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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을 향하는 삶" - 2.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08 조회수542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2.8 연중 제5주일                                      
욥기7,1-4.6-7 1코린9,16-19.22-23 마르1,29-39

                                                    
 
 
 
"하느님을 향하는 삶"
 


중심의 방향을 잃었을 때 방황이요 혼란입니다.

중심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세상 같습니다.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정치요 경제요 교육이요 우리의 삶 같습니다.
 
꿈과 비전을, 희망과 가치관을 잃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방향을 잃어버렸을 때
득세하는 탐욕이요 날로 황폐해지는 마음입니다.
 
무수히 발생하는 몸과 마음의 질병들입니다.

도대체 점점 바라볼 곳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보고 배우는, 보고 자라는 사람들인데
바라 볼 아름다운 자연도,
바라 볼 훌륭한 사람들도 점차 사라져가는 세상입니다.
 
하느님을 잊은 업보요 전통과의 단절로 인한 결과입니다.

왜 사는 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지 자주 성찰해야 합니다.

삶의 방향,
삶의 의미,
꿈과 비전,
희망 모두가 가리키는 대상은 두말할 것 없이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다는 것,
바로 하느님 방향을 향해 살아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느님을 찾아야 합니다.

매일이 안 되면 주일이라도 꼭 하느님을 찾아
주일 미사에 참석해야 합니다.
 
하느님만이 우리 삶의 목표요, 삶의 방향이자 삶의 의미입니다.
 
우리의 꿈이자 비전이요 희망입니다.
 
그러니 이런 하느님 찾는 공부보다 더 중요한 공부는 없습니다.
 
학교 공부, 세상 공부에 앞서
하느님 공부부터 시키는 공부가 지혜로운 부모입니다.
 
돈 맛을 알기 전 하느님 맛부터 맛들이게 하는 것입니다.

살기위하여 하느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느님 잊어버리면 꿈도 비전도 희망도 사라져
곧장 허무와 무의미의 어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어둠 속에 빛나는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 있는 무수한 사람들이
빛이신 주님을 향해 몰려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 들었다.’

인생고해라는 말이 실감나는 오늘 복음의 장면입니다.
 
세상 어둠의 세력에 포위되어 있는 빛의 주님 같기도 합니다.
 
절망의 어둠 중에 희망의 주님을,
죽음의 어둠 중에 생명의 주님을 찾아 온
몸과 마음이 망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대로 주님을 찾아
이 거룩한 미사에 참석한 우리들의 모습 같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들을 고쳐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주님과의 만남으로 치유 구원되어 참 나를 찾은 사람들입니다.
 
꿈과 비전을, 희망을 삶의 의미를 찾은 사람들입니다.
 
주님을 떠날 때 파생되는 온갖 몸과 마음의 병들이요,
주님께 나아갈 때 치유되어 구원되는 사람들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을 떠나면
온갖 유혹과 병마에 몸과 마음은 망가지기 쉬울뿐더러
급기야 야수나 악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길 잃어버리지 않고 살 길은 기도뿐입니다.
 
세상에 몰두하여 빠져 살다보면 세상 것들에 중독되기 십중팔구입니다.
 
복음의 예수님 얼마나 분주한 하루입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일 중독자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분주한 삶 한복판에는 영혼의 쉼터가 있었습니다.
 
세상 사막의 한가운데에 관상의  오아시스가 있었습니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 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예수님 활동의 한 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관상의 샘,
외딴 곳의 기도처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이런 기도처가 기도시간이 있습니까?
 
밤에는 하느님과 소통의 기도로 하느님의 힘과 영으로 충전시키셨고,
낮에는 그 하느님의 힘과 영으로 이웃과의 소통하며
병들고 마귀들린 이들의 치유에 전념하셨던 주님이셨습니다.
 
밤에는 하느님과 소통의 관상기도,
낮에는 이웃과 소통의 사랑 나눔 활동,
바로 이게 균형 잡힌 건강한 영성생활입니다.

1독서의 욥 역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한계 상황 속에서의 욥의 탄식과 절규
그대로 하느님께 올리는 기도입니다.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요,
  그 나날은 날품팔이의 나날과 같지 않은가?~
  그렇게 나도 허망한 달들을 물려받고, 고통의 밤들을 나누어 받았네.
 ‘누우면 언제 일어나려나?’ 생각하지만
  저녁은 깊어가고 새벽까지 뒤척거리기만 한다네.
  나의 나날은 베틀의 북보다 삐르게, 희망도 없이 사라져 가는 구나.”

살다보면 욥처럼 삶의 고통과 좌절, 시련과 고뇌, 허무로
불면의 밤을 지새운 적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결코 여기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죽음과 절망의 어둠에서
생명과 희망의 빛이신 하느님께로 뛰쳐나옵니다.

“기억해 주십시오.
  제 목숨이 한낱 입김일 뿐임을.
  제 눈은 더 이상 행복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느님께
제발 이 가난한 실존을 기억해달라는 욥의 간절한 기도입니다.


하느님의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세상의 종이 아닌 하느님의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기도가 하느님의 겸손한 종 되어 살게 합니다.
 
세상의 종으로 살 때 말 그대로 세사에 매인 부자유의 종이지만
하느님의 종으로 살 때 진정 자유인입니다.
 
방종의 자유가 아니라 주님의 종 되어 살 때 자유입니다.
 
바로 종의 자유, 여기 역설의 진리가 있습니다.
 
참 자유를 추구하는 이들의 모범이 바로 바오로 사도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
 
주님의 종, 복음의 종일 때
비로소 모든 이의 종으로서의 자유인임을 깨닫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자유롭습니까?
 
주님의 종이냐 세상의 종이냐, 둘 중 하나입니다.
 
주님 때문에, 복음 때문에 모든 이들의 종이 되어
봉사하며 사는 이가 진정 자유인이요 주님의 종입니다.
 
우리의 영성이 있다면
주님께서 몸소 모범을 보여주신 종(servant)으로서
섬김(service)의 영성 하나뿐이요,
참 자유에 이르는 길 역시 이 길 하나뿐입니다.


평생 구도자 되어 하느님을 찾는 공부에 전념하십시오.

하느님 공부 보다 더 중요한 공부는 없습니다.
하느님을 잊어버려 자기를 잊어버려
허무와 무의미요 방황이요 혼란입니다.

평생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건강한 영혼, 육신으로 살기위해
하느님과의 소통의 기도시간은 필수입니다.
 
기도해야 하느님의 힘과 영으로 충만한 삶입니다.
 
믿음, 희망, 사랑이 충만한 삶입니다.

하느님의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래야 세상의 노예 되어 살지 않습니다.
 
역설적으로 하느님의 종으로 살 때
세상 탐욕의 유혹에서 벗어난 자유인의 삶입니다.


오늘도 이 거룩한 주일 미사를 통해
우리를 섬기러 오시는 주님은
우리의 길을 밝혀주시고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충만케 하시어
당신의 자유로운 종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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