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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의 집을 사랑함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7-02 조회수1,828 추천수1 반대(0) 신고

 

예수님의 집을 사랑함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의 집을 사랑함

"나는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마태오 28,20)

감실 안에서의 예수님의

신성한 현존은 항상 성인들의

한없는 경외(敬畏)와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주님께

속하는 것들"(1코린토 7,32)에

대한 그들의 지극히 정성스럽고

순결한 사랑의 배려(配慮)는

그들이 가졌던 크나큰 사랑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으로 인하여

그들은 아무런 주저함도 없었으며,

예절의 아주 단순한 부분까지를

포함하여 모든 것을 지극히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와 성 알퐁소는

이를 위하여 그들의 생명까지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선언하였다.

거룩함과 단정함

우리는 성인들로부터 예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분께서 "거주하시는 장소"

 (마르꼬 11,17)인 거룩한 감실과

제대와 성당을 사랑에 찬 배려로

감싸는 것이다.  모든 것에

단정함의 분위기가

배어있어야 하며,

모든 것이 신심과 흠숭의

정신을 북돋아주어야 한다.

아주 작은 일들에까지,

세부 사항들에 있어서까지

그래야 한다.
"영광의 왕"(시편 23,10)을

 사랑하고 공경하는 일이라면

아무리 해도 부족할 것이다.  

전에는 미사 때 사제가

손씻는 물에 향수를 탔었다.

더군다나,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성사를 설립하실 때

훌륭하고 아름다운 장소,

즉 가구가 갖추어져 있고

양탄자가 깔려있는 큰 식당이었던

다락방을 선택하셨다 (루카 22,12).

 성인들은 항상 하느님의 집을

아름답고 잘 정돈되게 하기 위하여

전적인 열정을 바치고 머리를 썼다.

왜냐하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가르쳤듯이, 먼저 예수님의

실제 몸을 돌보고 그 다음에

그의 신비체를 돌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선교 여행을

다니면서 더러운 성당들을

청소하기 위하여 빗자루를 들고 다녔다.  

성인은 사람들에게 설교한 후,

 그 지방의 성직자들에게 주님의

집이 경건한 모습을 갖추도록

열심히 노력할 것을

간절히 부탁하였다.  

성인은 성녀 클라라와 동료

수녀들에게 제대포를

만들도록 하였다.  

그의 빈곤에도 불구하고,

성인은 가난하고 초라한

성당들에 성합과 성작과

제대포를 보내주었다.

성 베드루 쥴리안 에이마르가

초라하고 버려진 성당에서

성체 조배를 할 때 너무나

슬프게 느꼈기 때문에 조배가

끝난 후에 이렇게 외쳤다.  
"오, 예수님을 이렇게 초라하게

모시자니 너무나 힘이 드는구나!"

성 요한 바띠스뜨 드 라 살(

St. Jean Baptiste de la Salle)

의 생애를 보면, 성인은 성당이

항상 깨끗하며 잘 갖추어져 있고,

제대는 빈틈없이 정돈되어 있으며,

성체등(聖體燈)은 항상 켜져있도록

하였음을 볼 수 있다.
더러운 제대포라든가,

찢어진 제의, 녹슬은 제기들은

그의 눈을 아프게 하였으며

그의 가슴은 더욱 아프게 하였다. 

 성인은 우리 주님을 바로

흠숭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떤 비용이라도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십자가의 성 바오로는 제대에서

 쓰는 모든 것들이 조금이라도

하자(瑕疵)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떄문에 하루는

 미사를 위해 준비되었던

성체포를 두 번이나 제의실로

되돌려보냈다.

성체를 특별히 사랑했던

왕들 중에는 보헤미아의 왕

성 웬체슬라우스가 있었다.

  면병을 만들기 위하여 그는

 손수 땅을 갈고, 밀씨를 뿌리고,

수확을 하고, 빻고, 체로 쳤다.  

그렇게 만든 깨끗한 밀가루로

그는 미사성제를 위한

면병을 만들었다.  

프랑스의 왕비였던

 성녀 라데군드는 나중에

겸허한 수녀가 되었으며,

미사를 위한 면병을 직접 만들었다.

그리고 면병을 가난한 성당들에

무료로 보내주었다. 성녀 원선시아

제로사는 포도밭을 직접 가꾸어서 주

님의 성혈이 될 미사주를

만드는 일을 기쁨으로 하였다.

성모님의 손으로

성체를 다룸에 있어서의 성인들의

섬세한 배려를 생각해보자.

그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성체 조각에까지도 예수님께서

현존하심에 대하여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비오 신부가 제대에서

성반(聖盤)과 성작,

성합 등을 얼마나 정성스럽게

닦는지 사람들은 그의 얼굴에서

흠숭을 읽을 수가 있었다.

한 번은 리지외의 성녀 테레사가

 미사 성제 후에 성반 위에 작은

성체 조각이 남아있는 것을 보고서

즉시 수녀들을 불러서 참으로

 천사와 같은 경건한 태도로 함께

제의실까지 성반을 들고 거동하였다.

 성녀 테레사 마가렛이

성체 조각이 제대 부근 마루에

떨어져있음을 발견했을 때 성녀는

예수님께 드려진 불경을 생각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사제가 와서 성체 조각을

감실 안에 모실 때까지

꿇어서 흠숭하고 있었다.

성 챨즈 보로메오가 성체를

분배해주고 있을 때였는데,

잠깐의 실수로 성체를 떨어뜨렸다.

성인은 예수님께 큰 불경을

드린 데 대한 죄책감으로 나흘 동안

미사 성제를 드릴 용기를

내지 못하였다.  

그리고 보속으로 8일간 금식하였다.

성 프란시스 사비에르는 성체를

분배해주면서 가끔 흠숭의 정이

너무나 강하여 무릎을 꿇고서

성체를 분배해주었다

 천국에 합당한 신앙과 사랑의

광경이 아닐까?

우리는 성인 사제들이

성체 성사를 다룸에 있어서

얼마나 사려깊은 주의를

기울였는지를 볼 수 있다.

그들은 성모님의 손처럼 티없는

동정의 손을 가지기를 원했다. 

 콘스탄스의 성 콘라드의

엄지 손가락과 인지가

 어두운 밤에는 빛이 났다. 

 그 두 손가락으로 예수님의

거룩하신 몸을 들고 있을 때

그가 지녔던 신앙과 사랑 때문이었다.

탈혼 중에 천사처럼 날아다녔던

꾸뻬르띠노의 성 요셉은 엄지와

인지가 따로 한 쌍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였다.  

그 이유는 그 두 손가락들은

예수님의 거룩하신

몸을 만지는 데에만

사용할 수 있기 위해서였다.

삐에트렐치나의 비오 신부는

가끔 거룩한 면병을 그의

손가락 사이에 들려고 할 때

많은 곤란을 겪었다.  

그는 자신이 성체를 만지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손에 성흔을 받아있었다.  

요사이 거의 모든 곳에서

 시행되고 있는, 혀 위에가 아니라

손으로 성체를 받는 방식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은 무엇일까?  

너무나 겸손했고 천사와 같았던

 성인들에 비해보면, 그 방식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제시되는

이유들은 무게를 잃는 것 같다.  

어떤 때에는 가슴 아픈 일로 인식된다.

 그 방식 자체가 주제넘은 도둑질같은

행위임을 의미하지 않을까?

여성의 옷차림

성당 안에서의 단정함과

영혼들의 구원을 생각하여

성인들은 여성들의 정숙과

품위에 대해 대단히 많은 신경을 썼다.  

이 점에 대한 엄격함은

모든 성인들의 공통점이었다.  
여인들에게 베일을 쓰라고

 명했던( 1코린토11,5-6 )

 성 바오로 사도로부터 시작하여

성 요한 크리소스톰,

성 암브로시오,.......그리고

삐에트렐치나의 비오 신부에게

이르기까지 그들은 타협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항상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정숙한 옷을 입도록 강조하였다.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카스텔누오보의 성 레오폴드는

 정숙하지 않게 옷을 입은 여자들을

 "육체를 파는 이들"이라고 부르며

성당 밖으로 내쫓았다.

성인이 오늘날 성당 안에서조차

정숙과 품위를 포기해버린 수많은

여인들을 보고 무엇이라고 말할까?  

그들은 성령께서 우리를 경고하시는

(집회서 9,9) 남자를 육욕으로

유혹하는 악마적인 수단을 거룩한

장소에서조차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정의는 이러한 심한

 광기와 불결을 벌하지 않고 그대로

두지 않으실 것이다. 성 바오로는

"이러한 것들(육욕에 관한 죄)로

 인하여 하느님의 진노가

 불신자들의 자녀들 위에 내린다"

(콜로새 3,6)라고 하였다.

성인들은 항상 그들의 표양과

 말로써 우리들이 성당에 들어갈 때

성수를 찍어 경건히 십자 성호를 긋고,

 존경스럽게 장궤를 하며,

무엇보다도 제대 주위를 에워싸고

항상 지키고 있는 천사들과 성인들과

함께 성체성사에 계신 예수님을

흠숭하는 아름다움 습관을

지키도록 권고하고 있다.  

우리가 기도드리기 위하여

 성당에 들렀다면, 우리는

자신을 경건하고 주의깊게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되도록 성체 성사에

가까이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복자 요한 던스 스코투스는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인성으로부터 발하는 신체적인

 영향력이 그분의 몸과 피에

가까이 갈수록 더 강함을 보여주었다.  

성녀 젬마 갈가니는 어떤 때에는

감실이 있는 제대에 더 이상 가까이

갈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더 가까이 가면 성녀의

가슴 안에서 불타오르는 사랑의 불이

너무나 뜨거워져서 가슴 위의 옷을

태워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모자 위의 못

성 프란시스 드 살레즈가

성당에 들어가면서 성수를 찍어

십자 성호를 긋고, 장궤를 하고

감실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본 사람은 누구든지

"바로 저분이 하시는 것이

 천국에서 천사들과 성인들이

 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라고 하는

말이 옳음을 인정할 것이다.

한 번은 스코트랜드의 한 왕자가

 친구에게 말했다.  "만약 네가

천국의 천사들이 어떻게

기도하는지를 보고 싶으면,

 성당에 가서 마가렡 왕비께서

제대 앞에서 자녀들과 함께

기도하시는 것을 가서 보아라,"

라고 하였다. 모든 바쁘고

분심많은 이들은 복자 루이 과넬라의

다음과 같은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절대로 성당을 복도나,

 뜰이나, 길거리나, 광장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성 원선시오 드 폴은 성체 앞에서

 꼭두각시처럼 장궤하지 말도록

사람들에게 슬픈 어조로 충고하였다.

모쪼록 성인들의 이런 표양들과

가르침들이 우리들에게 헛되지 않기를!
성 필립 네리의 생애 중에 있었던

 일을 회고하는 것이 우리들이

결심을 하고 그 결심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루는, 성인이

성당 앞을 급하게 지나가는 남자를

멈추게 하여 이렇게 물었다.
"여보세요.  거기 못이

왜 달려있습니까?"
그 남자는 놀라서 대답했다.

"무슨 못 말이요?"

예, 거기 있는 못 말입니다.  

당신 모자 위에 있는. . ."
그 사람은 모자를 벗어들어 보고

또 보았다. . . 그러나 못은 없었다.
성인은 친절하게 다시 말하였다.  

"미안합니다.  그 모자를 당신 머리에

부착시키는 못이 굳게 박혀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문에 당신이

늘 성당 앞을 지나가면서

모자를 벗지 않는 것이 아닌가요?"
그 남자는 알아들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는

성당 앞을 지나갈 때

모자 벗는 것을 잊지 않았다.

"꽃들아, 너희들은 행복하구나. . ."

우리는 복음서에서 아름답고

 향기로운 신심깊고 사랑에 찬

행동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그것은

 베타니아의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성녀 마리아 막달레

나가 했던 행동이다.  
그녀는 "값비싼 향유가 든

 알라베스터 병을 들고 예수님께

접근하여 그분께 향유를 부었다"

 (마테오 26,7).  

거룩한 감실을 감미로운

향기로 둘러싸는 것은

우리가 항상 아름답고

향기로운 피조물,

꽃들에게 맡기는 임무이다.

성 알퐁소 마리아 드 리구오리는

 향기로 감실을 에워싸고 오로지

예수님을 위하여 자신들을

전부 바치고 있는 꽃들에 대한

자신의 기쁨과 부러움에

대하여 노래하였다.
"꽃들아, 너희는 행복하구나. 

 밤과 낮 항상 나의 예수님 곁에

 머물며, 너희 삶이 다할 떄까지

떠나지 않으니 너희는 항상

그분과 함께 지낸 것이 되겠구나!"  

그리고 성인은 감실 주위를

꽃으로 꾸미는 데 있어서

누구 못지않게 열심하였다.

토리노의 대주교가 하루는

 "천주 섭리의 작은 집"에 있는

 성당을 방문하였는데,

제대가 꽃으로 장식되었고

향기를 뿜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나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성 요셉 꼬똘렝고에게 물었다.
"오늘 무슨 축일입니까?  

성인은 대답했다.  "오늘 무슨

특별한 축일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 성당 안에서는

항상 축일입니다."

성 프란시스 디 제로니모는

 제대를 위한 꽃을 키우는

임무를 맡아있었는데, 예수님께

드릴 꽃이 없는 날이 없도록

어떤 때에는 기적적으로 꽃들이

자라나 피기도 하였다.

"예수님을 위한 꽃" - 이 얼마나

아름다움 풍습인가!  예수님께

사랑을 표시하는 이 풍습을 잊지 말자.  

약간의 비용은 들겠지만,

예수님께서는 "백배로" 갚아주실 것이다.  

그리고 제대 위에 놓은 꽃들이 그들의

 아름다움과 향기로써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이 그분과 함께 있음을

표현해줄 것이다.

그러나 이 풍습에 관하여

더 많은 의미가 있다. 

 성 아오스딩은 그가 살던 시대의

경건한 풍습에 대하여 말해준다. 

 미사 성제가 끝난 후 신자들은

제대에 놓여있던 꽃들을 얻으려고

경쟁을 하였다.  그들은 그 꽃들을

집으로 가져가서 귀중하게 꽂아놓았다.  

왜냐 하면 그 꽃들은 미사 성제 동안

제대 위에서 예수님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녀 제인 프란체스 드 샹딸도

예수님께 신선한 꽃들을

가져오는데 지극히 열심하였다. 

그리고 감실 옆의 그 꽃들이 시들기

 시작하면 성녀는 그 꽃들을

 자기 방으로 가져가서

십자 고상 밑에다 놓아두었다.  

누가 사랑할 때 어떻게 하는지를 보라!  

우리도 그들을 배우고 그들처럼 하자.

(성체 성사의 예수님께 대한 사랑)

*~*~*~*~*~*~*~*~*~*~*~*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성인의 통공 안에 있는

가족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요셉께 사랑을!
(
http://예수.kr http://마리아.한국)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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