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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른 이가 되어 나가라 [감곡 성당 김웅열 토마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23 조회수775 추천수7 반대(0) 신고
                                                                   

                 매괴 성모 순례지 김웅열 신부님

 
 
다른 이가 되어 나가라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찬미예수님

세례를 받은 후에 신자들이 대개는 두 가지의 모습으로 나누어집니다.

첫 번째가 종교인

두 번째가 신앙인

그럼 과연 나는 현재 어디에 속해 있을까?

종교인일까?

아니면 신앙인일까?


성서에 나오는 종교인과 신앙인을 구분하는 몇 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거기에 기준해서 세례 받은 지 20년 되었건, 50년이 되었건, 60년이 되었건 때로는 사제로 살건,

수녀로 살건, 주교로 살건.....사제로 살면서도 종교인으로 사는 사제가 있고 때로는 주교로 살면서도

종교인 주교가 있고 신앙인 주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세례 받은 햇수가 몇 년이 되었느냐?

어떤 위치에 올라 있는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종교인과 신앙인은 세 가지 기준에 의해서 갈라집니다.

첫 번째가 감사입니다.


종교인은 감사할 일이 생겨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감사라는 말을 하는 것을 떠나서 불평불만이 훨씬 더 많습니다.


신앙인은 아직 결과가 손에 잡히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미리 당겨서 감사합니다.


성지에 치유받기 위해서 여기 성모엄마 집에 와서 미사 드리면서

“주님, 저 치유 되었습니다.”

하고 감사하면서 나가는 것이 신앙인입니다.

감사할 건덕지가 없는데도 감사할 것을 찾아내고야 마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이 감사로 코팅이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허구헌날 불평불만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종교인입니다.


불평불만이 있는 곳에는 마귀들이 들끓을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마귀는 그 말을 하는 사람 앞에서는 꼬리를 감추고 도망갑니다.


그러나 온통 보물덩어리, 감사할 것에 살면서도 일년내내

감사한다.’ 라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 불평불만으로 한해를 시작해서

불평불만으로  한 해를 끝내려고 하는 사람들을 종교인이라고 그럽니다.


내 입에서 감사하는 말이 나오는 사람이냐!

불평불만의 소리가 더 나오고 있느냐!

하는 것이 내가 신앙인이냐? 종교인이냐? 하는 첫 번째 기준일 겁니다.


이 김신부의 입에서도 감사한다는 말보다 불평불만이 더 많이 나왔다면

저도 올 한해는 종교인으로 살았지, 신앙인으로 살지 않은 겁니다.


두 번째 기준은 교만입니다.

종교인은 자신이 교만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늘 눈금도 맞지 않는 잣대를 가지고 이웃을 잽니다.

본당 신부를 재고, 본당수녀를 재고, 나아가서는 하느님을 재고, 자기 구역반원들을 재고,

같은 레지오 단원을 재고, 시누이를 재고, 며느리를 재고, 부모를 잽니다.


신앙인은 자기가 교만한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고치려고

하느님께 간절히 은혜를 청합니다.


세상에 교만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교만합니다.

하지만 신앙인은 교만한 자기 꼬라지를 알고 늘 자기 복장을 때립니다.

고백의 기도 할 때만 가슴을 치고 ‘내 탓이오! 내 탓이오!’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찢고 눈물로써 겸손하게 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종교인은 이론적으로는 ‘교만하게 살면 안돼!’

하고 머릿속으로는 생각하지만 그 교만을 부수기 위해서 희생을 바치거나

기도해 본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종교인과 신앙인을 구분 짓는 기준은 교만입니다.


세 번째는 영적 열매입니다.

신앙인은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피정 7시간 동안 그 많은 좋은 이야기 중에 적어도 한 가지만이라도 꽉 잡고 가서

열매를 맺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종교인들은 듣기는 많이 듣고 배우기는 많이 배우는데 열매를 맺을줄 모릅니다.

오히려 듣고 배운 것이 겸손의 재료가 되기보다는 교만을 쌓는 재료가 되어서 교만에 빠지고

영적 바벨탑을 쌓아서 주변 사람들을 무수히 재단하고 판단합니다.


신앙인들은 어떤 경우에도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이 바보인 것처럼 우리도 바보처럼 삽시다.

예수님이 걸레인 것처럼 우리도 걸레처럼 삽시다.

예수님이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 정도로 내려간 것처럼 우리도 반에서 잘난 척 하지 맙시다.

하면 신앙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지키고 열매를 맺으려고 애를 씁니다.

첫 번째가 감사요,

두 번째가 교만을 인정하고 은총 가운데 그것을 고치려고 애쓰는 것이요.

세 번째가 얼마나 영적인 열매를 맺느냐?


그럼 나는 어느 쪽에 속해 있느냐?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 신앙인 보다는 종교인에 속해 있을 겁니다.

우리 한국 천주교회는 종교인들이 드글드글대지 신앙인을 보기 어려운 모습이 아닌가!

신앙인으로 살았다고 한다면 그렇게 쉽게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을 겁니다.

감사할 줄 모르고, 자기 교만함을 인정할 줄 모르고,

열매를 맺으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왜 감사할 줄 모르겠습니까?

왜 교만을 인정하지 않겠습니까?

왜 열매를 맺지 못하겠습니까?

하느님보다 자기 능력을 앞세울 때, 우상숭배입니다.


오늘은 신앙인으로서 올 한해 전례력으로 마지막주일을 지내면서

예수님이 어떤 왕으로 사셨는지..그리고 올 한 해 동안  우리에게 주신 영적추수와

또 눈에 보이는 추수를 생각하면서 첫 번째로 감사하는 날입니다.

지난 일 년을 되돌아 볼 때 감사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집집마다 우환이 많고 고통이 많은 사람들....

생각지도 않았던 병에 걸린 사람들....

‘나는 절대로 저 병에 걸리지 않을 거야!“

했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그럴 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 같지요.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는 참 어려운 고비를 많이 넘어왔습니다.

그 당시에 그 고통이 올 때는 자살하고 죽을 것 같더니 그래도 이렇게 살아 있으니 감사해야 됩니다.


우리 주변에는 나와는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감사할 건덕지도 없고, 나보다 훨씬 더 고통이 많지만 감사하고 살아갑니다.

내가 그 사람 입장이라면 동맥을 끊었어도 몇 번을 끊었을 터인데도

웃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봅니다.


왜 우리들이 감사하지 못하고 살까?

첫 번째 이유는 욕심입니다.

욕심이 앞을 가릴 때는 절대 감사가 되질 않습니다.


두 번째,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감사를 찾아다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겁니다.

감사는 이미 와 있는 은총을 발견하고, 고백하고, 감사하는 겁니다.


은총과 감사는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겸손되이 발견하고, 인정하고, 고백하고, 감사하는 겁니다.


지난 한 해가, 지난 한 주가... 다 감사덩어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명의 나병환자를 치유시켜 주고

"가서 사제들에게 보여주고 와라. "

가는 길에 이미 나병이 다 치유되었지만 결국 감사하며 돌아온 사람은

이방인이었던 나병 환자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내가 분명히 열을 치유시켜 주었는데 나머지 아홉은 어디 갔느냐! "

지난 한 해 동안 얼마나 많은 영적인 치유를 받았는지.... 감사하셔야  됩니다.


농부들 역시 올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려야 됩니다.

농부가 하는 일이라고는 밭 갈고, 씨 부리고, 물대고, 약 주고, 돌 골라내고

인부들 오면 새참 갖다 주고, 커피 갖다 주고 ..그것 뿐입니다.

싹이 나와서 꽃이 하시고 결실을 맺게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내가 올해 농사 참 잘 지었어!”

어디 지가 농사 잘 지었다고 그럽니까?


감사미사 때는 소출한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봉헌해야 됩니다.

추수감사절은 매 연중 마지막 33주일 뿐만 아니라

매 평일미사 매 주일, 매 미사 때마다 추수감사절이 되어야 됩니다.


여러분들, 얼마나 정성껏 헌금 봉헌하고 계십니까?

속으로는 ‘아이고, 감사할 것 많아...감사할 것 많아...주님, 이 어려운 것만 해결해 주시면

제가 감사표시 하겠습니다....’

얼마나 많은 공수표를 남발했습니까?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보면 아벨은 자기가 기르는 것 중에서 제일 살찌고 통통한 가축을 바쳤어요.

카인은 하느님 드리기에 아까운 것은 지가 먹으려고 남겨두고 쭉정이를 안에다 넣어 겉만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드렸지요.

하느님이 그걸 보시고 누구 것만 받으셨어요?

아벨의 제물만 받았지요.

카인은 나서 지가 한 짓은 생각하지 안하고 질투심 때문에 아우인 아벨을 돌로 때려 죽여요.

다시 말하면 올바른 봉헌을 받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올바르게 봉헌하는 것마저도 시기하고 분노하고 질투합니다.


내 그런 소리 들었어요.

어떤 분이 교무금을 올리려고 하니까 그걸 가지고 딴지를 걸고 시비를 걸어서  못 올렸대요.

“왜 그렇게 많이 올리니?..그렇게 많이 봉헌하는 것 아니다.”

그 얘기 들었을 때 ‘참, 큰일이구나!’

올바른 봉헌을 못할 때는 영적인 살인, 그 단계까지 갑니다.


올 한 해 동안 우리들의 영적인 성장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1년 동안 10만 명이라고 하는 많은 순례자들이 우리 성모순례지를 찾아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 본당사제가 잘나서도 아니고, 여기 있는 감곡신자들이 잘나서도 아니고,

성모님 때문에 찾아온 겁니다.


우리 본당신자들도 마음의 문을 열고 생각을 바꾸어야 되지 않을까?

내 본당이 아닙니다.

교회의 성당입니다.


‘나의 것’이라고 하는 이기적인 대명사는 우리 영성생활에 큰 걸림돌이 됩니다.

내 집, 내 차, 내 본당, 내 구역, 내 밭, 내 자식, 내 몸뚱아리, 내 영혼.....

이 ‘나의...’  라고 하는 이기적인 대명사는 애덕을 거스리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올 한 해 동안 우리 본당에는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많은 은혜가 내려왔습니다.

앞으로도 찾아오는 순례자를 통해서 많은 하느님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고

올 일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치유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말씀과 성체와 성모님의 전구로 냉담을 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성지에 오기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서 새로운 사람으로 돌아갔는지 모릅니다.

그것을 지켜보는 감곡신자들은 그저 감사해야할 뿐입니다.

내 교적이 있는 내 성당, 이 성지에서 이런 거룩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정말 행복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들은 추수절 감사미사를 드리면서

‘주님, 오늘 신부님 말씀 들어보니 저 아직 종교인입니다...이제부터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와도 먼저

감사드리겠습니다..제가 얼마나 교만하게 살았는지 눈물로 회개하고 이 교만의 언덕을

낮추어주시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이제부터는 그저 머리에 들어서 내 자신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귀만 고급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열매라도 반드시 맺을 수 있도록  죽을힘을 다해서 노력 하겠습니다.'


내년 그리스도왕 대축일 미사때에는 신앙인으로 영적추수가 되어서 그 모습을 제단 앞에

봉헌하도록 합시다. 아멘

 

 

 ♧느티나무신부님ㅡ2008. 11. 23 (그리스도왕 대축일)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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