입에서 나오는 말들도 결국 그것들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하루에 다만 몇 분이라도 세상 것에 귀를 막고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그러면 저절로 혀가 풀려 힘 있고 가치 있고 그래서 영원히 남을 말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로마에 유학 중이신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복음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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