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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 2.9,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09 조회수1,028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2.9 연중 제5주간 월요일
                                                            
창세1,1-19 마르6,53-56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자기 무덤을 파는 신자본주의 문명입니다.

무절제한 탐욕에 의한 외적 개발과 성장에 몰두하다 보니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은, 하나뿐인 지구는 망가져 가는 현실입니다.
 
버려지는 쓰레기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나라 곳곳에 생겨나는 신도시들과 수없이 솟아나는 고층 건물들,
저에게는 창세기 바벨탑 도시처럼 느껴집니다.
 
자연이 죽으면 사람도 죽습니다.
 
자연도 살고 사람도 사는
가난과 단순 소박한 절제의 삶이 절박해지는 시대입니다.

창세기 1장의 읽을 때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라는 말마디가 참 기분이 좋습니다.
 
새로 번역된 성경에는 ‘참’ 이 빠져 영어 성경을 찾아보았더니
감탄문 형식(God saw how good it is)으로 돼있어
‘참 좋았다.’ 번역이 합당하다는 생각입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오늘 강론의 제목입니다.
 
 이 말씀이 모든 분별의 잣대입니다.
 
‘사람들이 보니 참 좋았다.’의 사람 잣대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의 하느님 잣대입니다.
 
과연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은
세상이요 자연이요 우리나라요 우리사회요 우리공동체요 우리의 삶인지요?

무엇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은 모습일까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본연의 모습을 지닐 때, 살 때입니다.
 
아침성무일도 독서 시
다음 바오로의 말씀도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은 모습임이 분명합니다.

“말없이 일해서 제 힘으로 벌어먹도록 하십시오.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선한 일을 하십시오.”

이 또한 하느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아름답고 거룩한 모습입니다.

오늘 창세기 서두 말씀이 의미심장합니다.

‘하느님께서 한 처음에 하늘과 땅을 창조하실 때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으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위를 감돌고 있었다.'

어둠 속의 심연(kaios)은
결코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모습일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창조 활동을 통해 이루어진
질서(cosmos)와 균형(balance)이 잡힌 조화(harmony)로운 세상이
바로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은 모습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오늘 창세기의 하느님 창조 활동을 통해 계시되는 진리입니다.

공동체 역시 각자 주어진 영역과 자리에서
그 역할에 충실할 때 전체와 조화와 균형을 이룬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은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이래서 공동체에 규칙서와 관례서가 있고 일과표가 있어
탐욕을 절제하고 나태에서 벗어나
질서와 균형이 잡힌 조화로운 삶을,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은 삶을 살게 해 줍니다.
 
바로 이게 수행생활의 요체이자 영성훈련의 내용입니다.
 
질서가 무너질 때의 무법과 무질서의 혼란한 세상이나,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로 인해
사회의 균형과 조화가, 또 무분별한 자연 개발로 인해
생태계의 균형과 조화가 깨질 때 초래하는 결과 역시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세상일 수 없습니다.

인간의 무절제한 탐욕과 나태로 인해
자연의 질서가, 삶의 질서가 무너지고
균형과 조화가 깨질 때 자연도 공동체도 개인도 병들기 마련입니다.
 
오늘날 무절제한 개발과 만연된 병들,
바로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은 세상이 아니라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은 분이십니다.
 
창세기에서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감돌았듯이,
오늘 복음에서 어둠 속 세상에서
‘하느님의 영’이 되어 구원 활동을 펼치시는 주님이십니다.
 
창세기에서는 하느님의 창조 활동을 통해,
복음에서는 주님의 구원활동의 재창조를 통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은, 창조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창조와 구원이 별개가 아닌, 하나이자 둘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은 당신 구원활동을 통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은 세상으로, 사람으로 재창조하십니다.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시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주님을 터치(touch)함으로
육신의 치유뿐 아니라 전인적 치유의 구원을 받아,
창조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주님의 말씀과 성체를 통해
주님을 터치하고 모심으로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은, 창조 본연의 우리로 회복되는
은총의 미사시간입니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께서 해 주신 일 하나도 잊지 마라.”(시편103,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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